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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상고 수학교과교실 2학년 수업시간에 한 학생이 자신이 맡은 확률·분포 문제를 급우와 교사 앞에서 발표하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
- 학생들 돌아가며 풀이과정 발표
- 질문 주고받고 교사는 보충 설명
- 수업 수행평가 반영 항상 긴장
- 논리적 사고·대입 면접에도 도움
- 5년째 수준별 진행 모범사례로
- 교실 사방 화이트보드 비치 눈길
'칼국수 한 그릇의 열량은 평균이 350㎉이고 표준편차는 10㎉인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한다. 이 음식점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었을때 섭취하는 열량이 355㎉ 이하일 확률은?' '어느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의 비율이 60%다. 이 학교 학생 150명 중에서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이 96명 이상일 확률을 구하라'.
자율형공립고인 부산 사상고등학교 수학교과교실. '확률·분포'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이 맡은 문제를 발표했다. 무엇보다 교실의 모습이 특이하다. 보통 교단 쪽에 하나의 칠판이 있지만 이 수학교과교실에는 화이트보드가 사방에 설치돼 있다. 화이트보드는 학생이 저마다 쓴 문제와 문제풀이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학생들은 각자 맡은 문제 하나를 쓰고 그 밑에는 풀이법을 적어놓았다.
■문제 먼저 풀고 풀이과정 발표
이날 수업의 주제는 '확률·분포-이항분포와 정규분포 관계'. 보통 수학시간은 교사가 단원에 관한 설명을 먼저 한 뒤 문제풀이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사상고의 수학시간은 방식이 조금 다르다. 먼저 수학교사가 전반적인 개념 설명을 한 뒤 문제를 학생 한 명씩 할당한다. 학생은 자신이 담당하게 된 문제를 먼저 풀고, 수학시간 전 화이트보드 한켠에 문제와 풀이법을 적는다. 수업이 시작되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친구들 앞에서 문제풀이 과정을 직접 발표하게 된다. 발표를 마치면 학생간 질문이 오간다. 문제풀이에 이상이 있거나 중요한 문제일 경우 수학교사가 다시 한 번 개념에 대해 보충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행된다.
다시 말해 '1학생 1문항 책임제'가 운영된다. 개념 설명은 교사로부터 미리 듣고 교과서나 다른 문제풀이를 참고해 학습을 완성하는, 요즘 새로운 교육법으로 주목받는 '플립드 러닝(거꾸로 교실)'의 일종인 셈이다. 이 같은 수학수업은 부산시교육청이 최근 교육목표로 강조하는 토의·토론수업의 모범사례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다른 문제는 못 풀어도 자기가 맡은 문항은 반드시 풀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를 잘 모르면 친구나 선생님에게 묻고,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게 된다. 문제풀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최종 발표를 하면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남들 앞에서 조리있게 설명하는 법을 배우면서 대입 면접준비에도 자연스럽게 도움이 된다." 사상고 권혁제 교감의 설명이다.
■수업 자체가 시험
혁신적인 수업 덕분인지 사상고 수학시간에는 잠을 자는 학생이 없다. 처음부터 잠을 잘 수 없는 구조다. 문제풀이를 발표하는 친구의 모습을 봐야 하기 때문에 사방에 놓인 칠판을 따라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곧 발표 차례도 다가오므로 '긴장'해야 하기 때문에 잠은 자연스럽게 달아난다. 발표 과정은 수행평가로 반영되므로 수업과정 자체가 시험이라 자거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잠자는 학생과 함께 '수포자(수학 과목이 너무 어려워 학습을 포기한 학생)'가 없는 것도 이 학교의 자랑거리다. 자신이 맡은 문제 하나는 꼭 해결해야 하므로 수학을 포기할 수가 없는 셈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고3 일부 수업만 제외하고 사상고는 입학할 때부터 이 같은 방식으로 수학수업을 5년째 진행하고 있다. 수업은 상·중·하급반으로 나눠 수준별로 진행된다.
새로운 수학수업 방식에 학생들의 반응은 좋다. 2학년 최영진 군은 "중학교 때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이었고 그래서 자연계열로 올 계획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과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스스로 연구하고 발표를 하고 나면 그 문제는 완전히 '내 것'이 됐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같은 반 손동찬 군도 "처음에는 발표할 때 틀리면 어떡할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다른 친구들도 그러니 부끄러움이 없어졌다. 3개월 정도 지나니 금방 적응돼 즐겁게 수업하고 있다. 수학 점수도 입학 초기에 비해 10점 이상은 올랐다"고 말했다.
이 학교 김홍섭 교장은 "지역 특성상 3월 배치고사 때 낮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 많은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나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1학년은 물론 2학년의 수학 성적이 상향된 것을 알 수 있다"며 "한 학기에 학생당 최소 20번 이상은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표현 능력도 함께 키울 수 있는 효과적인 수업방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