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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대기자의 말하는 두레박 <15> 우포늪의 맹렬 지킴이들

철새들의 정원서 따오기 날갯짓 돕는 시인과 촌장

  • 국제신문
  • 박창희 기자
  •  |  입력 : 2015-11-08 18:53:57
  •  |  본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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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우포늪에 깃들어 사는 노창재(왼쪽) 시인과 이인식 습지보전전문가가 우포늪의 숨은 지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창희 기자
- '왜가리 할아버지' 이인식 씨와
- 귀향한 노창재 시인 습지 지켜

- 둔터는 곽재우 의병장 주둔지
- 왜군 무찌른 불패신화 깃들어
- 옛날에 많았던 늑대 이야기
- 스토리텔링에 좋은 소재

- 버드나무 사이 숨겨진 연못
- 황홀한 풍경에 저절로 힐링

따오기가 생각난 건 창녕 우포늪에 노랑부리저어새가 와 있다는 페북(페이스북)의 소식을 접하면서다. 노란 주걱같은 주둥아리로 갯벌을 마구 쑤셔대는 이 방정맞고 우아한 새가 따오기를 닮은 탓도 있다. 페북 발신자는 우포늪에서 '왜가리 할아버지'로 불리는 이인식(62) 선생. 최근 그가 펴낸 '비밀의 정원 우포늪'(우리교육)이란 책이 쪽배가 되어 길손을 유인했다. 우포늪 가는 길 내내 귓전에서 노래가 쫑알거렸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 의병들이 이용한 뱃길

우포늪의 숨겨진 속살인 '비밀의 정원'.
이 선생은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카메라와 망원경을 들고 우포늪을 관찰하고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눈빛이 빛났다. 허연 수염 몇 올이 늪가 바람에 나부꼈다. 2010년 교단을 떠나 자연에 파묻힌 그의 속내를 누가 알랴만 겉으로는 행복해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자유롭고 새들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니 편안하다고. 돈 들 일도 별로 없다고 했다.

때마침 노창재(53) 시인이 길동무하고 나섰다. 10여년 전 귀향한 노 시인은 창녕군 대합면의 주매마을 이장을 하고 있다. 신선이 짚었을법한 길따란 지팡이를 갖고 나왔다. 어디에 쓸 요량인가 했더니 '철새 괴롭히는 것들'을 쫓는 지팡이란다. 우포의 파수꾼답다.

늪의 물이 쑥 빠졌다. 가뭄이 깊다. 세진리 우포늪 생태관에서 가까운 버드나무 길을 함께 걷는다. 이 선생은 잠시도 쉴틈이 없다. 살피고 찍고 말하고 시늉하고…. 따오기복원센터 앞을 지날 무렵 그가 말문을 연다.

"여기가 둔터마을이죠. 임진왜란 때 곽재우 의병장이 진지를 만들어 군량미를 쌓아두는 창고가 있었다는 자리죠. 인근의 한터라는 곳은 의병들이 먹을 곡식을 찧는 방아터가 있었대요. 둔터에는 원래 1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따오기를 위해 모두 이주했죠."

곽재우와 둔터. 우포늪의 역사 한자락이 화살처럼 불쑥 날아든다. 둔(陣·屯)은 진지 또는 주둔지를 말한다. 둔터는 늪가의 작은 골짜기인데, 지형상 낙동강 쪽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면 휘어져 안이 보이지 않는다. 의병이 숨어서 싸우기에 적당한 위치다. 화살뿐인 아군이 조총을 가진 적을 상대하려면 유인을 통한 게릴라전을 벌여야 한다. 상승(常勝) 장군 곽재우의 지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우포늪을 낀 토평천은 낙동강과 이어져 옛날부터 뱃길로 이용됐다. 둔터가 그걸 말해준다. 인근의 세진리(世津里)와 선소가 있었다는 마수원(馬首院)도 마찬가지다. 나루터가 있다는 건, 사람과 물산의 이동이 원활했다는 것이고, 우포늪이 바깥 세상과 통했다는 의미다.

"세진, 인간 세상의 나루라…. 이름 한번 기막히죠. 조선시대 창녕현감으로 있으며 선정을 베푼 한강 정구 선생이 지었다고 해요. 안목이 깊죠."(이인식)

"주막이 남아 있었다면 딱 한잔 걸칠 자리네요. 내가 사는 사지포 인근의 주매마을 앞에도 주막터와 불무터(대장간)가 있었대요. 큰 배가 들어오는 마지막 나루터였다지요."(노창재)

곽재우 의병의 상승불패 신화가 깃든 둔터 자리에 따오기 복원센터가 들어선 건 역사의 되울림이다. 중국에서 건너와 야생 복귀를 꿈꾸는 따오기는 우포늪의 미래라 할 수 있다.

■ 늑대 이야기

우포늪 생명길을 가다보면 수시로 만나는 야생동물들의 똥.
버드나무 길이 끝나는 토평천 수문을 지날 즈음 늑대 이야기가 나왔다. 이 선생이 질문을 던진다. "우포늪가엔 늑대가 많았다죠. 늪지대니까 먹을거리가 많았다는 얘기겠죠. 늑대가 염소를 잡아갈 때 어떻게 해서 가는지 아세요?"

산채 물고 가거나, 죽여서 씹어먹으며 갔을까. 이 선생의 대답은 상식의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세진리의 나이 드신 촌로들한테 들은 얘긴데, 늑대가 염소를 잡으면 어깨에 둘러메고 간대요. 해질녘이면 여우들이 긴 꼬리를 내리고 땅을 파며 사람을 홀리는 행동도 보이곤 했다죠. 고놈들!"

늑대 이야기가 나오자 노 시인이 물 만난 고기처럼 끼어든다. "우리 동네 이웃집에서 아기가 늑대에 물려가는 걸 보고 동네 사람들이 나와 따라가서 구했대요. 그 아기가 지금 동네에 살아 있어요. 마을 근처에 늑대굴도 있었고요. 늑대들이 몹시 배가 고팠던 탓인지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내려와 나란히 담장에 앞발을 걸치고 빼꼼히 집안을 들여다보는 놀라자빠질 일도 있었대요. 할머니가 밤에는 바깥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워우~' 노 시인은 어릴 때 들은 늑대소리라며 효과음까지 낸다. 마치 동화같은 늑대 이야기는 30~40년 전 늑대가 자취를 감추면서 전설이 돼 버렸다. 자연의 먹이사슬이 깨지고 생명그물에 구멍이 숭숭 뚫렸는데도 그렇거니 심각성을 모른다. 이 선생은 "늑대 이야기는 우포의 좋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같은 우포늪 생활사를 채록, 정리해야 한다"면서 노 시인 같은 이들이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 비밀의 정원

"가만 가만, 저 소리 좀 들어보세요. 트럼펫 소리 같죠(큰고니). 저건 퉁소 소리고요(큰부리큰기러기). 저녁 무렵이면 철새들이 꾸미는 자연의 교향악이 울려퍼져요. 우포늪은 외부 소음이 없어 자연의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곳이지요. 복덩어리죠."
이 선생의 우포늪 예찬이 시작되나 했더니 노 시인도 거들고 나선다.

"어느날 저녁 별빛을 배경으로 새들이 유유자적 날아가는 풍경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어떤 친구가 댓글을 달았어요. 카프카의 작품 '성채'가 그려내는 이미지가 그것이라고. 우포에선 보이는 것, 생각하는 것, 움직이는 것 모두가 풍경이죠. 뭐든 찍으면 작품이 되고요. 순천만 몇 개를 가져와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이 선생은 미리 코스를 잡은 듯 일행을 '비밀의 정원'으로 데리고 간다. 버드나무 길과 토평천 왕버들 군락지 중간쯤이다. 들머리부터 뭔가 신비스러운 기운이 번진다. 소살소살 호수물이 숨을 쉰다. 해가 늬엿거리고 있다. 버들과 물억새 틈새로 가을 빛이 예쁘게 산란한다. 사진 찍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전 머리가 아프거나 복잡할 때 이곳으로 와요.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되죠. 세계적 불교 지도자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남부에 프럼빌리지라는 성지를 만들었다는데, 그곳보다 휠씬 뛰어난 공간입니다. 버들 밑동에 기대고 앉아 연못에 비치는 나무 그림자를 보세요. 지상 천국, 낙원이 따로 있을까요."

노 시인은 보여줄 게 하나 더 있다며 '비밀의 정원' 옆에 붙은 작은 연못으로 안내한다.

"이름을 '더 비밀의 정원'이라 하면 될까요. 얼마 전 작가들을 데리고 와서 보여줬는데 모두 깜빡 넘어가더라고요. 생태에 미적 요소를 갖추고 있으니 오감 아니 육감이 자극될 수밖에 없는 거죠."

노 시인은 이날 출간된 것이라며 '지극'(문학의 전당)이란 시집을 내놓았다. 시를 쓴 지 20년에 얻은 첫 옥동자란다. 시집 2부는 '늪'의 노래로 채워져 있다. '새벽안개에 뛰쳐나오던 노루 멧돼지/ 이슥한 밤 워-우 늑대 울음// 호롱불 그을음에 묻어나던 건너 마을/ 순아 누나야 목소리야 흙담장아'('우포' 부분)

이 선생은 고려 충신으로 끝까지 절의를 지키다 우포늪가로 낙향한 조계방의 싯구를 끌어와 장단을 맞춘다. '…혼자 앉아 뜰 가운데 달빛 사랑하노라/ 세상이 부를 따르고 가난 싫어하노니/ 뉘라서 강 마을의 쓸쓸한 나를 기억하리오'.

처녀시집을 들고 다소 상기된 노 시인이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은 대합면 신당마을의 버들국수 집. 송미령 시인이 운영하는 우포늪의 맛집 겸 문화공간이다. 송 시인은 외지인들에게 '우포늪엔 맨발로 오세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산다. 부산서 공수된 금정산성 막걸리와 화왕산 동동주가 잔을 바꿔가며 몇 순배 돌았다. 맹렬 우포늪 지킴이들-. 이들이 있어 우포늪의 새벽안개와 철새들이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몇 년 전 우포늪에 둥지를 튼 사진가 정봉채, 노래꾼 우창수 같은 이도 빼놓을 수 없는 우포늪의 지킴이들이다.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 (사)창녕우포늪생태관광협회 오상훈 사무국장이 나타났다. "뉴스가 하나 떴어요. 우포늪 인근의 세진, 신당, 주매, 장재마을 4곳이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제 후보지로 선정됐대요."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제는 지난 6월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2차 람사르 협약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이다. 우포늪이 세계를 향해 날갯짓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우포늪의 밤이 깊어갔다. 멀리서 따옥 따옥~ 따오기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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