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사자들 '또 다른 피해' 분통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 심판대에 오른 간통죄가 유명무실해졌다. 지난해부터 헌재의 간통죄 위헌 여부 결정이 미뤄지면서 전국 법원의 형사재판에서 판결을 미루거나 실형 집행을 연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형 선고도 거의 없어 사실상 사문화한 상태다.

23일 부산지법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난달까지 13개월 동안 간통죄로 재판에 회부된 건수는 모두 26건으로 이 가운데 15건은 선고가 있었고, 11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4개월이 넘도록 심리조차 열리지 않았다. 선고가 있었던 경우도 공소 기각(고소 취하) 판결이 절반가량이다.

간통제 판결이 이처럼 지연되면서 당사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부인을 간통 혐의로 고소한 A 씨는 "간통 고소는 이혼을 전제로 한 것인데, 재판이 지연되면서 또 다른 피해를 입고 있다"며 "위헌 여부와 관계 없이 현재 실정법이 있는 만큼 판결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통죄에 대한 처벌도 현저히 약해졌다. 지난해 8월 부산지법에서는 직장 상사와 직원 간 간통죄 재판에서 남성에게는 징역 8월, 여성에게는 징역 6월에 모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담당 판사는 "비록 죄질이 가볍지 않으나, 간통죄에 대한 처벌에 논란이 있는 점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전국 법원 기준으로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92건의 간통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간통 혐의에 사문서 위조 혐의가 포함돼 징역 10월을 받은 한 건뿐이다. 92건 중 64.1%인 59건은 집행유예, 28.3%는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선고 형량은 징역 6월(67.8%)이, 집행유예 기간은 1년(66.1%)이 가장 많았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는 "헌재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1심에서 선고가 있더라도 피고인이 항소할 것이고, 자연스레 형이 최종 확정되려면 시간이 소요된다"며 "법원이 헌재 결정 때문에 선고나 재판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1심 선고의 실익이 없기 때문에 결정을 지켜본다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간통제는 2008년 위헌심판에서 위헌 5, 합헌 4의 의견으로 위헌 정족수(6명)에 못 미치는 아슬아슬한 합헌 결정을 받았다. 올해 다섯 번째 위헌심판(헌법소원 포함)이 진행 중이다. 그동안 간통죄 폐지 여부를 놓고 간통죄를 폐지할 경우 성 관념이 문란해질 수 있다는 '존치론'과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 비밀의 침해를 우려하는 '폐지론'이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