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야기 공작소 <20-4> 부산진 '野史野談'- 둥지 틀었던 기업들

원조 백설탕·삼천만의 치약…동천서 가장 반짝였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08-24 20:03:32
  •  |   본지 1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제일제당- 1967년 동천변 제일제당 공장 전경.
- 굴지의 기업들 태동한
- 부산 근대화의 중심지

- 53년 제일제당 설탕공장 들어서
- 하루 50t 생산…국산화 성공

- 서민층 겨냥한 럭키치약
- 시장점유율 98% 압도
- 미국제품 제치고 탄탄대로
- 지금은 LG사이언스홀로 남아

- 최대 합판공장 동명목재
- 지역 최고의 태화백화점
- 역사 속 비운의 기업으로

인류 문명의 발전에는 항상 하천이 곁에 있었다. 부산의 동천도 마찬가지. 도심의 젖줄인 동천은 한국 산업화의 태동지이자, 부산 근대화의 중심지였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동천을 따라 나룻배가 범내골까지 드나들었고, 한국전쟁 때는 굴지의 기업들이 둥지를 틀었다.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의 판잣집들도 동천을 따라 다닥다닥 들어섰다. 놀 데가 없었던 아이들이 여기서 고기를 잡고 멱을 감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사통발달의 교통로이자 유동인구의 중심지인 부산진구에 수많은 기업이 자리잡았다. 한때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그 기업들의 추억을 더듬어본다.


■ 제일제당, 설탕의 원조가 되다

1970년대 전포동 제일제당 공장.
'눈처럼 하얀 백설표 설탕'. 설탕의 대명사로 불렸던 추억의 상표다. 한국전쟁 정전 직전이던 1953년 여름 서면 아래쪽 동천변이 떠들썩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 다. 부산진구 전포동 743번지 일대 1000평 넘는 부지에 제일제당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5일, 공장에서 순백색의 설탕이 마침내 생산되기 시작했다. 상업자본이 성장하여 산업으로 발돋움한 시발점이었기에 대한민국 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다.

시제품으로 나온 설탕은 1만458근(6274㎏)에 달하는 중백당이었다. 100% 수입에 의존하던 사치품 설탕이 대중화로 돌아서자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덕분에 설탕값이 싸졌고, 제일제당 역시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굳히면서 급성장했다. 'CJ 50년사'에 따르면 직원 월급이 평균 20만 환에 달했는데 당시 동천 주변의 작은 집 한 채에 15만 환, 김해평야 논 한 마지기가 2만 환 할 때였으니 엄청난 고임금이 아닐 수 없다. 직원들이 '천하의 제일제당'이라고 자랑하고 다녔을 정도이니 더 말해 뭣하랴.

그 시절 제당 부문은 최첨단 산업이었다. 일본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워서 만들어냈으니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거나 다름없었다. 어렵사리 시운전을 했는데 설탕이 아니라 콩깻묵처럼 되어버렸다고. 시제품 생산을 불과 일주일 여 앞둔 상황이어서 기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문제를 고치느라 며칠을 밤샘했다고 한다. 제일제당은 이듬해 공장을 증설했고, 1957년엔 제분공장을 세우는 등 몸집을 불려나갔다. 생산능력이 배가되면서 하루 50톤의 설탕을 만들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소비량의 30%를 넘는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1962년 최초로 설탕을 수출하기에 이른다.

제일제당 터에 들어선 포스코 더샵 아파트 단지.
제일제당을 진두지휘한 이가 삼성창업주 호암 이병철(1910~1987)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남 의령군 출신으로 마산에서 정미소를 하다 대구에 삼성상회를 세운 그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본거지를 부산으로 옮긴다. 제일제당은 호암이 만든 첫 제조업체였다. CJ측이 삼성그룹의 모태로 제일제당을 주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호암은 공장 내 단층 한옥 '백설관'을 집무실로 삼고 업무를 총괄 처리했다. 사명을 제일로 한 것은 최고가 되어 우리나라 사업보국에 기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제일을 지향하기 위해 호암은 '한 발만 앞서라. 모든 승부는 한 발자국 차이다'는 창업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룹 지분 정리과정에서 제일제당은 1993년 삼성그룹에서 완전 분리됐고, 2005년 추억어린 부산 공장시대를 접고 양산으로 옮겨갔다. 도심에 자리했기에 시설 확장이 더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6년 12월 공장과 호암의 족적이 남은 백설관도 모두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고 그 자리엔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럭키- 1962년 부전천 상류에 위치한 락희 공업사

■ 럭키치약, 미국제품을 물리치다

우리나라 치약 역사를 쓴 럭키치약은 상표가 곧 보통명사로 쓰일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가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학생들이 부지기수에 달했을 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했던 시절, 공장견학으로 대신했던 추억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럭키치약과 럭키비누공장이 단골 메뉴였다.

럭키는 창업주 연암 구인회(1907~1969)가 1947년 서구 서대신동에 화장품(크림) 제조업체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요즘도 회자되는 여성용 크림 '동동구리무'를 만든 게 출발점이었다. 이후 1951년 부전동으로 이전하면서 합성수지(플래스틱) 성형제품을 생산했고, 1955년 연지동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국내 최초로 국산치약을 대량 생산하게 된다. 1974년 럭키라는 이름으로 개칭하면서 현 LG화학의 모태가 됐다.

70년대 (주)럭키 치약 공장.
먼저 럭키가 치약을 만든 사연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치약이 들어온 시기는 1889년. 일본 라이온사에서 만든 가루 형태의 치분이었는데 일반인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귀한 제품이었다고 한다. 락희화학은 머리빗과 비눗갑, 그리고 칫솔을 주로 판매했으나 유독 칫솔 실적이 형편없었다. 치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민층을 겨냥해 치약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럭키치약의 광고 스토리도 흥미롭다. 럭키는 기업의 원조 스토리텔링 업체로 꼽을 수 있다. 치약 광고에 춘향전 그림과 스토리를 담았는데 내용이 이렇다. '서방님, 한양 가시더라도 이 럭키치약을 소첩 본 듯이 쓰시옵소서~'. 그 정도로 치약이 귀한 필수품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1954년 판매를 시작할 당시 광고에 '대한민국 오천만이 즐기는 락희치약'이라 돼 있었으나 1960년대 후반에는 '삼천만의 치약, 럭키치약'으로 바뀌었다. 한반도가 양분되는 비극상이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사은품 개념도 넣었는데 '럭키치약 1상자를 사면 럭키표 뽀뽀비누 1개씩 제공/ 애용자 여러분에게 써~비스'한다고 적혀 있다.

럭키치약이 미국산 제품을 물리친 사연은 눈물겹다. 본격 출시 3년 만에 미제 '콜게이트'를 완전히 따돌릴 수 있었던 비결은 싼 가격과 집요한 마케팅에 있었다. 국산이 없었던 당시 치약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콜게이트가 유일했다. 하지만 값이 무척 비싸 서민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소금으로 이를 닦던 시절이었다. 럭키는 콜게이트의 30%에 불과한 싼 값에 치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그러자 럭키는 승부수로 광고를 낸다. '미국원료 미국처방 독일기계로 된 제품임으로 품질이 미제와 꼭 같습니다'. 사운을 건 판촉전에 전 사원이 나섰다. 치약을 짊어지고 골목 구멍가게까지 구석구석 누비며 품질 선전에 열을 올렸다. 상인들에게 치약 대금을 3개월씩 늦춰주는 전략도 펼쳤다. 그 힘든 싸움의 결과 럭키는 대성공을 거둔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콜게이트를 넉다운시키며 국내 치약시장을 평정한 것이다. 이후 럭키치약은 탄탄대로를 걸으며 1970년대까지 시장점유율이 98%에 달할 만큼 독과점 지위를 누렸다. 이게 오늘의 LG그룹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약을 꼭꼭 짜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껴 썼던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사용하고 남은 알루미늄 튜브를 찢어 안쪽에 묻은 치약을 남김없이 사용했던 그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락희 공업사 터에 들어선 연지동 LG사이언스홀.
럭키는 치약과 비누 외에 외국산과의 큰 싸움을 승리로 이끈 경험을 가진 백전노장 그룹이다. 숱한 합작투자 유혹을 물리치고 합성수지를 국산화함으로써 홍콩과 마카오 등지의 화상이 들여오던 외제 상품을 쫓아내며 석유화학공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플래스틱 선풍기를 생산하면서 일제를 몰아냈으며, 4.19 직후 외래품 판매금지법안 실시에 힘입어 저 유명한 금성사 라디오 보급으로 우리나라 굴지의 대그룹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럭키 역시 제일제당과 마찬가지로 협소한 공장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울산과 온산 나주 등지에 공장을 지으면서 부산공장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지금 그 자리 일부에 LG사이언스홀 부산(1998~)이 남아 럭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 동명목재, 불운에 울다

세계 최대의 합판공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동명목재. 창업주 동명 강석진(1905~1984)이 마지막까지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지만 끝내 침몰하고야 만 비운의 그룹이다. '동이 트는 새벽처럼 번영하고 빛나라'는 염원을 담고 지은 이름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야 말았다. 1920년 부산으로 와 가구공장 직공을 하면서 모은 돈 400원, 지금으로 치면 4000만 원으로 5년 후 좌천동에 동명제재소를 설립한 게 동명목재의 시작이었다.

그는 왜 목재에 인생을 바쳤을까. 사촌동생이자 전 동명목재 부사장 강기수(작고)는 이렇게 회고했다. "형은 나무 제품이 가정 필수품이어서 제작 기술만 익히면 큰 돈을 모을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여기저기 널브러진 대팻밥을 긁어모아 이불 삼아 새우잠을 잤고, 군고구마 한두 개로 끼니를 때우면서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동명은 광복 직전 동천가인 범천동에 합판 제조 및 제재공장을 세워 확장이전한 데이어 1949년 상호를 동명목재상사로 바꾼다. 해방 직후 혼란기임에도 사업은 번창가도를 달렸고 종업원이 200명으로 불어났다. 그에게 한국전쟁은 대도약의 전기였다. 부산을 제외한 전국의 목재 공장이 전화를 입은 데다 전후 복구를 위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문을 받으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시절이었다. 판재나 각목을 만든 뒤 남는 자투리로 합판을 만든 그는 큰 재미를 봤다. 콩과 밀가루를 섞어 만든 새로운 접착제인 '콩풀'을 개발하기도 했다.

범천동에 이어 용당동과 학장동, 대저동 등 부산 곳곳에 계열사를 세웠고, 그룹은 '동명왕국'의 신화로 우뚝 섰다. 사세가 확장되자 동명은 1963년 부산진구를 떠나 남구 용당동 새 부지에 둥지를 튼다. 당시 동명이 즐겨 썼던 좌우명이 백련천마(百鍊千磨).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을 부지런히 갈고 닦는다는 뜻이다. 이후 10년간 동명은 놀라운 실적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이 오래 가지 못했다. 무리한 시설 확장과 원자재값 상승, 독과점 품목 규제와 은행 여신한도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경영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와의 좋지 않은 관계까지 덮쳐 그룹은 결국 1980년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 그리고…기억에 남는 기업

태화백화점=유통의 불모지였던 부산의 대표적인 직영백화점이었다. 1982년 5월 서면에 문을 연 태화백화점의 첫날 매출이 5200만 원에 달했다. 이후 6개월 만에 고객 300만 명을 돌파했고, 첫 해 매출 39억 원을 기록했다. 전성기였던 1995년엔 매출이 무려 2312억 원으로 폭증할 정도로 지역 최고의 백화점으로 우뚝 섰다. 당시 태화백화점 주변이 연인들의 만남 장소로 유명했는데 서태지거리(서면 태화백화점 지하철)와 서태후거리(서면 태화백화점 후문)로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자금난이 가중되던 터에 현대와 롯데백화점 부산 진출이 결정타를 날렸다. 이들 백화점에 대응하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 신관을 짓고, 덕천동 분점을 내기 위해 땅을 매입했던 게 화근이었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김정태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을 한 지 24일만인 1997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백화점도 결국 2001년 파산하는 비운을 맞았다.

신진자동차(대우버스)=1960년대 도로를 누비던 추억의 택시 '코로나'. 1960년 전포동에 신진공업(주)이 들어서면서 부산은 자동차 산업의 시발지가 됐다. 국내 최초로 국산택시 조립 제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5년 후 새나라 자동차를 인수한 신진은 국산화율 20%의 코로나 승용차를 본격 생산한 데 이어 1969년 w지프 생산을 개시했다.

1972년에는 미국 GM(제너럴모터스)사와 합작으로 지엠코리아로 상호를 변경해 버스 전문생산 업체로 변신했고, 이후 여러 차례 사명을 바꾸면서 2002년 대우버스(주)가 됐다. 신진은 1973년 석유파동의 위기를 넘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지만 우리나라 자동차 반세기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최원열 국제신문 객원논설위원

※ 공동기획: 부산진구,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 사진 부산진구청 제공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3. 3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4. 4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5. 5‘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6. 6“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7. 7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8. 8경로당 어르신·어린이집 아동들 “홀몸 어르신 고소한 전 드세요”
  9. 9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10. 10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1. 1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2. 2“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3. 3“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4. 4李 지지율 2주째 상승 37.9%…양당 지지도 오차범위 접전
  5. 5여야 만난 강신철 국방부 장관 “北 지뢰 확인 땐 상응 조치…은폐 없다”(종합)
  6. 6靑 재제청 요구 거부 조희대 “국감서 밝히겠다”(종합)
  7. 7부산시 ‘도시계획’ 조직개편 여파…시의회 상임위 간 신경전
  8. 8北 외무부상 "핵보유국 지위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어"
  9. 9‘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 유승민 딸, 입건없이 10개월째 수사만
  10. 10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3. 3HJ중공업 조선업계 첫 올해 임단협 타결
  4. 4안주고 덜준 보험금, 5년간 1000건 육박
  5. 53년물 국고채 4.1% 돌파…美 금리 급등 여파
  6. 6빚 갚으려고 또 빚…카드론 대환 23%↑
  7. 7“금융위 경험·네트워크로 부산 금융생태계 강화”
  8. 8부산 유주택 신혼 반토막…‘6억 초과’ 보유는 2.5배 급증(종합)
  9. 9시중銀, 부울경 전략산업 금융 확대…지역銀 영역침범 우려도
  10. 10AI로 ‘해상 교통 혼잡도’ 예측한다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3. 3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4. 4‘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5. 5“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6. 6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7. 7약발 없는 바가지 대책…인센티브·숙박세로 실효성 키워야
  8. 8약사 면허 빌려 28억 부당이득…환수 거부에 法 “토해내라” 쐐기
  9. 9공소시효 이틀 앞두고 세금 포탈 업자 송치…검·경 합동수사 빛 발해
  10. 10부산대 양산캠 유휴부지, 양산시도 나섰다…개발 TF 꾸려 대응
  1. 1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2. 2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3. 3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4. 4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5. 5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6. 6안세영, 천위페이도 가볍게 압승…결승 진출
  7. 7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8. 8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9. 9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10. 10[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교통취약지 ‘버스형 콜택시’ 도입, 울주 전역 도시가스 공급도 추진”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중구 절반이 GB…다운목장 등 과감한 해제로 신성장동력을”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