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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8일 오전 '인문학 산책'에 참여한 부산 서구 부경고 학생들이 대신공원에서 비석에 새겨진 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 부경고 학생 대신공원서 첫 행사
- 미니콘서트·박물관 관람 등 진행
- 오정환 시인 작품해설 맡아
- 日 맛쇼고교 교사·학생도 동행
- "맑은 공기 마시며 읽는 시 좋아"
28일 오전 9시, 대신공원 앞에서 공원 계단을 오르는 부경고 학생 30여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배낭에 기타까지 둘러맨 모습이 영락없이 소풍을 가는 학생들 모습이었다. 일행이 걷는 산책로에는 막 돋기 시작한 여린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비췄다. 흙길을 밟는 소리와 함께 맑은 계곡 물소리가 조화를 이뤘다.
"별들은 지구와 함께 / 크고 작은 동기라는데 / 어떻게 저 하늘이 열려 싸락 같이 헤쳤을까? / 산사서 보는 / 이 호망(浩望) / 놀람 황홀뿐이네."( '별들은' 고두동 190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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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경고 학생들이 인쇄물을 읽고 있다. |
돌에 새겨진 시를 오정환 시인이 깊은 음성으로 낭독한 후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호망은 넓고 아득하게 바라봄을 뜻합니다. 고두동 시인은 통영 출신으로 여러분도 잘 아는 유치환 등과 함께 시작 활동을 했어요." 학생들은 비석 사진을 찍고, 인쇄물 여백에 해설을 받아 적었다.
부산 서구 부경고 1학기 인문학 기행의 첫 프로그램인 '걸으면서 배우고 느껴보는 인문학 산책'은 시(詩)비석길 산책, 야외 미니 콘서트, 박물관 관람을 일정으로 정오까지 진행했다. 학교 독서토론반과 도서반 등 인문학 동아리 7곳 부원들과 희망 학생이 참여했다.
시조 해설은 김일지 소설가가 맡았다.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 일란 다하여라 / 디나간 후면 애닯다 엇디하리 / 평생(平生)애 곳텨 못할 일이 잇뿐인가 하노라" ('훈민가' 송강 정철)
작가의 낭독을 학생들이 따라 읽었다. 뒤편에 서서 작품 해설을 듣던 2학년 6반 이원경 양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외국인들과 눈이 마주치자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 양은 "흑보석 별들은 훈민가 사모곡 헌화가 꽃시 등 몰랐던 시를 알게 됐고, 작품 해설을 들으며 시비석에 새겨진 시조의 의미와 당시 사회상 등 숨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비석길을 지나 대신공원을 내려온 학생들은 목련이 만발한 동아대 의대 교정으로 이동해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학생들은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며 고재중 시인의 '첫사랑' 등 미리 준비한 시를 낭독했다. 이날 기타를 치며 로이 킴의 '봄봄봄'을 노래한 2학년 이승엽 군은 "평소 같으면 토요일 오전 시간은 수학 문제 풀고 학원에 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며 "학교 근처에 이렇게 계곡 물이 흐르는 공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날 인문학 산책에는 뜻밖의 참석자들이 동행했다. 일본 자매학교인 맛쇼고등학교에서 학생 교류를 위해 방문한 지도교사, 학생 두 명과 부경고 졸업생 한 명이 그들이다. 한국인으로 일본 유학 후 맛쇼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김정옥 교사와 학생 교류에 참여해 일주일간 부경고 학생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맛쇼고 2학년 미야사카 란와 후지모리 미사키. 3년 전 부경고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 군 복무로 귀국한 박균범(뉴욕주립대 1학년)씨가 그들이다. 박 씨는 "학교에 다닐 때는 휴일에 야외에서 만나 함께 활동하는 이런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금이라도 이런 행사가 생겨 후배들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동아대 석당박물관에서 동궐도 등 '국보'와 역사 유물을 관람했다. 김정옥 교사는 "평소 학생 교류에 참여하면 거의 관광이 위주였는데 이번에 인문학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보람 있었다"고 전했다.
인문학 기행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1학년 지민규 군은 "주말에 아침 일찍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도 하고 시인을 통해 시를 배우는 시간은 교실 문학 수업과는 달랐다"며 "함께한 일본 학생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귀띔했다.
박물관에서 만난 부경고 송덕삼 교장은 "교육은 '만남'에서 이뤄지고 인문학은 차이를 넘어 공감하는 인성교육이다"며 "새로운 작품과 낯선 사건과 만나면서 학생들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를 반성하며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문학 콘서트는 5월 28일까지 총 4회에 걸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다음 달 4일에는 제2회 '시와 문화가 날개를 펴다'를 주제로 용두산 공원 시비석길 문학 산책과 문화유적지 답사, 백산기념관 탐방, 오페라 감상을 한다. 5월 16일 3회와 30일 4회는 부산의 역사 문화를 간직한 산복도로 문화마을을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 밖에 부경고는 다음 달 9일부터 2주간 '학교로 찾아오는 전람회'를 열고 점심시간을 이용한 15분 단독콘서트 무대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