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제1공동묘역에 세운 한인 희생자 추모비.

- 현지 공동묘역에 1600기
- 위패 모실 공간도 없어
- 한인 역사기념사업회 주축
- 추모비·추모관 건립 추진
- 기념관 사업비 모금운동도
- "정부가 짓는 게 의미있어"

"사할린은 우리의 아픈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할린에 살고 있는 한인 3, 4세조차 역사의식이 흐려지고 있어요. 하루빨리 강제 노역을 하며 학대와 사고 등으로 숨진 한인의 아픈 역사를 되새길 역사기념관을 건립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설기관인 사단법인 사할린 한인 역사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삼광사 주지 무원 스님은 역사기념관 이야기만 나오면 답답해진다. 무원 스님은 지난해 사할린 한인 동포의 요청으로 사할린을 방문하면서 사할린 한인 동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6월에는 사할린을 찾아 희생자 추념식을 지냈다.

무원 스님을 비롯한 사업회와 사할린 한인회 등의 노력으로 11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제1공동묘역에서 한인 합동 추모비 제막이 열렸다. 이어 묘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외곽에서는 사할린 한인 추모관 착공식도 열렸다. 2층 규모로 지어질 추모관 2층에는 사할린 한인의 위패를 모시고, 1층은 쉼터로 활용된다. 추모관 공사는 늦어도 내년 6월 이전에 준공할 계획이다.

무원 스님은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제1공동묘역에는 1600기 정도의 묘가 있는데 후손이 없는 묘가 상당수다. 그런데 위패를 모실 공간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마냥 두고 볼 수 없어 지난해 추념식을 지내고 추모비와 추모관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역사기념관 건립이다. 사업회는 사할린 한인의 역사 발굴과 기록·생활사를 보전하고 사할린 후손의 교육, 희생자 추모 공간, 사할린에 잔류한 한인 1세에 대한 복지 공간 등을 목적으로 지난 연말부터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념관 총사업비는 300억 원가량으로 현재까지 기본설계비 정도가 모였다. 사업회는 올해 안에 기본설계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에는 착공할 계획이다.

사할린에는 2005년 일본 정부가 50억 원을 들여 건립해 사할린주 한인협회에 기증한 한인문화센터가 있다. 2층짜리 건물의 1층엔 우리나라 교육부 산하 한글학교인 한국교육원이 월세를 주고 입주해 있으나, 사할린 동포들의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사관은 없는 상태다.

무원 스님은 "300억 원이나 되는 사업비를 모으는 것도 힘들지만 우리 정부가 지어야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며 "사업회는 기념관 건립의 마중물 역할을 할 뿐 정부가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모두가 방치했던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인들은 1945년 패전과 함께 본토로 돌아갔으나, 당시 끌려온 한인 4만3000여 명은 한·일 정부의 무관심으로 무국적자로 살다가 생존을 위해 북한 또는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4000여명이 한국으로 이주했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기 힘든 한인 1세대 1000여 명은 한국 이주를 포기하고 자녀와 함께 사할린에 살고 있다. 현재 사할린에는 2~5세대 한인 3만여 명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