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민선 김혁규, 행정 경제 접목
- 김태호, 해양관광사업 비전 제시
- 야권지사 김두관, 균형발전 노력
- 홍준표, 국가산단 3곳 유치 성과
지난 20년간 경남도는 울산시의 분리(1997년)에 따른 도세 위축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5년 1만6542달러에서 2013년 말 2만8270달러로 70.9%나 늘어났다.
여기에는 도내 18개 시·군을 이끌어온 역대 경남지사의 역량 축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임기 도중 사직해 주요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추진방향이 바뀌면서 혼란과 예산 낭비를 초래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지사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름의 철학과 경륜으로 경남 발전의 지렛대 구실을 해왔다.
경남도정의 민선 첫 문은 김혁규 전 지사(1995년 7월~2003년 12월)가 열었다. 뉴욕한인경제인회 회장 출신인 그는 '주식회사 경남'의 CEO를 자임하며 행정과 경제라는 이질적인 분야의 접목을 시도했다. 농산물 수출 활성화를 위해 경남무역을 설립했고, 경남지역 기업들의 중국 전용공단을 조성해 인건비 절감과 거대시장 확보를 통한 국제 경쟁력 강화 기반을 닦기도 했다. 실정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인 F3 개최다. 소음으로 인한 민원과 입장권 판매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불만 등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김 전 지사의 퇴임 후 결국 대회가 폐지됐다. 경기장 건설비 37억5000만 원만 날린 꼴이 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태호 전 지사(2004년 6월~2010년 6월)는 도의원과 거창군수 등 지방정치 일선을 단계적으로 밟아 도백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재임 중 집무실에 우리나라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해양국가로 발돋움해야 미래가 있다고 역설했다. 남해안에 해양 관광지를 건설해 경남의 살림살이를 살찌우려는 '남해안 프로젝트'는 그의 그런 비전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2009년 월드콰이어챔피언십대회(세계합창대회)는 신종인플루엔자로 행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해양관광 사업들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김두관 전 지사(2010년 7월~2012년 7월)는 경남 최초의 야권 지사라는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다. 시·군별 대표사업을 집중 지원하며 도내 지역균형발전에 많은 신경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낙동강에 습지를 조성하고 깨끗한 물을 생산해 부산시에 공급하겠다는 '우정수 프로젝트'는 실험적 구상에 그쳤다는 비판적 지적과 함께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홍준표 지사(2012년 12월~현재)는 여당 대표를 지낸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는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말 정부가 지정한 국가산단 4곳 중 3곳을 경남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 낙후된 서부경남 개발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한다며 경남도청 서부청사의 진주 이전을 결정했다.
홍 지사는 색깔이 뚜렷하고 추진력이 강한 만큼 논란도 많이 야기하고 있다. 재임 초기 진주의료원을 폐지해 파란을 일으킨 데 이어 올 들어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의료'와 '학교급식'. 두 사안은 분야는 다르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부상한 '복지'라는 한 뿌리로 수렴된다. 그 뿌리에는 공공적 삶의 기초가 튼실해져야 한다는, 공익 확대를 지향하는 도민의 염원이 온축되어 있다. 이들 사안에 대한 도민의 반응이 예민하고 논란이 치열한 것은 그래서다. 최근 경남도·도교육청·도의회 간의 3자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상급식 사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그럴수록 도정은 불안해지고 민생은 위태로워진다. 위기임이 분명하지만 극복으로 승화할 땐 기회이기도 하다. 성년을 맞은 경남 지방자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 광역시 승격 후 고도성장…한국 수출 17% 책임진 '산업수도'
- 심완구, 광역시 초석 닦은 인물
- 박맹우, 환경문화도시로 탈바꿈
- 태화강 '생명의 강'으로 되돌려
- 김기현, 지역경제 살리기 올인
울산도 1995년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지방자치의 형태와 규모를 갖고 출범한 것은 광역시로 승격된, 1997년 7월 1일부터다. 승격 전 2년 동안 울산은 경남도 소속 기초자치단체 신분이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울산의 지방자치 원년을 광역시 승격 이후부터로 봐야 한다는 데 대부분 시민이 공감한다.
실제로 울산은 이때부터 광역시만이 행사할 수 있는 폭넓은 자치권과 다양한 혜택을 발판으로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글로벌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울산의 지방자치를 평가하기 위해선 광역시 승격 전후를 비교 잣대로 놓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방자치의 중요성은 전후 울산의 각종 지표만 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광역시 승격 당시 울산의 인구는 100만 명(외국인 포함)을 조금 웃도는 정도였다. 그런데 17년 후인 지난해 말 119만2262명으로 늘었다. 매년 1만 명가량 늘어난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연내 12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시는 전망하고 있다.
5080억 원에 불과했던 시 예산(기초자치단체 제외)은 현재 2조9171억 원으로 6배 가까이 늘었다. 2만 달러 정도였던 지역내총생산(GRDP)은 6만7169달러(2013년 기준)로 급증했으며,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7.7%를 차지해 산업수도로 불릴 정도다.
이처럼 울산이 지방자치를 통해 괄목할 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역대 민선시장들의 부단한 노력과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완구 전 시장(1997년 7월~2002년 6월)은 울산을 명실상부한 광역시로 만드는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울산을 경쟁력 있는 고도 산업도시로 육성한다는 일념 아래 주요 사업을 수행하면서 정치인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을 발휘했다. 특히 도시기반시설이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오늘날 울산의 주요 간선도로 대부분이 그의 재임기간에 건설됐다. 그는 또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을 이끌어 내는 데도 능통했다. SK의 울산대공원 기부채납을 끌어내는가 하면 월드컵 유치를 위해 롯데호텔을 짓게 하는 등 탁월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 표류하던 울산신항만 건설사업을 본격화시키기도 했다.
박맹우 전 시장(2002년 7월~2014년 6월)은 행정가 출신답게 치밀한 일처리와 기획력을 바탕으로 산업도시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울산을 매력 넘치는 환경·문화도시로 바꾸는 마력을 발휘했다. 그는 '공해도시 울산'이란 오명을 지우기 위해 3선, 12년 임기 동안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데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각종 오·폐수로 오염돼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태화강을 생명의 강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 결과 태화강에는 1급수에서나 서식하는 은어와 연어가 찾아오고 수달 등 멸종위기동물이 서식할 정도로 생태환경이 복원돼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전국 지자체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김기현 시장(2014년 7월~현재)은 판사와 변호사, 그리고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는 자동차 조선 등 울산의 주력산업이 불황의 한파에 휩싸인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시장을 맡았다. 그의 어깨에는 지역경제를 살려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얹혔다. 그래서 그는 전임 시장들과 달리 지역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현재와 미래의 먹거리, 즉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재임 1년 동안 발로 뛰는 세일즈 행정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올해 국가 예산 2조 원을 따냈고, 국내자본 2조5000억 원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아시아 최초의 3D프린팅 전기차 생산공장을 울산에 유치하는 업무협약(MOU)을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체결하는 등 외국자본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