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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허남식(오른쪽) 부산시장과 김태호(왼쪽) 경남도지사, 지역 정치권 인사들이 '부산신항' 명칭과 관련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국제신문DB |
- 與 중진 정치인 나란히 첫 당선
- 의욕적 '山上 정치' 결실 못 맺어
- 광역상수도 등 현안은 더 꼬여
- 중앙정부 재정으로 분열 조장
- 소지역주의 극복 경마공원 주목
- 똘똘 뭉쳐 수도권 패권주의 깨야
서병수 부산시장, 김기현 울산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정치인이다. 민선 1기 이후 부산 울산 경남 3명의 광역단체장이 모두 중진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구성된 건 처음이다. 부울경 시·도민은 민선 6기 출범 때 상생협력에 대한 기대가 컸다. 여당 중진 정치인 셋이 광역단체장에 나란히 당선된 만큼 시·도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현안사업들도 술술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었다. 시급한 현안은 오히려 꼬였고, 새로 추진하려던 프로젝트는 합의하기 무섭게 무산됐다.
■산은 열심히 탔지만 '빈손'
서 시장은 취임 1년을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가장 아쉬웠던 점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부울경 상생협력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울경은 민선 6기 첫 1년간 상생을 위해 나름의 노력과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실은 없었다.
지난해 12월 6일 서 시장과 홍 지사는 부산 장산을 등반했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 타당성 조사 방식을 놓고 '부산 vs 울산·경남·대구·경북'이 날카롭게 대립하던 때였다. 당시 서 시장의 "신공항 민자 건설" 발언에 홍 지사가 발끈하면서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등반 내내 둘 사이에 설전이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남강댐 물을 부산에 식수로 공급하는 광역상수도 문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서 시장이 "자연스레 협력 방안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운을 뗐지만, 홍 지사는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며 굳은 표정과 함께 입을 닫았다. 이후 지금까지 부산시와 경남도는 협상 테이블 한 번 못 차렸다. 양 시·도 간 화합의 상징과도 같은 물 문제를 '산'에 묻혀버리고 내려온 셈이다.
산행에선 상생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서 시장이 "부산과 경남이 2028년 하계올림픽을 공동 유치하자"고 제안하자, 홍 지사는 "정말 좋은 얘기다. 김 시장과 협의해 부울경이 함께 개최하는 쪽으로 실무협의를 하자"며 즉각 화답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말뿐이었다. 올림픽 공동 유치 실무협의는 경남 측 요청으로 수차례 연기됐고, 결국 경남도는 지난 3월 재검토 선언에 이어 5월 "공동 유치를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부울경이 상생하는 모습을 통해 범국민적 호응을 얻으려던 부산시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3월 7일엔 서 시장과 김 시장이 울산 대운산을 올랐다. 이른바 '산상(山上) 정치' 2탄이었다. 두 시장은 산 위에서 '동남권 상생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상생위원회는 1999년 시작돼 2010년 8월 흐지부지 사라진 '부울경 발전협의회'를 부활하는 것으로, 3개 시·도 광역단체장이 만나 수도권 대응을 위한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에 따라 부울경은 부산시청에서 관련 실무협의를 개최하기로 했지만, 홍 지사가 돌연 "대구·경북과 함께 상생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이 때문에 상생위원회 논의는 전면 중단됐다.
세 광역단체장은 틈만 나면 "부울경은 한 뿌리" "우리는 형제"라고 말하지만, 이를 실천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도권은 점점 공룡처럼 힘과 덩치를 키우는데, 분권과 자치를 위해 똘똘 뭉쳐야 할 부울경은 갈수록 엇박자만 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최근 부산과 울산에서 의미 있는 강의가 번갈아 진행됐다. 먼저 서 시장이 울산시청을 찾아 특강을 했다. 서 시장은 울산시 공무원들 앞에서 원자력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해체센터)를 공동 유치할 것을 공식 제안했다. 서 시장은 또 "원전산업을 부산 울산 상생협력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했다.
최근 고리1호기 영구정지가 확정된 만큼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원전산업 육성은 부산과 울산은 물론 경남과도 상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 시장 다음 차례로 부산시청에서 특강에 나선 김 시장은 "해체센터는 일부분일 뿐이다. 제조·부품·소재·인력양성 등 원전산업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다"며 "이들 산업을 부울경이 지역 특성에 맞춰 각각 유치하면 동남권 전체를 원전산업 벨트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시와 울산시는 현재 해체센터 공동 유치를 위한 실무협의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 위치와 명칭을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 답을 찾아낸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경마공원은 부산과 경남에 걸쳐 있어 양 시·도가 절반씩 지분을 가진다. 지방세도 똑같이 나눠 받는다. 해체센터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경쟁을 접고 공존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부산 울산이 상생의 계기를 마련한 만큼 이제 홍 지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홍 지사는 지난 5월 지역 방송사가 주최한 포럼에서 "부울경은 지리적·역사적으로 한뿌리지만 민선 자치가 시작된 후 현안사업 추진에 갈등을 빚었다"고 인정했다. 홍 지사는 또 "그러나 부울경이 상생의 길을 가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길은 수도권에 필적하는 경제공동체의 실현에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세 광역단체장 모두 부울경 상생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특히 이미 해법을 알고 있다. 작은 현안부터 하나하나 지혜를 모아 해결한 뒤 시너지 효과가 큰 연계사업을 발굴하고, 궁극적으로 광역경제권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하루빨리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 시장이 1일 발표한 '부산비전 2030' 중 광역교통망, 동남권 연구·개발(R&D) 협업, 경제공동체 협의기구 설립을 토대로 부울경을 글로벌 메가시티로 묶는 '그레이터(Greater) 부산' 프로젝트도 맥락이 같다.
한국지방자치학회도 부산에서 민선 20년을 기념한 포럼을 열고 소지역주의 극복을 주문했다. 박재율 지방분권부산연대 상근대표는 "광역자치단체 간 재정 확보와 하드웨어 중심의 유치 경쟁은 갈등과 분열을 부른다"며 "이 같은 악순환은 재정권을 수단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중앙권력만 도울 뿐"이라고 말했다.
# 광역교통본부, 크루즈관광…부발연 '부울경 상생' 제안
부산발전연구원이 부산 울산 경남의 실현 가능한 상생사업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부발연은 최근 '부울경 상생협력사업이 성공하려면'이란 연구보고서에서 3단계 로드맵을 내놨다. 1단계로 예산을 들이지 않거나 지역 간 협업을 통해 곧장 시행할 수 있는 사업을 하고, 2단계에는 1단계 사업 안정화와 함께 고예산사업을 추진한 뒤 3단계에서 신규사업을 발굴하는 게 부발연의 로드맵이다.
부발연은 구체적으로 46개의 부울경 상생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 사업은 크게 공동 추진형(13개), 자원 공유형(3개), 컨트롤형(6개), 네트워크형(24개) 등 4가지로 나뉜다. 공동 추진형은 각 자치단체가 따로 할 때보다 함께 시행할 때 효과가 훨씬 큰 사업들로, ▷농축산물 직거래 장터 ▷낙동강 생태 네트워크 ▷부울경 축제 달력 제작 ▷안전 점검의 날 공동 개최 등으로 구성됐다. 자원 공유형은 ▷법기수원지 상수도 공동 이용 ▷부산영락공원 화장시설 공동 활용 등이다.
사업 범위가 넓고 브랜드화가 가능한 컨트롤형에는 ▷행복생활권 연구센터 ▷삼산(부산·울산·양산) 박물관 협의체 구성 ▷부울경 광역교통본부 ▷원자력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등이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중심적인 기능을 주변으로 파급하는 네트워크형에는 ▷부산 정관~울산 울주 시내버스 ▷부울경 도시재생대학 ▷다자녀 가족 사랑카드 공동 이용 ▷부산~경남 거제 크루즈 관광 등이 꼽혔다.
보고서를 작성한 강성권 선임연구위원은 "실행이 쉬운 소규모 사업부터 우선 실행해 부울경 상생협력의 물꼬를 다시 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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