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건너왔다는 바이러스(메르스)의 행방을 찾느라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하다. 국가권력이 총동원됐고, 온 국민이 시시각각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크기 10~10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다른 생명체에 기생하는 병원체. 인간이 하등생물이라 부르는 바이러스 하나가 한국사회의 면역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낯설지 않다. 2003년 사스 대소동, 2009년 신종플루 악몽, 지난해의 에볼라 사태가 모두 바이러스가 낳은 쇼크들이다. 몇 차례 겪어 면역이 될 법한데도 전혀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여 제발!' '내겐 안 왔으면'하고 기도·애원하는 소리가 도처에 낭자하다.
보건당국을 못 믿겠고, 병원도 못 가겠단다. 휴교한 곳이 전국 2474개교다.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연기되고, 외국 관광객이 급감했다. 국가경제가 휘청거릴 지경이다. 미디어들은 '오늘의 메르스'를 생중계한다. 확진자 122명, 사망자 10명, 격리자 3805명(11일 현재). 부산도 확진자 1명, 의심자 17명, 격리자 114명이 있어 안전지대가 아니다. 한쪽에선 확산일로라 하고, 한쪽에선 소강상태라고 보도한다. 종잡을 수 없다.
안이한 보건당국이 평택성모병원을 다녀간 1번 환자를 놓치는 바람에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가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간 게 메르스 사태의 전말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과 무책임은 메르스보다 더 무서웠다. 대통령은 환자 발생 2주 만에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고,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 '세월호 사태' 때 보여준 모습과 흡사하다. 정부-지자체-병원 간의 공조체계는 겉돌았고, 국민들은 초기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발병 21일이 지났으나 메르스의 감염 범위, 치사율, 전염력, 잠복기에 대한 정보들은 아직도 중구난방이다. 복지부가 메르스 확산의 온상이 돼 버린 꼴이다. 2~3일 후가 고비라는데, 고비를 맞기 전에 메르스가 묻고 있는 것들을 진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치료에 임한 영웅적 의사가 있는가 하면, 메르스 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방을 써붙인 병원도 있었다. 이 틈에 마스크를 매점매석해 폭리를 취한 약국이 있었고, 경찰이 음주단속을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취중운전을 하는 얌체족도 나타났다. 정부가 허둥대는 사이, '나만 살면 돼!' '스스로 살길을 찾자'는 목소리가 유언비어처럼 유포되기도 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어쩌다 국민들이 이렇게 불쌍해졌는가. 정부의 무능이 낳은 악성 바이러스가 공동체 윤리를 갉아먹은 것 같아 가슴이 쓰리다. 무능과 무책임, 방심과 불신, 유언비어 유포, 각자도생 한다는 생각 등은 메르스가 좋아하는 공공의 적이다.
바이러스의 역습은 메르스가 잡힌다 해도 끝난 게 아니다. 수천 년간 인간과 공생해 온 바이러스가 자연파괴, 환경오염 등으로 악성·변종이 된 만큼 앞으로도 틈만 보이면 인간을 괴롭힐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측한다. 보건당국은 제2, 제3의 메르스 재앙에 대처하는 자세로 정책부터 병원 관리, 개개인의 행동까지 하나하나 체크해 나가야 한다. 바이러스 역습에 대한 문명적 성찰, 도시 공동체 윤리에 대한 점검도 필요한 상황이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