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연말 준공 예정인 울산혁신도시. 한국석유공사 등 10개 공공기관이 이전한다. 방종근 기자

# 이주율 낙제점 '독신도시'

- 가족동반 이사 10명 중 2명 불과
- 대부분 서울 가족 두고 홀로 생활
- 특별분양 아파트는 재테크 악용

# 경제·고용창출 효과 '글쎄'

- 돈 쓸 기회 많은 주말엔 서울로
- 지역경제 활력 견인 역할 못해
- 인재 채용도 기대치 한참 미달

# 지역민과 정서공유 외면

- 출퇴근 편의 특혜성 요구 갑질
- 각종 편의시설도 그들만 이용
- 일부 "실패한 정책" 우려 목소리

울산과 경남 진주 등 전국 대부분의 혁신도시 조성사업이 연내 마무리된다. 참여정부의 대표적 공약이었던 이 사업은 수도권 공공기관을 대거 지방의 거점 지역에 이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작지만 강한 미래형 신도시를 건설해 해당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기대와는 달리 준공 전임에도 해당 지역에서는 벌써 "실패한 정책이자 사업"이란 평가가 비등해지고 있다. 지역 발전의 '블루칩'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이다. 공공기관 직원 가족들의 낮은 이주율과 미미한 현지인 채용률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표적인 혁신도시 중 하나인 울산과 진주를 통해 허와 실을 짚어 봤다.

■가족은 두고 '혁신 기러기' 생활

경남 진주 충무공동에 조성되고 있는 진주혁신도시 전경. 김인수 기자

울산 혁신도시 내 모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모(45) 씨의 일주일은 타지로 장거리 통학을 하는 대학생과 다를 바 없다. 회사가 울산으로 이전했지만 김 씨의 집은 여전히 서울에 있다. 그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KTX를 타고 서울 집으로 퇴근하고 월요일 새벽이면 울산으로 출근한다. 3박은 서울, 4박은 울산에서 하는 셈이다. '나 홀로 이주'를 택한 이유는 자녀들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이 많지 않아 진학 여건이 좋지 않고 가족이 함께 살 만한 정주 여건도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게 울산에 대한 김 씨의 평이다.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 직원 대다수가 김 씨처럼 '두 살림'을 하고 있다. 11일 울산·진주혁신도시 이전 예정 공공기관 직원들의 이주실태를 보면 가족을 동반한 사람은 5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 4명이 '혁신 기러기'인 셈이다. 한국석유공사 등 이전 예정 공공기관 총 10개 가운데 7개가 이전한 울산혁신도시의 경우 가족동반 이주율은 22%에 불과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424명의 직원 중 6%인 27명만이 가족 동반 이주를 했다. 이주율이 가장 높은 한국석유공사도 832명 중 292명(35%)에 불과했다.

울산시는 가족 동반 이주를 장려하기 위해 총 703가구의 아파트를 혁신도시 내에 특별분양했다. 그러나 피분양자 중 상당수는 거주하지 않고 전세 등으로 돌려 재테크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1개 이전예정 공공기관 중 현재 6개가 이주한 진주혁신도시 역시 가족 동반 이주율은 20%로 울산과 다르지 않다. 가장 규모가 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다음 달까지 이전을 끝내면 모두 2557명의 직원이 이주해야 하지만 '동반 이주금'을 받은 직원은 100여 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아파트를 특별분양하는 바람에 일반 시민들의 분양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불이익이 있다"며 "게다가 이들은 특별분양 받은 아파트에 살지 않고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등 재산 증식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입 미미…부동산가격만 '껑충'

울산혁신도시의 정주 계획인구는 2만225명, 진주혁신도시는 3만8153명이다. 지자체들은 혁신도시가 조성되면 전입 인구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입주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예상했던 만큼 인구가 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외지 인구가 많이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기대와는 달리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전입 인구는 대부분 인근 지역 사람이다.

진주의 경우 지난 2월 말 현재 혁신도시(충무공동)로 전입한 인구는 6372명(2103세대)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중 76.3%인 4865명(1548세대)는 인근 하대동이나 초전동, 금산면 등 역내 인접 지역의 전입인구였다. 경남도 내 타 시·군에서 전입한 인구는 12.5%인 795명(299세대)에 불과했다. 특히 타 시·도에서 전입해 온 인구는 11.2%인 712명(256세대)에 그쳤다.

외부 인구 유입 없이 역내 인구의 이동으로 혁신도시가 채워지면서 대안·평거·천전지구 등 구도심 일부 지역에서는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지역에서 건립이 추진되던 아파트들은 사업자가 허가 취소 신청을 하거나 중도에 공사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생겨나고 있다.

울산은 3, 4년 전 평당 800만 원 전후이던 혁신도시 내 아파트 분양가가 지금은 1000만 원대로 치솟았다. 학원이 밀집한 남구 옥동지역은 혁신도시와 먼 거리인데도 30평형대 아파트 기준으로 평균 6000만~7000만 원씩 가격이 올랐다. 이 모두 혁신도시에서 시작된 부동산가격 인상 바람이 울산 전역으로 확산한 결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도 울산 경제는 여전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울산의 핵심 상권인 남구 삼산동과 달동에는 문을 닫는 점포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혁신도시에 투자가 집중되는 바람에 KTX역세권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지역 상공계 한 관계자는 "이주한 공공기관 직원 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데다 대부분 '나 홀로'이다 보니 돈을 쓰지 않는다. 지갑을 열 기회가 많은 주말엔 서울에 가 있기 때문"이라며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것 외에는 혁신도시 특수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직원들 괴리감만 쌓아

이처럼 혁신도시로 이주한 공공기관 직원들의 독특한 생활 패턴은 이들이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정서를 공유할 최소한의 시간이나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돼 있다.

지역민과 함께하려는 마음보다는 출퇴근 편의를 위해 해당 지자체에 온갖 특혜성 요구를 함으로써 지역민들의 괴리감이나 반감만 높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울산시와 가진 간담회에서 공공기관 직원들이 "KTX울산역에 전용 주차공간과 의전 차량 대기공간을 마련해 달라", "신규 분양 아파트를 특별공급해 달라", "국회 예산 심의 때는 오전 항공편을 증편해 달라"는 등의 요구를 해 시민들로부터 '도가 넘는 갑질'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울산지역 공공기관은 올해 지역인재 채용을 당초 계획보다 30% 낮춰 지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9개 이전 공공기관의 올해 정규직 지역인재 채용 계획 인원은 30명이었다. 이는 전체 채용인원의 5.1%로 전년보다 1.0%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전국 꼴찌였다. 그런데도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21명만 채용해 지역인재 채용비율은 더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 김영미(여·38) 씨는 "기대와 달리 공공기관이 이전했다고 해서 전혀 나아진 게 없다"며 "체육시설 등 세금으로 만든 각종 시설도 그들만 사용하고 지역민과 공유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마치 다른 세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혁신도시 전문가는 "가족 동반 이주를 강제할 순 없지만 공공기관과 직원들이 이전 도시에 대한 정서를 공유하고 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면서 "지자체도 물질적 혜택보다는 이들의 정주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이나 여건을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