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10일 오전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려고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 '쥐꼬리 생계비' 주면서
- 취업 땐 소득만큼 삭감해 지급
- 동포들 일할 의지마저 꺾어
- 한국인 텃세…별도 쉼터 필요성

한국으로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당수는 생계비가 모자라 러시아에 사는 자식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결과는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18명 가운데 66%인 12명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한국 노인들의 따가운 시선도 이들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일하면 정부 지원금 삭감

한국으로 이주한 사할린 동포들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2인 기준 81만 원 선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지정돼 2인 기준 월 66만 원을 받는 데다 사할린 특별 생계비가 1인당 7만5000원씩 지급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일할 경우 번 소득만큼 삭감한 돈이 지급돼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77세 남편과 생활 중인 강옥순(65) 사할린 영주 귀국자협회 부산지회 부회장은 "2인 가정 기준으로 드는 생활비는 월평균 95만 원이지만, 국가 지원금은 이에 못 미쳐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만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2009년 당시 64세 이상의 사할린 거주 동포들이 한국으로 이주했지만, 이들과 함께 올 수 있는 조건으로 배우자와 장애인 자녀도 포함돼 있어 정관면에는 현재 60대 여성도 꽤 있다.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18명의 영주 귀국자 중 8명의 여성은 거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60대였다. 박훈녀(여·67) 씨는 "2009년 정관면으로 이주할 당시만 해도 일할 여력이 있었지만 일을 하는 만큼 정부 지원금이 줄어 손을 놓게 됐다"며 "결국 정부가 일하겠다는 사람까지 막아 어렵게 살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차별 없이 쉴 공간 마련 절실

영주 귀국자들이 거주하는 부산 기장군의 임대아파트에는 33㎡(약 10평) 남짓한 경로당 하나가 마련돼 있다. 이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하지만 경로당은 이들에게 편한 공간이 아니다. 한국 노인들과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차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강 부회장은 "예쁜 옷 하나를 입고 가도 옷에 관해 지적할 정도로 눈치를 주는 경우가 있어 경로당을 잘 찾지 않는다"면서 "사할린 동포들이 모여 쉴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한국 노인은 이들의 익숙지 못한 우리말 발음이나 옷차림 등을 이유로 눈치를 준다. 또 한국과 러시아 간 문화 차이를 거론하며 영주 귀국자에게 '러시아인'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다. 안해준(76) 씨는 "러시아에서는 피부색이 달라 차별을 받다가 내 나라로 간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러시아인이라고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별도의 공간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로당 조성은 아파트 사업자의 고유권한이어서 지자체가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장군 관계자는 "지원법이라도 명시되면 영주 귀국자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현재로써는 지원책이 없는 상태"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