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인한 격리자가 6700명(18일 현재 부산 1391명)을 넘어섰다. 자고 나면 격리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자가 격리, 시설 격리, 코호트 격리(병원 내 격리) 등 격리 양상도 가지가지다. 메르스 의심 환자, 양성 환자, 확진 환자가 격리되는 건 물어보나 마나다.
격리(隔離·isolation)는 사실 무서운 단어다. 글자 그대로는 '멀리 떨어지게 한다'는 뜻인데, 이게 자칫 격벽·차단·고립으로 전이될 수 있다. 범죄자를 사회 보호 차원에서 떼어놓을 때도 격리라는 말을 쓴다. 의학적으로 보면 격리는 외부 감염 차단과 관리를 위해 실시되는 여러 수단 중 하나다. 뜻하지 않게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지금 격리라는 또 다른 병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내가 왜 격리야? 난 아니야! 국가가 책임져! 라는 식으로 격리 저항이 벌어진다면? 이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무서운 역병이 돌고 있지만 그나마 지금까지는 공동체 의식이 작동되고 있는 듯하다. 정부 시책에 따르는 말 없는 다수의 격리자가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정부가, 아니 국가가 격리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양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메르스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터에, 격리 조치가 된다는 건 천 길 낭떠러지에 서는 기분일 테다. 자가 격리의 경우 가족들은 어찌되는가. 보호장구가 없는 상황에서 생활이 정상일 리 만무하다. 공공을 위해 자유를 일시 제한당한다지만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격리 상황에서 가족의 임종을 편지로 대신하고, 부모의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메르스 망자'들은 감염 위험 때문에 3일장조차 못 치르고 세상과 처연한 이별을 하고 있다. 격리 병실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오염방지를 위해 그 시신을 즉시 비닐로 감싸고 다시 누출방지 시신백에 이중으로 담아 봉인한다. 염이나 방부처리도 할 수 없다. 가족들은 마스크나 장갑, 고글, 보호복 등 개인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한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격리 조치를 어기면 벌금 300만 원을 부과한다, 고발을 한다 어쩐다 하지만, 그것으로 격리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격리자들을 죄인 다루듯 하는 시선과 메르스 관련자라는 낙인을 찍어 소외시키는 것도 문제다. 의료진과 구급대원 자녀들이 공연히 '메르스 왕따'를 당하고 있는 현실은 공동체 의식 실종의 단면이다.
이 사태를 간단히 '중동식 독감'이라 하고, 손만 잘 씻으면 걸리지 않는 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라님의 인식 수준이 그 정도라는 건 정부의 대응 수준이 그 정도라는 얘기다. 격리 만능주의로는 메르스를 쫓아내기 어렵다. 지금은 격리를 위해 물리적 격벽을 높일 게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격리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와 사회, 이웃이 격리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고통을 나누는 공동체의 결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왕조시대 때 역병이 창궐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왕들은 무릎을 꿇고 하늘에 기도했다. 그것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로, 권력으로, 돈으로 역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격리되지 않는 격리로 문제를 풀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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