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서울도서관 내 마련된 '세월호 기억 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노란 리본에 적힌 메시지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추모일 지정 제도화 약속 했지만
- 朴 대통령 지키지 못하고 순방길
- 안전 대한민국 건설 헛구호 그쳐

- 선체 인양과 특별법 제정 미룬채
- 성급히 보상 계획만 내놔 모욕감
- 유족 비하하는 일부 시민도 문제

"제가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계기로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상처는 정말 세월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정도로 깊지만, 진상 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투명하게 처리되면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겠지요."

세월호 참사 발생 후 한 달 만인 지난해 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과 청와대에서 첫 대면 후 이같이 약속했다. 하지만 11개월이 지난 지금 유가족은 사회로부터 피해자로 보호받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외면당하며 이중삼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데 이어 유족을 위로할 수 있는 골든타임마저 놓친 셈이다. 정부와 일부 시민은 오히려 배상금 등을 거론하며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

유족의 요구는 '돈'이 아닌 진실 규명과 선체 인양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유족들과 약속한 선체 인양과 특별법 제정은 미룬 채 배·보상 계획을 발표해 유가족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특히 정부가 배·보상 금액에 위로지원금과 민간 보험금까지 포함하면서 시민들의 유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상을 노린 집단'으로 유도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 제안을 빌미로 유족을 공격하는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부산시민대책위 전위봉 상황실장은 "정부가 세월호 유족 배·보상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산역 광장 분향소를 지나는 일부 시민이 '평생노후특별법'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야유를 보내곤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체 인양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4명 등 9명의 시신을 아직 찾지 못했다. 유족은 진실 규명을 위해 배를 인양하자고 했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꺼내지 말자는 국회의원도 등장했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비판성 글과 비하 발언도 더해갔다. 극우 성향의 일부 사이트에서는 세월호와 희생자들을 비속어를 써가며 비하하고 있다.

한 유족은 "어느새 우리가 위로받을 대상이 아닌 '자식 팔아서 돈 벌려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됐다"며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한층 발전한다면 '내 아이는 한국 사회의 영웅'이라며 스스로 위안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그렇지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 유족은 혹시라도 해코지 당할까 두려워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는 국민에게 많은 약속을 했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다.

신라대 강경태(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미국 사회는 2001년 9·11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경찰이 시민을 검문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날 이후 대다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해 검문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는 지난해 4·16 참사 이전과 이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목숨을 잃었지만 선체 인양에 10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그만두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만약 사고가 터지고 바로 인양작업에 착수했다면 희생자들을 유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이들을 위로하고 진상을 규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는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품고 가잖아요. 하지만 일반인은 시간이 흘러가면 잊습니다. 그런데 이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4월 16일을 저희는 추모하고 국민은 그것을 잊지 않고 다시 또 되새길 수 있는, 슬프지만은 않은 어떤 교훈을 주는 그런 날로 지정해서 제도화시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5월 16일 한 유족이 박 대통령과의 면담 중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잘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6일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 '화명촛불 지킴이' 황기철 교사

-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약속 하며 매주 촛불 들고 나가요"
- 학생들이 쓴 손편지 유족에 전달
- 오늘 장미공원서 1주기 평화행진

'화명촛불 지킴이'로 불리는 부산공고 진로 담당 황기철(54·사진) 교사.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희생자들의 49재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산 북구 화명동에서 촛불을 들었다. 49재 이후로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하루하루 촛불 행사가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화명 촛불'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초창기에는 50여 명이 모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 인원은 점점 줄었다. 지금에 와선 10여 명이 매주 그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촛불을 지나치는 행인들은 그에게 "우리 동네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약속입니다. 시민들에게 잊지 말자고 하는 의미도 있지만,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저 스스로 '약속'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교편을 잡은 그의 직업상, 세월호 참사는 그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가르치던 또래 학생들이 배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고통과 분노의 감정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필요했다. 세월호 참사 3일 후, 그는 주위 사람들을 모아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황 교사는 지난해 10월 1학년 학생 300여 명에게 세월호 손편지 쓰기를 권했다. 그는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노란색 엽서를 준비했다. 학생들이 쓴 편지는 세월호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는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를 '나'와 관련 있는 일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손편지 쓰기를 시작했다"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교사들, 숨져간 또래들에 대한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정리하는 작업이 개인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학교는 어떻게 변했을까. 황 교사는 "전혀 바뀐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전히 수학여행은 가장 싼 금액으로 입찰한 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학여행에 동반해야 하는 안전요원은 자격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고 있다. 황 교사는 이를 물질주의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돈이 사람보다 우선'이라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이상 제2의 세월호, 제3의 세월호 참사는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희생자는 있고 책임자는 없는 상황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릅니다. 세월호 참사는 사이코패스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황 교사는 16일 오후 7시30분 북구 화명동 화명도서관 옆 장미공원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촛불 평화행진'을 연다. 부산역 등 중심지에서는 세월호를 기리는 행사가 자주 열리니 지역 사회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추자는 의미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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