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부산대 비정규직 교수들이 총장선거권을 요구하며 설치한 현수막 4개가 훼손(본지 지난 11일 자 10면 보도)됐다. 현수막은 중간 부분이 잘린 채 바닥에 버려졌다.
부산대에서 현수막 훼손 사건이 일어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 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신한 고(故) 고현철(국어국문학과) 교수 추모 현수막 40여 개에 낙서한 범인이 지난달 잡혔고, 그에 앞선 3월에는 성소수자인권단체가 신입생을 환영하기 위해 설치한 대자보가 찢긴 채 발견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수막 훼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현수막을 누군가의 재산으로 본다면 그 피해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면 된다는 식이다. 실제로 고 교수의 추모 현수막을 훼손한 피의자에게도 '재물손괴죄'가 적용됐다.
하지만 현수막은 '재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소수자에게 용기를 주는 메시지고, 대의를 위한 다짐이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다. 장난으로라도 현수막을 훼손하는 건 그들의 '입'을 막는 행위다. 부산대 김재호 교수회장도 현수막 훼손을 '폭력'이라 규정했다.
반대 의사를 표현하려고 현수막을 훼손했다면 더 큰 문제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학교 분회 이상룡 분회장은 "현수막 내용에 반대하더라도 (훼손 행위를) 제대로 된 신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성의 상징이라 불리는 대학에서조차 타인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크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한 대학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부산대에서 학생을 중심으로 '말 할 권리'를 지켜내려는 움직임이 있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로 구성된 혐오표현대응팀 '찢지마'가 대표 모임이다.
이들은 현수막 훼손을 특정 소수자에 대한 테러가 아닌 공동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이들에게 "찢지 마, 지우지 마, 부활할 거야"라고 경고한다. 자유로운 표현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