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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부산 기장군 정관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사할린 영주 귀국 동포들이 가족사진을 꺼내놓고 자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
- 1988년부터 러와 영주 귀국 논의
- 노인만 허용 뒤 무관심 방치
- 자녀 두고 온 고령의 한인 2세들
- 외로움 속 하나둘 세상 떠나
- 지원법은 국회서 10년째 표류
- 정부, 대상 확대 재협의 나서야
"러시아에 있는 자녀들이 눈에 밟혀 한국 생활이 힘듭니다."
부산시 기장군 정관면의 한 임대아파트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당한 한인 동포의 2세들이 영주 귀국해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손의 영주 귀국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당부했다.
■자녀 찾아 '철새'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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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부산으로 이주해 온 사할린 동포 안해준 씨(오른쪽)와 그의 가족사진. |
지난 5일 사할린 동포 2세가 집단으로 거주 중인 정관신도시의 한 아파트. 전체 120명이 거주 중이지만 이들 중 대다수가 러시아로 떠나 마을은 텅텅 비었다. 광복절인 8월 15일은 이들에게는 '추석'과 같은 명절로 가족이 함께 모여 성묘를 하며 정을 나눈다. 박첩야(77) 영주 귀국 사할린동포 부산협회장은 "매년 8월 15일 이전 100여 명의 정관면 거주 동포가 러시아로 떠나 3개월 이상 머문다"며 "자식과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1년 중 가장 행복한 기간이다"라고 말했다.
2009년 사할린에서 부산으로 이주해 온 안해준(76) 씨는 "매년 2, 3명이 고령으로 사망해 현재 67세대 120명이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며 "러시아의 가족이 한국으로 귀향해 함께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사할린에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이주했다. 안 씨는 "사할린에 살 때 일본인과 러시아인들에게 멸시받아 조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씨는 과거에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러시아 측에 요구했으나 묵살됐다. 한국이 사할린 동포를 보살필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자식들도 한국으로 이주해오길 원하지만 한국말도 모르고, 온다고 해도 정체성 문제로 힘들 것"이라며 "러시아에 사할린 동포를 위한 한국어 교육 기관이나 추모관 등 한국의 정체성을 함양할 시설이 없어 한인 3·4세들의 정체성은 점점 옅어질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강옥순(여·65) 영주 귀국 사할린동포 부산협회 부회장은 러시아에서 건축 설계사 일을 하며 풍족한 삶을 누렸지만 남편 이종운(77) 씨를 따라 이주했다. 강 부회장 역시 러시아 현지에 떨어진 두 아들과 손자를 향한 외로움 때문에 힘들다. 두 아들은 러시아에서 의사와 변호사로 일하며 상류층 생활을 한다. 강 부회장은 "몸은 한국에 있으나 마음은 러시아에 있다. 떨어진 두 아들이 보고 싶어 항상 러시아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주 귀국 확대 재협상해야
사할린 강제이주자들의 영주 귀국 논의는 1988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45년 이후 일본 정부는 이들의 일본 귀환을 불허하고 국적을 박탈했다. 강제로 이주된 한인 노동자들은 무국적자로 러시아에 머물렀다. 안 씨의 경우 일본 북한 소련 러시아 한국 순으로 다섯 번이나 국적이 바뀌었다.
러시아 정부는 영주 귀국 자격을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와 배우자, 장애인 자녀 등으로 한정했다. 2만7000명에 달하는 사할린 동포의 대규모 한국 이주를 우려한 러시아 정부가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층을 중심으로 한국 이주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고, 현재 한국으로 이주한 동포들은 자식과 생이별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후 한인 동포들의 강력한 요구에도 영주 귀국 대상 확대를 위한 재협상에 소극적이다. 결국 정부의 무관심이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을 양산했다는 지적이다. 또 이들의 귀국과 정착 지원을 위한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이 2005년 처음 발의됐지만 10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강 부회장은 "사할린 한인 3·4세가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경로는 취업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지만 단기 비자여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리임수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정부가 이산가족을 양산하는 형태가 됐다"며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만 있다면 외교적 마찰 등의 논란은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끌려간 4만3000명 중 절반 행방 묘연…일제 대량학살 추정
■ 사할린 동포 이주사
- 탄광 등 강제노역 위해 데려가
- 4000여 명 귀국 임대주택 등 거주
사할린은 일본 홋카이도와 소야 해협을, 러시아 본토와는 타타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섬이다. 19세기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 다툼을 하다가 일본이 쿠릴 열도와 교환을 조건으로 러시아에 넘겼다. 1905년 일본이 점령했지만 1945년 패전과 함께 러시아 땅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수만 명의 청춘이 꽃다운 시절을 희생한, 비참한 눈물로 점철된 아픈 역사의 땅이다.
사할린 한인의 역사는 1910년 우리를 강제병합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서 시작된다. 일제는 한국인의 토지를 빼앗고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우리 국민 일부는 이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 국외로 나가게 됐다. 1930년대 전시 강제동원 체제는 여기에 불을 붙였다. 일본 기업에 부족한 노동자를 조달하기 위한 강제동원이다. 탄광, 벌목장, 도로공사 등 위험하고 힘든 곳에는 한국인을 데려갔다. 사할린도 그중 하나였다.
강제 이주와 고된 노동만 이들을 괴롭힌 건 아니었다. 러시아의 기록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할린 거주 한인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 정황상 '학살'이 의심됐지만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2012년 11월 사할린에 사는 황순영 씨가 이모부와 이모부 동생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됐다는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다고 증언해 소문으로만 떠돌던 '학살'이 최초로 밝혀지게 됐다. 일제강점기 사할린에 강제로 이주한 한인은 4만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한동안 잊혀 있었다.
사할린 동포의 공식적인 모국 방문은 1989년 한국과 일본 양 국가 적십자 간에 결성한 '사할린 거주 한국인 재회지원 공동사업체'가 실시한 일시방문 및 영주 귀국사업을 통해 시작됐다.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던 영주 귀국은 한일정부의 영주 귀국 시범사업인 '고향마을 임대아파트 활용 정책'에 따라 2000년부터 본격화됐다. 4189명의 동포가 귀환했지만 일부는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는 현재 부산 기장군과 인천, 경기도 안산, 파주, 김포 등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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