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부산 금정구 부산대 인근 좁은 보행로를 선간판이 점령하자 행인이 차도 위를 걸어다니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
- 부산 보행로 확보 17% 불과
- 좁고 장애물 많아 교행 힘들어
- 교통사고 사망 중 보행자 45%
- 전국 평균 39% 크게 웃돌아
- "차도·주차장 줄여 인도 확보를"
5일 오후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인근 보행로. 폭 1m가량 되는 좁은 보행로를 따라 사람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길이 좁아 차도로 내려와 아슬아슬하게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았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일부 상가 업주가 내놓은 홍보물 및 판매할 물건 때문에 아예 보행로가 막힌 곳도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부산 시내 곳곳에서 발생한다. 중구 부평동 국제시장 인근에도 시장 상인이 내놓은 물건들로 보행로가 막힌 곳을 쉽게 볼 수 있다. 서면에는 도시철도 환풍구가 보행로 대부분을 막은 구간이 많다. 일부 공사 구간에는 보행로를 완전히 막거나 공사 중임에도 아무런 안전시설이 없다. 시민 박모(31) 씨는 "번화가에서는 보행로가 좁아 차도로 내려가 걷는 일이 다반사"라며 "대형 버스나 트럭 등이 바로 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일이 많지만, 너무 익숙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도보다 차도
2013년 국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5092명으로 이 중 보행 중 사망자는 1982명(38.9%)을 차지했다. 부산의 2013년 교통사고 사망자 231명 중 보행자 사망자 수는 103명(44.6%)으로 전국 사망자 비율보다 높다. 그만큼 보행 여건이 열악함을 의미한다. 2012년 2월 안전행정부에서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보행환경 개선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2010~2014년 도로는 3077㎞에서 3363㎞로 늘었다. 같은 기간 부산의 보행로는 1062㎞에서 지난해 1150㎞로 늘어났을 뿐이다. 부산시가 관리하는 통계자료도 도로에 대해서는 1963년부터 정리가 잘 돼 있었지만, 보행로에 관해서는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부산시 보행환경 기본계획(2012~2016)'을 봐도 보행로는 2011년 말 기준으로 아직 도로 연장 대비 17.3%에 불과하다. 도시계획도로의 개통을 기준으로 한 적정보도 확보율인 25%보다 미흡하다. 평균 보도폭도 1.8m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걸으면 어깨를 부딪친다는 뜻이다. 보행수단 분담률은 서울을 포함한 전국 7개 특별·광역시 중 5번째인 23.5%다. 부산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보도가 많다는 뜻이다. 보도는 도로를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차도와 주차장을 줄여서라도 안전한 보행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2013년 보행수단 분담률을 2020년까지 20%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은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을 발표했다. 2018년까지는 서울 도심 차도 12개 노선 15.2㎞를 축소해 보행자와 시민활동 공간으로 재편할 계획이다.
■보행환경 친화도시로
부산시는 지난해를 '보행친화도시 부산 원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보행환경 개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7월에는 보행환경 개선 시범지구 사업을 선정했다. 9월에는 보행친화도시 부산 비전 수립 및 보행환경 개선지구 사업을 공모했다. 하지만 10월에 운영하려 한 보행자 전용거리는 여러 가지 걸림돌로 무산됐다.
북구 젊음의 거리를 첫 보행환경 개선 지구사업으로 선정했고 앞으로 매년 2개소 이상 보행환경 개선 지구 사업을 지속해 추진할 계획이다. 또 시범운영 기간 성과를 분석해 전체 구·군 지역 특성에 맞는 유형별 보행 거리 조성을 추진토록 유인책을 제공하고 구·군 동참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지난 3일에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부산진구 동천로에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문을 열었다. 이 지구에는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보도를 조성했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 관계자는 "보행환경 개선에 대한 시와 구·군의 의지도 높아지고 있다"며 "보행환경 개선에 대한 정책 우선순위를 높여 시민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보행친화도시 부산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도로 다이어트로 '뚜벅이 천국' 된 멜버른·토론토
- 보행로 늘리면 교통사고 줄고
- 상권 활성화로 일석이조 효과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는 보행환경 개선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다.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인 호주 멜버른은 2000년 초부터 혼잡한 기차역 등 구간에 보행자들이 이용하는 도로 폭을 늘리고 상점 주변에는 보행자 전용로를 조성했다. 최근에는 2030년까지 전체 이동수단의 30% 이상이 걷기가 되도록 하는 교통계획을 세웠다.
캐나다 토론토는 최근 차도 비중을 줄이고 보행로를 늘리는 도로 다이어트를 시행했다. 그 결과 차량 운행 속도가 줄면서 사고도 급감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스빌도 왕복 4차로 도로를 2차로 도로로 축소해 보행로와 자전거길을 늘렸다. 자전거 통행량이 늘면서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대폭 줄었다.
 |
| 지난 3일 개통한 부산진구 대중교통전용지구. 보도가 확 넓어졌다. 강덕철 기자 |
멕시코 멕시코시티는 지역 내 교통 혼잡을 감소시켜 주요 건축물 관광과 보행자 이동이 편리하도록 '도심 보행구역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도심 내 주차 공간을 없애고 보행로를 넓혔다. 수요일은 애완동물과 함께 도심을 걸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도 진행해 거리가 자동차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는 친환경 교통정책의 하나로 '시클로비아(차없는 거리)'를 시행했다. 1974년부터 1주일에 한 번 휴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보고타의 주도로에 차량의 진입을 금지하고 자전거와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이를 권장하고 있으며 세계 많은 도시가 보고타를 모델로 삼는다.
동의대 신용은(도시공학과) 교수는 "유럽 등 세계적 도시는 꾸준히 보행자를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며 "보행로가 늘면 상황에 따라 주변 상권이 발달하는 효과가 있다. 부산도 도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지역이 많다"고 말했다.
# 보행 확보 > 차량 소통, 교통 우선순위 바꿔야
■ 이은진 부발연 연구위원
"보행이라는 것은 버스나 승용차처럼 하나의 교통수단입니다. 교통수단으로써 보행 기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태교통전문가인 부산발전연구원 이은진(사진) 연구위원은 부산시 보행정책의 문제점으로 열악한 보행 환경을 꼽았다. 보행로를 걷다 보면 상가 선간판이나 가판대, 노점상 등이 많아 보도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대중교통이나 승용차와 관련한 정책을 세울 때도 보행을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할 것을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도로 다이어트 등 보행 관련 정책을 확대하면 차량을 감소시키는 효과 외에 주변 대기 환경에 대한 개선도 이뤄진다"며 "차로 폭이 좁아지면 차들이 속도를 낼 수 없어 자연스럽게 보행 안전도 확보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안 그래도 차량이 막히는데 도로 다이어트를 왜 하느냐'고 비판하는 것은 아직 차량 소통 위주로 교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외 도시는 교통 체계를 '지속 가능한 체계'로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부산시는 통행차량을 줄이고 보행과 자전거를 늘리는 것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은 보행 전용로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보행환경을 개선하려고 한다고 이 연구위원은 소개했다. 보행환경개선지구나 보행전용지구를 처음 추진할 때 상인이 반발하지만 나중에는 상가가 활성화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한다. '차 없는 거리'는 행사 위주로 할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진행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동기획 : 부산시·부산경찰청·부산교통공사·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