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체구의 70대 남성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기자가 다가가 "수상을 축하한다"고 인사하자,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날아온 대답은 이렇다. "겸연쩍습니다. 저는 상 받을 사람이 아닌데…."
부산흥사단 주최로 지난 10일 제15회 존경받는 인물상 시상식 및 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제77주기 추모식이 열린 자리의 주인공은 효암 채현국(78) 선생. 효암은 채 선생 선친의 호다.
그는 제15회 '존경받는 인물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존경받는 인물상은 민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군을 발굴하고 국민 교육의 본보기로 삼고자 1997년 제정됐다. 2010년 14회 수상자 백낙환 인제학원 이사장 이후 5년 만에 수상자를 배출했다. 김건호 부산흥사단 회장은 "채 선생은 민족과 사회를 위해 팔십 가까운 평생을 헌신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쫓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시대의 어른으로 본보기가 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일명 '돌직구 할배'라고도 불린다. 채 선생은 평생 입바른 소리만 하며 살아왔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1년 중앙방송(현재 KBS)의 연출 1기로 입사했다. 하지만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드라마를 만들라는 상부의 지시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이후 아버지의 탄광일을 도왔다. 흥국탄광이다. 오일쇼크로 탄광업 경기가 좋아 큰 돈을 벌었다. 한때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10위 안에 들 정도였다. 이 돈으로 많은 민주화 운동가와 단체를 지원했다. 하지만 1973년 탄광을 정리했고 직원들에게 돈을 나눠줬다.
채 선생은 "불의에 입 다물면 공범이 된다. 부끄러운 시절에 잘산 것이 자랑일 수 없다"며 "재산은 세상의 것인데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1988년부터는 경남 양산 개운중·효암고의 이사장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채 선생은 항상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을 도맡는다. 학술연구단체인 민족미학연구소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올해 초 그의 인생을 담은 '풍운아 채현국'이라는 책도 발간됐다.
배다지 민족광장 상임대표는 축사에서 "부친인 채기엽 선생은 독립운동가들을 도왔고, 아들인 채 선생은 유신독재시대에 동료들을 뒷바라지한 것으로 유명했다"며 "채 선생은 '서울대 다닐 필요 없다. 시시한 삶이 행복한 삶이다. 거짓말할 필요없는 진실된 삶이기 때문'이라고 늘 말한다. 당시 경성제국대학(서울대)에 다닌 엘리트들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부자인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 어른"이라고 말했다.
채 선생은 "어릴 때부터 입바른 소리만 거침없이 해왔다. 저는 전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늙으면 추해진다. 이런 늙은이를 귀여워해주고 사랑해줘서 과분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격동의 시대에 휘둘리지 않고 세속의 욕망에 영혼을 팔지 않은 어른'이라는 수식어에 고개가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