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투쟁 중 실신해 부산대병원에 입원 한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 전민철 기자

- "전국 40개 가까운 국립대 모두
- 간선제 전환은 강제라는 방증
- 중재 못한 김 총장에 배신감도

- 단식 투쟁 때 찾아온 고 교수
- 동참 못해 미안하다 하더라"

"대학의 진정한 역량과 가치는 돈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금전적 손해에 부딪히더라도 자유와 민주의 정도를 지켜 올바른 길을 걸을 때 그 대학의 존재 가치가 입증됩니다."

18일 부산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에서 만난 부산대 김재호(56·전자공학과) 교수회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열흘 넘게 이어진 단식투쟁의 여파를 증명하듯 머리칼과 수염은 엉망이었지만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12일간 곡기를 끊고 총장 간선제 선출에 맞서 투쟁하던 김 교수는 결국 지난 17일 쓰러져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자신이 혼절하기 전 대학본부건물 4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고현철(54·국어국문학과) 교수에 대해 그는 "땡볕 아래 한창 앉아있는데 고 교수가 찾아왔다. '건강 탓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더니 그대로 뒤돌아섰는데 걸음걸이에서 분명한 떨림이 느껴졌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교수는 이른바 '국립대학 선진화'를 명목으로 한 교육부의 폭압적 간선제 요구가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교육부가 교육역량강화 사업 지원 등 국립대학에 대한 수십억 원의 지원금을 빌미로 총장 간선제를 '권한다'고 말하는 건 끔찍한 기만"이라며 "40개 가까운 국립대학이 간선제로 돌아섰다는 게 교육부의 권고가 실은 강제임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지난 17일 사퇴 의사를 밝힌 김기섭 총장을 비판하며 김 총장이 보인 행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김 총장이 직선제 유지를 갈망하는 교수회의 진정성을 교육부에 전달하는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듯하다"며 "이 때문에 역사학을 전공한 김 총장이 대학 민주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은 동료 교수들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를 비롯한 교수회와 비상대책위원회는 앞으로 교육부를 상대로 총장 선출 방식에 관련한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올바른 가치를 위해 동료 교수가 목숨마저 내던졌다. 완전한 직선제를 고수하는 것 이외의 타협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해 교육부를 상대로 한 대응이 한층 강경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김 교수는 사태 수습과 향후 대처를 위해 18일부터 단식을 멈추고 상태 회복에 들어갔다. 그는 이날 오후 병원 측으로부터 잠시 외출 허가를 받아 고 교수를 직접 문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