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부산 동래구 사직야구장 광장에서 에어부산 직원들이 메르스 극복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밀접 접촉' 등 믿다 격리자 누락
- 병원명단 비공개 등 불안감 조장
- 정부 말 번번이 뒤집혀 공포 확대
- 있으나 마나한 행동요령도 구설

- 부산 1~3호 초기 호흡기 증상 없어
- 안이한 대처로 '슈퍼 전파자'될 뻔
- '기저 질환 없고 젊은 사람 괜찮다'
- 건강한 사람도 숨져 불신 더 커져

한 달 넘게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한풀 꺾였다. 산발적으로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는 있지만 대유행 가능성은 작아졌다. 부산도 한때 1000명에 육박했던 격리자가 30명대로 떨어지는 등 진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에게 신종 전염병의 위험성을 각인시켜줬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방역 체계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이 어디서 얼마만큼 삐걱거렸는지, 메르스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짚어본다.

■'중동 룰' 맹신 큰코 다쳤다

2015년도 부산시 공무원 임용시험이 치러진 지난 27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문화여고에서 시험 관리관이 응시생들을 대상으로 메르스 대비 발열 검사를 하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메르스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에서 처음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다. 당연히 환자도, 치료사례도 중동에서 많을 수밖에 없었고, 메르스를 처음 접한 국내 보건 당국 역시 중동에서 가져온 '메르스 룰'을 맹신했다.

문제는 이를 너무 과신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데 있다. 중동에서의 메르스 공식은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면서 번번이 무너졌다. 가장 먼저 '2m 이내 1시간 이상 밀접 접촉'이라는 공식을 너무 믿었다. '밀접 접촉'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힌 방역 당국은 방역망을 첫 환자와 같은 병실 환자와 가족으로 한정했고, 같은 층 환자와 보호자들이 무더기로 누락되면서 메르스 악몽이 시작됐다. 특히 10여 분 접촉했거나, 화장실 동선만 겹쳐도 옮기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됐다.

부산 첫 메르스 환자를 진료했던 임홍섭 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염병은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임 원장은 메르스 환자를 두 차례에 걸쳐 진료했음에도 감염되지 않았다.

'발열과 함께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라는 공식도 맞지 않았다. 부산에서 확인된 세 명의 환자 모두 발병 초기 발열 증상만 있을 뿐, 호흡기 증상은 없었다. 이에 따라 81번 환자를 진료했던 대학병원조차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었고, 143번 환자는 복통을 호소하자 엉뚱한 소화기내과를 전전했다. 180번 환자는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조차도 38도를 넘지 않는 미열만 있을 뿐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환자가 방역망에서 누락될 때마다 부산시는 "호흡기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이미 부산 첫 환자 때 이를 경험하고서도 두 번째 환자 역시 같은 이유로 빠져 방역 당국이나 병원 모두 너무 사태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불통과 오만이 불러온 공포

메르스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보건 당국과 삼성서울병원 등 관계기관의 불통이 한몫했다. 처음에는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숨겨서 문제가 됐고, 환자 동선도 공개하지 않아 지자체와 정부가 충돌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기저질환이 없고, 젊은 사람은 괜찮다"는 설명도 81번, 35번 환자 등으로 인해 뒤집히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결과적으로 보건 당국과 병원은 불신의 대상이 됐다.

또 35번 환자 등 삼성서울병원 의료진 감염 사례를 숨겼다가 뒤늦게 발표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진앙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집안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방사선사, 응급실 안전요원, 의사할 것 없이 무더기로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정부가 메르스 관련 정보를 숨기고 감추는 사이 SNS를 타고 '카더라' 공포는 확대 재생산됐다. 전국에서 메르스 괴담이 돌아 이를 퍼뜨린 사람들이 무더기로 입건됐다. 부산만 해도 첫 메르스 의심환자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사이 한 종합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다녀갔다는 괴담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김보석 부산시의사회 홍보이사는 "의심 환자가 발생하면 직접 찾아가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정부는 방역 초기 국민 행동요령을 발표해 '열나면 병원에 가라'고 안내했다"며 "이처럼 앞뒤가 맞지않는 정보를 알려주고서 '국민이 과도하게 불안감을 느껴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고 말하는 정부가 오히려 메르스 불안감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마스크 벗고 여유로운 주말, 해수욕장·유통가 인파 북적

28일 오후 부산 북구 덕천동의 한 영화관.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주민들로 영화관이 가득 찼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는 상영 한 시간 전부터 주요 좌석이 매진된 상태였다. 지난주와 달리 메르스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낀 주민을 찾기 힘들었다. 정수일(31) 씨는 "이제 메르스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고 조심만 하면 크게 감염될 위험이 없는 것 같아 여자친구와 오래간만에 영화를 보러 나왔다"고 말했다.

메르스가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메르스 쇼크'에서 벗어나는 분위기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지난 주말 부산·경남 지역 고속도로는 시외로 가족과 나들이를 떠나는 여행객들로 정체가 이어졌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20일 부산·경남 지역 요금소를 이용한 차량은 49만 9000대 였지만 27일에는 55만 3000대까지 회복했다.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 주말(55만 2000대)보다 1000대 늘어난 수치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메르스 충격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야외로 나가는 차량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시철도 전동차를 이용하는 승객도 지난주부터 회복세에 들었다. 그동안 한산하던 해운대 등 바닷가에도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밤에는 곳곳에 '버스킹' 등이 열리면서 밤 풍경을 회복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는 대여섯 개 밴드가 거리공연을 벌였고, 공연 장소마다 50~60명의 사람이 붐볐다. 백사장을 거닐거나 그 위로 돗자리를 편 채 광안대교의 야경을 바라보는 시민도 많았다. 공영주차장은 물론 값비싼 사설 주차장에도 자리가 없어 차를 대지 못할 만큼 차가 몰렸다. 주말마다 이곳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한 밴드 멤버는 이날 "지난 주말부터 회복 조짐이 있었는데 오늘 완전히 분위기를 회복한 듯하다"며 "관람객 중 마스크를 쓴 사람도 많이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위축됐던 소비 심리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부터 여름 정기 세일에 돌입한 지역 백화점은 행사장을 찾은 쇼핑객들로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 따르면 세일 첫 주말인 27일 매장 오픈과 동시에 1000여 명이 넘는 고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방문객이 눈에 띄게 줄어 한산했던 지난 주말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할인 폭을 최대 80%로 크게 늘리는 등 메르스 여파를 최소화 하기 위해 마케팅을 집중했다. 첫날부터 고객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형마트도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메가마트는 이달 들어 전체 매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8% 감소했지만, 지난주의 경우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 부산 격리자 30명대로 뚝 '안정세'

- 무증상 감염자 발생 한때 긴장
- 주말 사망자·퇴원자 1명씩 증가

지난 주말 메르스 추가 확진자가 1명에 머무르면서 다시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부산지역도 격리자가 30명대로 뚝 떨어졌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 따르면 27, 28일 동안 신규 환자는 1명 추가되는 데 그쳤다. 따라서 메르스 환자도 182명에 머물고 있다. 사망자는 1명이 늘어 32명이 됐으며, 10명이 퇴원해 퇴원자는 91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27일 추가된 182번 환자(여·27)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이 병원 의료진 전수조사에서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 환자는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감염 사실이 확인돼 국내 첫 무증상 감염사례로 꼽히고 있다. 한때 무증상 감염자가 방역망에서 누락돼 지역사회에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전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8일에는 추가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지난 27일 0시를 기해 143번 환자 접촉자의 잠복기가 끝나면서 격리자도 39명으로 급감했다. 능동감시 대상자도 18명으로 감소했다. 28일까지도 143번 환자와 180번 환자 접촉자들의 검체 검사는 이뤄지고 있으나 추가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