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부산 동구 수동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일회용 수저 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 체력부담 적고 자존감 회복
- 지역경제 기여 '상생모델'

"경로당에서 고스톱 사라진 지 오래됐어요."

30일 낮 부산 동구 수정동 수동부녀경로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13㎡ 남짓한 방에 노인들이 둘러앉아 일회용 수저를 포장했다. 잔칫집에서 사용되는 수저 세트는 숟가락 젓가락 물티슈 이쑤시개가 한 묶음. 비닐봉지 안에 넣기만 하는 데도 은근히 신경 쓸 것이 많다. 물티슈의 상표가 보이는 방향인지, 숟가락이 왼쪽에 왔는지, 업체명이 잘 보이게 봉하는 부분이 반듯하게 처리됐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위생 모자와 위생 장갑까지 착용한 노인들은 다소 느리지만 실수 없이 작업을 해냈다. 개당 7원의 노동이라지만 이곳 노인들에겐 삶의 활력소이자 자존감의 원천이다. 고스톱 및 TV 시청과 맞바꾼 땀의 결실은 방 한 편에 수북이 쌓여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예전엔 아침 먹고 경로당 나와서 누워 TV 드라마나 보다가 들어갔지. 이젠 일을 하고 번 돈으로 나들이도 가고 그래." 이곳에서 막내인 김순현(77) 할머니가 분위기를 전했다. 김 할머니는 노동의 보람과 행복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일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수입은 보통 월 25만 원가량이다. 누가 일을 얼마나 했는지 따지기 어려우므로 분배하지 않고 공금으로 활용한다. 경로당 살림에 보태고, 날을 잡아 다 함께 목욕탕도 간다. 그래서 일할 때도 큰 부담은 없다. 쉬엄쉬엄했다가, 바짝 집중하기도 하며 능력껏 기여한다.

아흔을 앞둔 권남희(89) 할머니는 "치매 방지가 되고 무료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경로당이 바뀌고 있다. 노인이 노는 곳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 일자리로 변신했다. 부산 동구에만 경로당 8곳에서 빨래집게 조립, 전기 스위치 조립, 병원시트 재봉 등 일자리가 생겼다. 해운대구도 이달 초부터 경로당 공동 작업장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동구 수정동 수운경로당에서 병원 시트 재봉 일을 하는 할머니들은 젊은 시절 범일동 조선방직에서 일했던 '프로급 선수'들이다. 일감은 동구시니어클럽, 자성대노인복지관 등에서 얻어 오며 콩나물 재배 등 자체 생산 일거리도 계획 중에 있다.

특히 동구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체의 20%를 넘어 부산에서 가장 노령화지수가 높은 만큼 경로당 일자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박삼석 동구청장은 "어르신들의 노동은 자존감 고취는 물론 지역 경제에도 기여하는 훌륭한 상생 모델"이라며 "경로당의 변화를 위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