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두 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바탕가스 지역. 여기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가 민도르섬 푸에르토 갈레라 항구에 이르렀다. 다시 지프니라는 소형버스를 타고 20여 분 비포장 산길을 달렸다. 우기이지만 비가 내리지 않아 바짝 마른 흙길은 차가 지나가자 뿌연 모래바람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기나긴 여정 끝에 민도르섬 해발 250m 지점 바클라얀 마을에 도착했다.

이 일대에는 필리핀 원주민 중 하나인 망얀(Mangyan) 부족 5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 26만 명 정도 되는 망얀족은 3500년이라는 필리핀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원주민이다.

이 마을 사람에게는 슬픈 사연이 있다. 원래 주민이 거주하던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해발 150m 지점인 아랫마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이들은 우리나라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이곳을 소개하면서 쫓겨나게 됐다. 이목을 끌자 땅 주인이 리조트 개발을 한다며 원주민을 내몰았던 것이다. 정처 없이 산 동네 바클라얀 마을로 올라왔지만 이들에게는 잠을 자고 밥을 해먹을 집이 없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태풍이 불면 바람을 맞고 노숙하며 그렇게 그냥 살았다.

주민의 삶이 달라진 건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생이 집 짓기 봉사활동을 위해 이곳에 오면서부터다. 2013년부터 부산외대 학생이 집을 지어주면서 이들에게는 소중하고 안락한 집이 생겼다. 현재까지 18채의 집과 한 채의 유치원이 세워졌다. 특히 이달 초 개원한 유치원은 부산외대 정해린 총장이 사비를 털어 만든 교육시설이다.

지난 1월 해외봉사를 마친 부산외대는 6월 25일 7채를 짓기 위해 다시 바클라얀 마을을 찾았다. 2주간 42명의 학생이 6개의 조를 짜 조당 한 채를 짓는 방식이다. 지난 1일 집 짓기 봉사에 나선 학생들은 야자수 나무를 자르고 엮어 지붕과 바닥, 벽을 만드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각자 열대지방 땡볕을 견디며 지붕 위에 올라가거나 마룻바닥에 못질을 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서민현(회계세무행정학부 3학년) 씨는 "쓰고 버리는 소모성 물품이 아닌 집이라는 사람이 체류하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이 의미 있어서 자원봉사로 나서게 됐다"며 "덥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든 사랑의 집에서 살아갈 주민을 생각하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내 공모로 선발된 해외자원봉사 학생은 40만 원의 참가비를 내는데, 항공료 체류비는 모두 학교 부담이므로 학생이 내는 비용은 집을 짓는 데 쓰인다. 돈과 노동력을 해외 빈민을 위해 기부하는 셈이다.

집이 생긴 원주민은 신이 났다. 지난 1월 부산외대 학생들이 만들어주고 간 제법 번듯한 집에서 사는 데니스 솔롱카와얀(24) 씨는 이번에는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는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난 뒤)우리 네 식구 살 집이 없었는데 부산외대에 아주 고맙다"며 "도움을 받은 게 감사해 이웃 주민의 집을 지어주는 데 일손을 거들고 있다"고 말했다.

장병일 학생지원팀장은 "학생들에게 이번 해외봉사활동이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저녁에는 영어와 필리핀 현지어인 따갈로그어를 공부하는 등 학습도 알차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민도르섬=이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