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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의회
- 6대 의회 조례 발의 196건 급성장
- 시정질문도 87건…1대 比 3.5배↑
- 지역 현안 챙기며 존재감 드러내
- 역대 시의원 95%, 새누리당 편중
- 女의원 5%불과 성비 불균형 극심
제1대(1991~1995년) 부산시의회는 1991년 6월 20일 실시된 전국 광역시·도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의원 51명으로 출범했다. 연혁으로만 보면 올해로 24년째를 맞는다. 4년 뒤인 1995년 6월 27일 동시 지방선거로 민선 광역·기초 단체장이 선출되면서 전면 지방자치제가 실시됐다. 시의회는 이제 20년 성년을 맞은 민선 부산시보다 '형님뻘'인 셈이다.
시의회는 제7대까지 연륜이 쌓이면서 행정기관의 감시기관일 뿐 아니라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점차 강화해 왔다. 지역 현안과 이익을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 등 위상을 높여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없지 않다. 가장 아쉬운 점은 1~7대 의회에 이르기까지 '일당 의회'였다는 점이다. 민선단체장 제도 도입 이후에 시장과 시의원 대부분이 같은 정당 소속이었다는 점은 감시 기능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활동 다양화 등 양적 성장
7대 의회까지 배출한 시의원은 모두 340명이다. 새누리당(전신인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포함) 소속 의원은 323명으로 전체의 95%를 차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궤를 잇는 민주당 소속은 9명에 불과했고 자민련 1명, 민주노동당 2명, 무소속 5명이었다. 역대 여성 의원의 수는 17명으로 전체의 5%에 그쳤다. 극심한 성비 불균형을 보여준 셈이다. 다만 제1대 1명에서 제7대 6명으로 늘어나 전체 47명의 10%를 넘겼다.
시의회의 여러 기능 중에서 활동의 양적 성장을 측정할 수 있는 대표적 척도로 의원 발의 조례 건수를 들 수 있다. 의원 발의 조례의 경우 1대 10건, 2대 12건으로 미미했고 3, 4대에는 오히려 더 떨어져 각 2건에 그치는 등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출범한 6대 의회부터는 그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4년간 총 196건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부산시장이 발의한 조례 213건과 비슷한 수준이다. 제7대 의회에서도 의원 발의 조례는 59건에 달했는데, 6대 의회의 연간 평균 건수 48건보다 20%포인트가량 많은 양적 성장을 보였다.
시장 또는 간부급 공무원들을 상대로 펼치는 시정질문도 제1대 의회에서는 24건에 그쳤으나 제6대 때는 87건으로 3.5배나 증가했다. 제7대 의회 1년간 시정질문은 33건으로 제6대 때의 연간 평균 22건보다 50%포인트나 늘었다.
이처럼 6대 때부터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강화된 것은 2006년부터 유급제가 도입되면서 전문성과 정책적 역량을 갖춘 지역의 참신한 정치인재의 진입이 많아졌고, 의회 개회가 매월 정례화 되는 등 제도 정착의 여파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의원 발의 건수는 늘었지만 행정 절차 등에 관한 조례 비중이 높고 시민의 복지 증진 등 생활 관련 조례 비중이 적기 때문에 질적인 측면에서 많은 개선이 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 현안에도 큰 목소리
시의회의 활동이 대외적으로 주목을 끄는 첫 계기가 된 것은 1995년 제2대 의회에서의 대구 위천공단 조성 저지 운동이었다. 당시 시의회는 낙동강 수질 보호와 먹는 물 확보를 위해 위천공단 반대결의문과 건의문을 자체 채택해 중앙정부에 전달했다. 또 지역 시민단체와 협력해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침으로써 시민의 대표기관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제3대 시의회는 지역 현안에 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꽃 피운 시기였다. 1998년과 1999년에 걸쳐 위천공단 조성 재시도에 대한 반대결의문 채택을 필두로 대정부 투쟁에 앞장섰고 안동댐, 낙동강 취수보 공사현장 등을 직접 방문해 시위를 벌였다. 또 1999년 9월에는 삼성자동차 살리기 대정부건의문 채택을 시작으로 시민단체와 협력해 결의대회와 캠페인 등을 펼치면서 부산자동차산업살리기 운동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또 제4대 의회는 2005년 3월 APEC 부산 유치 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정부건의문을 채택해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끝에 개최도시 선정이라는 개가를 올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 통합과 승격 거치며 읍면·기초·광역의회 이례적 경험
■ 울산시의회
- 1997년 광역시 승격하며 대변혁
- 한때 비례대표 등 72명 슈퍼의회
- 월드컵·국립대 유치등 업적 남겨
울산시의회는 부활 이후 지금까지 24년의 성상을 이어오는 동안 시·군 통합과 광역시 승격 등 몇 차례의 여건 변화로 모습과 형태를 달리하며 성장해 왔다.
울산시의회는 1991년 4월 15일 경남도 산하 기초의회로 전국 260개 기초의회 가운데 하나로 개원했다. 지금은 시 산하지만 당시는 별도의 기초자치단체였던 울주군도 나란히 의회(의원 수 14명)를 출범시켰다. 5.16 군사쿠데타로 폐원된지 30년 만의 부활이었다. 폐원 당시는 시 승격 전이어서 경남도 소속 울산군 읍·면의회였다.
부활된 울산시의회는 김팔용 초대 의장을 포함해 54명의 기초의원들로 꾸려졌다. 그러다 1995년 시·군 통합이 결정되면서 울주군의회는 울산시의회(60명)에 합쳐졌다.
이어 1997년 7월 1일 자로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울산시의회도 또 한 번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기초의회에서 광역시의회로 승격돼 같은 달 15일 자로 1대 광역시의회로 개원한 것이다. 기초의원들이 그대로 광역의원 자리를 승계한 탓에 비례대표를 포함한 의원 수가 무려 72명이나 되는 슈퍼의회가 탄생한 것이다.
이듬해인 1998년 7월 1일 신설된 5개 기초의회가 함께 출범한 2대 광역시의회는 의원 수가 18명으로 확 줄어들어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같은 변화 때문에 울산시의회는 읍·면의회와 기초의회, 광역의회 등 3가지의 출범 형태를 모두 경험한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후 울산시의회는 별다른 변화 없이 규모와 형태를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다. 현재 박영철 의장 중심의 6대 전반기(2014년 7월 1일~) 의회가 두 번째 회기를 꾸려가고 있다. 전체 시의원 수는 22명(비례대표 3)으로 운영, 행정자치, 환경복지, 산업건설, 교육 등 5개 상임위원회와 예결산, 원전, 규제개혁 등 3개 특별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울산시의회는 24년이란 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집행부인 시를 도와 광역시 승격과 월드컵 유치, 국립대인 UNIST 유치 등 크고 작은 업적을 남겼다.
# 거가대교 재구조화·신항 지분 확보…대의기관 임무 충실
■ 경남도의회
- 로드킬 관련 조례 전국 이슈 부각
- 타 자치단체 유사 조례 제정 견인
- 전문성 강화 유급 보좌관 검토도
1991년 7월 경남도의회가 개원한지 24년이 흘렀다. 도민의 대의기관인 경남도의회는 크게 두가지 현안을 적절하게 처리해 자체 위상을 높였다. 부산과 거제 간 거가대교의 재구조화(수익률 재조정)에 시동을 건 것과 부산신항만 조성 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김해연 도의원은 2008년부터 거가대교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당시 2조339억 원이 투입된 거가대교 공사는 40년간 무려 36조3600억원에 달하는 통행료 징수와 90%의 MRG(최소운영수익보장률) 보장으로 민간사업자만 배불리는 사업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도의회는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부산시, 경남도와 민자사업자인 GK해상도로(주)를 압박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경남도는 5년 뒤인 2013년 민자사업자와 재구조화 협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만 무려 627억 원을 아낄 수 있었다. 경남도의회 박종수 수석전문위원은 "의회가 대의기관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실례가 됐다"고 말했다.
도의회가 부산신항만 문제를 부각시킨 것도 경남의 이익을 지켜낸 또 하나의 승리였다. 도의회는 2007년부터 신항만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지분 확보를 위한 투쟁에 뛰어들었다. 당시 도의원들은 신항 명칭 결정은 물론 신항 부지의 행정구역 획정 과정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결국 지분을 활당받게 됐다.
도의회가 2007년 전국 처음으로 제정한 '지방도 야생동물 충돌 방지 및 사체 처리에 관한 조례'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전국 최초로 로드킬(도로 위 야생동물 치사) 문제를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시켰다. 다른 자치단체들의 유사 조례 제정이 잇따랐다. 경남도의회 장동화 도의원은 "도의회 발전은 도민들의 위상 도약으로 이어지는 만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유급 보좌관을 두는 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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