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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1> 지리산 담비

멧돼지 잡아먹는 숲 속 포식자, 꿀 발린 건포도에 유혹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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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세 마리가 지리산 능선에서 꿀묻은 건포도를 깨끗하게 핥아 먹고 있다. 사진=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수천, 수만 년 한반도를 지켜온 야생동물이 사라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야생동물의 멸종이 불과 최근 100년 사이에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한다.

본지는 시리즈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를 새로 연재한다. 이 시리즈는 우리나라 전역에 사는 멸종 위기의 포유류를 중심으로 위험에 처한 우리 생태계를 재조명하고, 보존 방법을 찾는다.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곳을 중심으로 현장에 잠복하거나 무인센서 카메라 등을 이용해 야생동물의 서식 실태와 생태적 특징을 생생하게 담는다.

환경부는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 요인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42종을 '멸종 위기 야생 동물' 1급으로, 보호 가치가 높은 114종을 '멸종 위기 야생 동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라져 가는 동물을 복원·보존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는 이런 노력과 실천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24회에 걸쳐 이어질 이 기획에는 담비 수달 삵 산양 노루 오소리 물범 하늘다람쥐 고슴도치 늑대 여우 사향노루 등 야생동물 30여 종이 등장할 예정이다.

   
한번 설치하면 1개월 정도 건전지가 유지되는 무인센서 카메라.
-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에 맞게
- 96일간의 추적끝에 3마리 포착

- 현재 지리산 4무리 10개체
- 남한 전역 2500~3000마리 서식
- 무리당 年 고라니·멧돼지 9마리씩 사냥

제법 예쁜 이름을 가졌지만 생각보다 난폭하고, 얼굴은 족제비처럼 날카롭게 생긴 담비. 호랑이가 사라진 직후 숲 속의 최고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담비 과연 이 녀석은 숲 속을 지배하는 사냥꾼이 되었을까.

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주능선에서 지난해 11월 16일부터 2월 22일(22일 오전 10시 23분에 담비 촬영)까지 96일간의 추적 끝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담비 3마리가 무인센서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리산 한 사찰 원초 스님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우연히 아침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담비가 앞을 지나갔다고 말했다. 담비가 발견된 곳은 지리산 산악지대.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은 곳이었다. 본격적인 조사준비에 들어갔다. 담비가 다닐만한 길목을 선정하고 바로 긴 추적이 시작됐다.

   
하정옥씨가 담비 배설물을 발견하고 관찰하고 있다.
취재에 동행한 분은 지리산 일대에서 곤충을 추적 연구해온 하정옥 씨다. 하 씨를 따라 폐쇄된 등산길을 2시간 정도 걸어 도착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쉴새 없이 두리번거린다. 담비가 이곳 어딘가에 발자국을 남겼을 것이다고 말했다. 주변 추적은 계속됐다. 눈 위에 길게 난 발자국이 담비의 흑적이다. 다섯 개의 발가락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또 뭔가 흔적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배설물 주인이 나타났다. 다른 야생동물처럼 담비에게도 배설은 영역표시의 수단이다. 이동 경로의 바위나 쓰러진 나무 위에 배설한다. 그래서 배설물 때문에 추적할 수 있다.

담비 발자국과 배설물이 있는 길목에 4대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하기로 했다. 한 번 설치하면 1개월 정도는 건전지가 유지되는 카메라이다. 카메라 앞 4m 전방에 담비가 좋아하는 건포도에 꿀을 발라 수북이 쌓아놓았다. 그리고는 담비의 모습을 담기 위한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인센서 카메라에 촬영된 야생동물들. 담비도 촬영됐을까? 많은 동물이 카메라에 등장했다. 고라니도 확인됐고, 최근 개체 수가 급증한 멧돼지 등의 출몰은 흔했지만, 담비는 없었다.

   
담비 배설물.
과연 담비는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혹시 이 지역에 서식하지 않는 녀석이었을까? 무슨 이유인지 잠깐 길을 잘못 들었던 녀석일까?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점검하는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됐다. 카메라를 점검할 때마다 긴장과 기대, 그리고 실망이 반복됐다. 뒷모습만 살짝 보여주는 고라니만 포착되었을 뿐 여전히 담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다시 담비 추적은 계속됐다. 그러나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정말로 야생 담비가 있기는 한 것일까? 또다시 무인센서 카메라 점검. 기대와 실망이 엇갈린지 벌써 3개월째. 담비 촬영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2015년 2월 22일 이번에도 담비 촬영은 실패한 것일까. 그때였다. 담비 3마리가 잠시 머뭇거린모습이 확실히 렌즈에 잡혀 있었다. 다시 확인해 본 피사체, 고라니도 노루도 아니었다. 틀림없이 담비였다.

   
담비 발자국.
식육목 족제빗과 담비속(Genus Martes)의 포유류를 총칭한다. 우리나라와 유라시아에 사는 담비는 세계의 담비 7종 가운데 유일하게 집단생활을 하면서 고라니, 노루,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를 사냥한다. 족제비와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지만, 몸이 약간 크고, 다리가 비교적 짧다. 몸길이 60㎝, 꼬리길이 40㎝이다. 담비는 낮에 주로 활동해 눈에 잘 띄기도 한다.

담비의 특징은 무리지어 다닌다는 점이다. 수컷은 수컷끼리 몰려다니고, 암컷은 새끼와 무리 짓는다. 담비는 여러 마리가 협공을 통해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비의 먹이는 실로 다양해다. 식물성은 물론 비교적 큰 포유류인 고라니와 몸집이 작은 청설모, 새의 발톱까지 배설물에 섞여 있었다. 놀랍게도 자신보다 몸집이 큰 포유류의 멧돼지 흔적도 발견된다.

   
어두운 밤 담비 두 마리가 사냥하기 위해 활동하는 모습이 적외선 무인센서 카메라에 처음으로 촬영됐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담비. 세 마리는 양쪽으로 나누어져 주위를 경계한다. 10분가량 지난 뒤 먼저 한 마리가 가까이 접근한다. 건포도에 뿌려진 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담비의 꿀 사랑은 못 말린다.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구석구석 열심히 핥아먹는다. 자기 몸에 묻은 꿀까지 깨끗하게 핥아 먹는다. 그리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자리를 떠났다. 이로써 96일간의 추적 끝에 담비를 촬영할 수 있게 됐다.

담비 연구책임자인 최태영 국립생태원 생태복원연구팀장는 지리산에서 조사한 결과 산림 60㎢에 담비 4무리 10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와, 숲 10㎢마다 1~2마리꼴로 담비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 전역에 2500~3000마리, 곧 1000 무리가 사는 셈이다. 담비 한 무리가 연간 고라니 9마리와 비슷한 수의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는 한 해에 고라니와 멧돼지 각 1만 마리씩이 담비의 밥이 되는 것이다. 담비는 이미 사라진 호랑이, 표범, 늑대가 하던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실, 다 자란 멧돼지를 사냥하지 못한다는 점을 빼면 최상위 포식자 노릇에서 호랑이 못지않고 표범보다 윗길이다.

   
담비 한 마리가 바위 위에서 꿀묻은 건포도를 먹고 있다.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전남 목포에서부터 강원도 일대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했으나 1970대에 들어서면서 담비가 밀렵 때문에 거의 다 사라졌다. 이미 1970년대부터는 극히 희귀종으로 전락한 셈이다.

취재 협조 = 원돈 주지스님, 원초 스님, 하정옥 곤충전문가, 박용수 생태전문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긴꼬리를 들고 바위에 영역 표시를 하는 담비.

원초스님이 담비가 겨울철 먹이 부족으로 자주 출몰하는 곳에 매주 1회씩 먹이인 꿀에 절인 건포도를 주는 모습이 무인센서 카메라에 포착됐다. 스님은 혹시 밀렵꾼, 올무 등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도록 감시 보호도 신경을 쓴다.

담비를 유인하기 위해 준비한 꿀에 절인 건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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