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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8> 붉은박쥐

환경에 예민한 '황금박쥐' 은밀한 보금자리가 위태롭다

  • 백한기 선임기자
  •  |   입력 : 2015-06-03 19:36:3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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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군 폐광산에서 바위틈 사이로 무리 지어 잠을 자는 붉은박쥐(천연기념물 452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Ⅰ급)
- 전남 함평 고산봉 폐광
-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잠자는 박쥐 무리
- 불빛 비추면 황금빛
- 5월 돼도 아직 동면 중

- 습도·온도 일정한 동굴
- 얼마 남지 않은 서식지
- 환경 파괴 지속되면 종 보존에 치명적

- 김해 한 폐광은 관박쥐 무리 서식처
- 하룻밤 잡아먹는 벌레3000마리 달해
- 해충 박멸 일등공신

만화 속 주인공 황금박쥐가 나비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 땅에 아직 살고 있었다. 함평군 대동면 고산봉(359m) 일대. 이곳이 세계적인 멸종위기 동물인 황금박쥐라 불리는 붉은박쥐(천연기념물 제452호)의 최대 서식지로 알려지면서 2002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전남 함평군 폐광산 동굴에서 붉은박쥐 한 마리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붉은박쥐는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폐광에서 1999년 우연히 발견됐다. 그 이전까지는 존재만 확인했을 뿐 무엇을 먹는지, 구체적으로 어디서 서식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난 5월 중순. 고산봉의 깊은 골짜기. 산기슭의 폐광 동굴이 붉은박쥐들의 보금자리로 변해 있었다. 이놈들은 5월이 됐는데도 아직 동면 중이었다. 동굴 천장 위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붉은박쥐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었다. 대충 헤아려보니 23마리 정도가 군집을 이뤄 천장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잠을 자고 있었다. 예쁘고 귀여워 마음 같아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숨소리마저 죽여야 했다. 워낙 예민해 작은 변화에도 쉽게 잠이 깨기 때문이다. 10~15분 정도 촬영만 하고 바로 철수했다.

고산봉 일대에 서식하고 있는 붉은박쥐는 160여 마리. 국내 붉은박쥐의 80%가 이곳에 살고 있다. 황금빛이 도는 털빛에 검은 무늬가 선명한 귓바퀴와 발톱이 인상적이다. 붉은박쥐는 불빛을 비추면 털이 황금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황금박쥐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김해시 폐광산에서 거꾸로 매달려 귀를 쫑긋 세운 관박쥐가 인기척에 놀라 쳐다보고 있다.
붉은박쥐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생애 3분의 2 이상을 동면으로 보낸다. 활동기 땐 동면하는 장소의 인근 숲에서 작은 곤충과 벌들을 사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건 붉은박쥐 삶의 일부일 뿐 아직도 이놈의 생태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붉은박쥐는 습도와 온도에 민감해 동굴 안은 항상 적정한 환경이 유지돼 있어야 한다. 실제로 고산봉 기슭의 동굴 입구 천장에선 이슬이 많이 맺혀 물방울이 자주 떨어지고, 이끼가 잔뜩 껴 있다. 붉은박쥐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동굴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언뜻 새처럼 보이지만 붉은박쥐는 날아다니는 젖먹이동물이다. 여느 박쥐처럼 낮과 밤을 거꾸로 산다. 어둠 속에서도 놀랄 만큼 잘 날아다니고 장애물도 거침없이 통과하는 능력은 다른 어느 동물이 지니지 못한 박쥐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관박쥐가 우산살처럼 생긴 가느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모습. 나비처럼 날개를 위, 아래로 움직이며 펄럭펄럭 난다.
붉은박쥐와 땅에 사는 다른 젖먹이동물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박쥐 몸에 날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박쥐의 날개는 손가락 사이에 있는 살갗이 변한 것이다. 날개에는 우산살처럼 생긴 가느다란 팔과 다섯 개의 손가락이 뻗어 있다. 엄지손가락은 다른 네 개의 손가락에 비해 매우 짧은데, 주로 나뭇가지에 매달릴 때 사용한다.

박쥐의 날개는 얇은 막으로만 돼 있어 깃털이 있는 새의 날개와는 다르다. 박쥐의 또 다른 특징은 몸 크기보다 매우 가볍다는 점이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하고, 눈보다는 귀를 발달시켰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른 자연선택인 셈이다.

여느 박쥐에 비해 서식 환경이 까다로운 붉은박쥐에게 고산봉 동굴은 얼마 남지 않은 서식처일지도 모른다. 이곳의 환경이 파괴된다면 개체 수가 얼마 남지 않은 붉은박쥐는 종 보존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토끼박쥐는 귀가 매우 길어 토끼 귀와 닮은 것이 특징이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종이다. (치악산국립공원 제공)
수십 년 전만 해도 박쥐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었지만 지금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고 있는 박쥐는 12종.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집박쥐와 관박쥐다.

경남 김해의 한 폐광도 박쥐들에게 훌륭한 서식처가 되고 있다. 이곳에 주인은 관박쥐 무리이다. 박쥐들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동굴, 오래된 건물이나 집, 나무 구멍 속을 거처로 생활한다. 이 중 어느 동굴에서든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관박쥐이다. 관박쥐는 국내 박쥐 중 가장 몸집이 크고 콧구멍 주위에 말발굽 모양과 같은 부수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쥐가 좋아하는 먹이는 나방이나 곤충 같은 벌레들이다. 이 벌레들은 대개 해충이어서 박쥐는 해충 박멸의 일등 공신이다. 하룻밤 동안 박쥐가 잡아먹는 벌레의 숫자는 무려 3000마리 정도. 1초가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벌어지는 박쥐의 사냥은 그래서 눈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해 질 무렵 동굴을 나온 박쥐는 밤새 먹이 사냥을 하다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박쥐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하늘을 가르며 먹이 사냥을 잘할 수 있는 건 바로 장애물을 식별할 수 있는 초음파 덕분이다.

비행하는 동안 박쥐는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는 2만~10만 헤르츠의 초음파를 입과 코를 통해 발사한다. 그러면 초음파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으로 물체의 위치나 크기를 판단한다. 심지어 그 물체가 딱딱한지 부드러운지도 알아낼 수 있다.

박쥐는 이 초음파를 보통 1초에 10~20번쯤 발사하지만,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귀를 한껏 곤두세우고 1초에 250번까지 내보낸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010-8516-3298)

취재 협조=노호성 전남 함평군청 기획감사실·박용수 생태전문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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