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부산 동래구 동래펜글씨학원에서 수강생이 원장에게서 펜글씨를 배우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교정학원·교습소 수요 증가

직장인 김모(여·26·부산 동래구 명륜동) 씨는 회사에서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업무를 처리한다. 업무상 지시나 연락도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글을 쓸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막상 손글씨를 쓸 일이 생기면 글씨체나 문법 등이 신경 쓰인다. 김 씨는 "악필이라 글을 예쁘게 쓰고 싶어 최근 소규모 그룹으로 펜글씨 강습을 받았다"고 말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펜을 잡는다는 부담감에 최근에는 사적 영역인 연애편지에도 대필을 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부산지역 한 손글씨학원 측은 "애인에게 줄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도 종종 들어온다"며 "글씨체가 예쁘지 않더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직접 써주는 게 더 와닿을 거로 생각해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손글씨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50년간 펜글씨를 가르친 동명펜글씨학원 권춘식 원장은 "명문대 학생이 받아쓰기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며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질이나 다름없는데 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세태가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동래펜글씨학원 오성재 원장은 "운동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에도 바른 자세와 근력이 필요하다"며 "글을 쓰는 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글쓰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근 학원이나 교습소를 찾아 바르고 예쁜 글씨체를 배우려는 수요도 느는 추세다. 오 원장은 "학원에는 젊은층뿐 아니라 40, 50대 중장년층도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하음손글씨 조유정 대표는 "취미로 손글씨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면서 부산지역에도 학원들이 많이 생겨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손으로 글을 쓰는 습관은 개인의 정서 표현과도 연관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휴대폰이나 인터넷 메신저의 이모티콘 등 이미지에 감정표현을 의존하면서 글로 자기 생각을 풀어내거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서툴러진다는 것이다. 동아대 국어문화원 박주형 책임연구원은 "학생 중에는 글로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남에게 전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표현력뿐 아니라 소통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글 쓰기는 한글날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소에도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