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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부산 부산진구 범내골교차로가 적신호임에도 진입한 차량으로 인해 혼잡을 빚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 교차로에서 멈추면 무조건 위법
- 차량 정체로 교통사고까지 유발
- 카메라 단속 후 과태료 부과 급증
- 진입 여부 운전자 판단에만 맡겨
- 예방시스템 있어도 예산 부족
차량 흐름을 방해하고 사고를 유발하는 주범인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꼬리물기)은 심각한 문제다. 경찰은 2년 전부터 캠코더를 이용해 꼬리물기 단속을 강화했지만, 꼬리물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면 북새통
지난 15일 퇴근길 부산 부산진구 범내골 램프 인근 CJ오거리는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꼬리를 문 차들이 이어졌다. 빨간불이 켜져도 소용없었다. 다음 신호를 받은 차들이 신천대로에서 광무교 방향으로 직진하려 했지만, 경적만 울려댈 뿐 앞으로 가질 못했다. 동천대로에서 광무교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차들의 꼬리가 교차로를 차지한 탓이다. 한 택시가 경적을 길게 울리며 꼬리 문 차 중간을 파고들었다. 뒤따라 오던 승용차는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고립됐다. 취재진이 이날 오후 7시부터 1시간 동안 집계한 결과 꼬리물기로 다른 차의 진행을 방해한 차량은 85대에 달했다.
출근 시간대에도 이 같은 모습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지난 16일 오전 8시 동래구 복천동 복산동주민센터 앞 사거리. 교차로를 지나려는 차량이 뒤엉켰다. 앞뒤로 차량이 붙어 있어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동래로 방향 신호등에 정지신호가 켜졌지만 차량 10여 대가 계속 교차로에 밀려들고 복천로에서 동래로로 우회전하려는 차량이 경적을 울렸다. 보행자 신호등이 켜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량이 횡단보도를 침범했다. 작은 교차로지만 충렬대로·중앙대로와 이어져 해운대구나 부산진구 쪽으로 가는 출근길 차량과 강서구 녹산국가산단으로 가는 차량이 몰리는 곳이다.
■교차로 정체 주범은 꼬리물기
꼬리물기는 녹색등이 켜진 뒤 교차로에 진입했더라도 적색등으로 바뀔 때까지 통과하지 못해 다른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다. 직진이나 좌회전 신호를 받고 움직였다 하더라도 차량 정체를 예측하지 못해 교차로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면 꼬리물기에 해당한다. 녹색 신호를 받아도 교차로에 무조건 진입하면 안되고, 주변 상황과 앞차의 진행 상태에 따라 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교차로 꼬리물기는 사고로 이어진다. 도로교통공단이 공개한 '2014년 전국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부산에서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연산교차로다. 지난해 41건의 사고가 발생해 전국에서 8번째 사고 다발 지점으로 이름을 올렸다. 연산교차로에 이어 동래구 온천동 내성교차로(32건), 동구 부산역 앞(26건), 부산진구 범천동 광무교사거리(26건)가 뒤를 이었다. 특히 사고 다발 지점 30곳 중 부산역·영웅주유소·황령산터널 등 5곳을 제외한 25곳이 교차로로 나타났다. 이들 사고의 대부분은 꼬리물기로 발생한다.
■단속보다 도로시설 개선
경찰이 캠코더를 이용해 꼬리물기 단속을 강화한 건 2013년 11월부터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개정으로 꼬리물기를 카메라로 단속할 근거가 마련돼 승용차는 4만 원, 승합차는 5만 원의 과태료를 각각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2013년 8291건 단속에 그쳤던 실적이 지난해에는 1만2829건으로 35% 늘었다.
문제는 교차로에 진입할지 안 할지 선택하는 것을 운전자의 판단에만 맡기고 있는 점이다. 혼잡시간대 운전자가 앞차 운행 속도와 신호가 바뀌는 시간을 함께 계산해서 교차로 진·출입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꼬리물기 단속에 적발된 김모(35) 씨는 "녹색 신호를 받고 교차로에 진입했는데 앞차가 빠져나갈지 안 빠져나갈지 어떻게 예측하나. 신호가 켜져서 몇분됐는지 언제 빨간불로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교차로에 들어섰다가 꼬리물기로 단속 당하면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2013, 2014년부터 문전·덕천·동래·미남·망미교차로 등 20곳에 '앞막힘 예방 제어 시스템'을 설치했다. 전방 도로의 차량 통행 속도가 시속 5㎞ 이하로 떨어지면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게 해 추가적인 차량 유입을 막는 기법이다. 설치 직후 2013년 7월 한달 간 조사한 결과 1시간에 16.7회였던 꼬리물기가 7회 정도로 줄고 꼬리물기 차량도 77대에서 27대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내 크고 작은 교차로는 550곳이지만, 앞막힘 예방제어 시스템을 설치한 곳은 주요 교차로 20곳에 불과하다. 경찰 관계자는 "시스템을 설치한 곳은 눈에 띄게 꼬리물기가 줄었다. 그렇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설치 확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英 교차로 중앙 '노란 박스'서 멈춰서면 범칙금 29만 원
■ 교통선진국 사례
- 미국에선 최고 500달러+교육비
- 태국은 신호 바뀌는 시간 알려줘
꼬리물기는 외국 교통선진국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운전자들의 '빨리 빨리' 운전습관과 열악한 도로 환경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낳았다.
영국 런던은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악명이 높다. 좁은 옛날식 도로를 차량이 자전거·오토바이와 함께 쓴다. 최악의 조건을 갖춘 셈이지만 교차로 꼬리물기는 극히 드문 일이다. 런던 시내의 교차로 중앙에는 '노란 박스(Yellow Box Junction)'가 그려져 있다. 교차로의 중간지대에 노란색의 사각형을 만들어 놓고 절대 멈춰 있으면 안 되는 금지구역으로 설정해 놓은 곳이다. 교차로에 접근할 때는 일단 차를 멈췄다가 '노란 박스' 건너편에 공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교차로를 건너는 것이 일반화돼 교차로가 얽히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만약 '꼬리물기'를 하다가 신호가 바뀌어 교차로 안에서 멈춰 서면 어김없이 CCTV에 찍혀 과태료를 물게 된다. 과태료는 160파운드 한화로 29만 원가량 된다.
미국에선 꼬리물기로 적발되면 최고 500달러의 범칙금과 함께 교육비 100달러를 내고 별도 교육까지 받아야 한다. 이렇게 범칙금을 많이 내는 것은 꼬리물기가 죄질이 가장 나쁜 교통법규 위반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태국은 차량 신호등은 우리나라 보행자 신호등처럼 몇 초 후에 바뀌는지 숫자로 표시된다. 차량이 시간을 보며 교차로 진입 여부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2006년 서울시에서 도입하려 했지만 경찰 반대로 무산됐다. 빨리빨리 문화가 정착된 한국에 도입하면 교차로를 통과하려는 차량은 시간이 2, 3초 정도만 남아도 무리하게 지나가려 하고, 정차했다가 출발하려는 차량도 미리 출발하려는 경향이 생겨 사고위험이 커진다는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 황색 신호 때 더 가속, 빨리빨리 교통문화 탓…운전자 인식 바꿔야
■ 박재범 도로교통공단 교수
부산 도로교통공단 박재범(사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꼬리물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먼저 가고 보자는 '빨리빨리' 교통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봤다. 단속을 강화해 꼬리물기를 하면 무조건 걸린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운전자를 상대로 꼬리물기 법규를 설명하다 적잖이 당황한 기억을 떠올렸다. 박 교수는 "운전자들에게 꼬리물기를 안 하려면 정지선 근처에서 속도를 낮추라고 교육하니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며 콧방귀부터 뀌었다"며 "다른 운전자들이 앞으로 가기 바쁘니 가르친 대로 하면 앞자리를 뺏겨 교차로 앞에서 갇히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항변했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 교차로에 나가보면 차량 대부분은 주황색 신호로 바뀌면 속력을 줄이기보다 높인다. 정지 신호로 바뀔 것을 예상해 속도를 줄이려고 하면 어김없이 뒤차는 경적을 울리며 독촉하고 앞자리를 뺏는다. 부산의 열악한 도로 여건 탓에 교차로 건너편 도로에 차 한 대가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다.
박 교수는 회전교차로 등 도로 여건을 개선하는 방법이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이 없이는 꼬리물기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꼬리물기에 대해서 벌점을 적용하고 무인단속 시스템을 확대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꼬리물기를 해도 어쩌다 단속에 걸리다 보니 '운이 없었다'며 가볍게 넘기는 경향이 있다"며 "무인단속을 확대하고 벌점까지 부과하면 '꼬리물기는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공동기획 : 부산시·부산경찰청·부산교통공사·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