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구·군의회의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가 여론의 질타를 받는 가운데 한 시민이 18일 동래구의회에 들어가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 간담회 명목 300만~480만 원 써
- 전체 사용액 중 절반 넘기도

- 선거 전 주민센터 직원과 식사
-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불러
- 1인 식대 한도 4만 원 초과 일쑤

- "참석 안 한 간담회 열었다 기록"
- 사용내역 조작 주장도 나와

부산지역 기초의회 의원들이 업무추진비 대부분을 식대로 쓰면서 특정업소를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등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일부 구의원은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지인들의 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가 하면 '1인당 한도 4만 원'이라는 지침을 어겨가며 선심 쓰듯 사용했다.

■가족 운영 식당에 '몰아주기'

18일 16개 구·군 의회가 제출한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의 업무추진비 정보공개 자료를 살펴본 결과 동래구의회 부의장은 총 14차례에 걸쳐 특정 고깃집에서 간담회 등 형식으로 480만9000원을 사용했다. 이 식당은 부의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그가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935만4000원으로 절반 이상을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사용한 셈이다.

그는 "구청 근처에 있어 같은 값이면 가까운 곳에서 식사하자는 뜻에서 자주 이용하게 됐다"며 "올해 들어서는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구의회 운영위원장은 모두 14차례에 걸쳐 특정 식당에서 304만2000원을 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식당은 해당 구의원이 당선되기 전 운영하다 현재는 아내가 맡고 있다. 이 의원이 같은 기간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843만5790원으로 이 중 36%를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쓴 셈이다. 이 의원은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해도) 지역 유권자들과 식사를 한 것이 아니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상구의회 부의장 역시 지난해 1월 27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8차례에 걸쳐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176만4000원을 사용했다. 같은 기간 동료의원들이 이 식당에서 사용한 금액까지 합하면 391만5000원에 달한다.

영도구의회 의장은 지난해 7월~올해 3월 업무추진비로 2045만1320원을 사용하면서 한 식당에만 500만3000원을 썼다. 이 식당은 전 영도구 의원이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식당에서 '전 구의원과의 구정현안 논의 간담회'가 유독 잦았다.

부산진구의회 부의장은 같은 기간 986만6200원을 쓰면서 특정 고깃집에서 8차례에 걸쳐 186만2000원을 사용했다. 이 식당은 같은 구의회 동료의원 자녀가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사하구의회 의장은 같은 기간 사용한 업무추진비 1684만2500원 중 555만7000원을 한 일식집에서 사용해 식대 몰아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공무원 간담회 지출 위법 논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데도 선거 기간 지역구 주민센터 공무원에게 업무추진비를 쓴 기초의원도 있었다. 지난 6대 후반기 A구의회 부의장·기획행정위원장·의회운영위장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5~6월 지역구 내 주민센터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이는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센터 직원이 유권자는 아닐 수 있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인 만큼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30일 부산지법 형사합의6부는 같은 사례로 재판에 부쳐진 동구의회 의장 등 구의원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행정자치부의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 집행기준'에 따르면 간담회 때 사용할 수 있는 식대는 1인당 4만 원 이하로 돼 있다. 하지만 이 기준을 넘긴 경우도 적잖게 발견됐다. 남구의회 부의장은 지난 1월 9일 동료 의원 2명과 한 낙지집에서 업무추진비로 42만 원을 썼다. 남구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2월 24일 한 돈가스집에서 동료 의원 2명과 업무추진비로 16만5000원을 결제했다.

■국민권익위 진정 개선 요구 봇물

기초의원들의 이 같은 업무추진비 사용 행태를 보고 동료 의원과 시민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잇따라 진정을 넣었다. 자영업자 김호겸(34·사상구 학장동) 씨는 지난달 14일 사상구의회를 상대로 권익위에 진정했다. 김 씨는 "의원 업무추진비는 엄연한 국민 세금이다"며 "기초의원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세금을 마음대로 쓰는 것 같아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권익위에서는 법을 어긴 게 아니라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 허탈하다"라고 했다.

배관구 사하구의원은 지난 1월 사하구의회 의장에게 의장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공개를 요청했다. 배 의원이 구의회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곳의 상호, 전화번호가 비공개로 처리돼 구체적인 사용 내역 파악이 불가능했다. 이후 배 의원은 주요 사용 내역이 밝혀진 자료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한 상태다. 현재 배 의원은 권익위에 조사를 의뢰했다.

특히 배 의원은 취재진이 확보한 자료를 확인한 뒤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배 의원은 "지난 2월 27일 의장 및 의원 15명, 즉 구의원 모두 의장 아들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했다고 나오지만 나는 그날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업무추진비 사용 기록을 허위로 작성한 것"이라며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 역시 공직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20년 전부터 업무추진비'눈먼 돈' 사용처 공개해야"

■ 김해몽 부산시민재단 센터장

"기초의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쓰는 행태는 20년 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1991년 참여연대 시절부터 업무추진비 공개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해몽(사진) 부산시민재단 센터장은 지금까지도 변한 것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업무추진비 원래 목적은 의정 활동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다"며 "그렇지만 동료 의원들이나 의회 직원들과 밥만 먹어서는 전혀 효율성이 오를 리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업무추진비를 어떻게 써야 할까. 일각에서는 공직자 선거법 위반 논란 때문에 동료 의원이나 의회 직원 아니면 쓸 곳이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김 센터장은 "지역 현안과 관련해 외부 자문기관의 조언을 받거나 전문가와 식사를 하면 의정 활동에 도움이 된다"며 "예컨대 원전과 관련해 정보도 얻고 지역 주민들 반응도 알아보기 위해 외부 전문가 초청 강연 등을 여는 일 등이다"라고 말했다.

업무추진비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범위나 내용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국민 세금인 업무추진비를 사용하고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는다. 김 센터장은 "간담회를 열면 어떤 목적으로 모임을 만들었고 어떤 이야기가 논의됐는지 등이 나와야 하는데 '간담회' 세 글자만 달랑 기록해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렇다 보니 눈먼 돈으로 전락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재 시스템으로는 업무추진비를 쓰는 이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센터장은 "시민 의식 수준은 점점 올라가고 있지만 기초의원이나 관련 공무원들의 의식 수준은 제자리걸음"이라며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업무추진비 사용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도록 세부적인 사용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