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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룡호 실종 선원 가족인 고장운(왼쪽) 씨와 김치호 씨. 김성효 기자 |
- 정부·선사 후속대처 나올때까지
- 서울에서 시위 이어갈 예정
설 명절이 다가왔지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평범한 명절이 더욱 괴롭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침몰한 501 오룡호에 승선했다가 숨졌거나 실종된 국내 선원 11명의 가족 또한 가슴에 묻은 고인 생각에 제삿날보다 더욱 진한 슬픔을 머금고 있다.
오룡호 유족들은 선사인 사조산업과 보상 문제 등으로 오랜 갈등 끝에 사고 발생 75일 만인 지난 13일 부산 시민장례식장에서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하지만 기관장 김모 씨 등 선원 5명의 시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아 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김 씨의 사촌 형 김치호(58) 씨는 17일 "제수와 조카 등 남은 가족이 걱정"이라며 입을 뗐다. 20대 초반부터 배를 탄 김 씨는 위험한 직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사에 나섰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운명처럼 다시 바다로 돌아갔고, 배를 타다 마흔둘에 늦장가를 들었다. 슬하엔 이제 중학생이 되는 장남과 두 살 어린 아들이 있다.
한 번 나가면 평균 2, 3년씩 걸리는 배를 타던 김 씨는 이번엔 6개월짜리 조업에 나서는 오룡호에 타게 된 것을 기뻐하며 바다로 나갔다. 하지만 차가운 서베링해는 그를 집어삼켰다.
김치호 씨는 "동생의 큰아들은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쾌활한 성격의 호남형인 동생을 회상하며 옅게 웃음 짓던 김 씨는 이내 말을 끊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직 행방불명인 오룡호 처리장 마대성 씨는 쉰여섯이 되도록 독신으로 남았다. 그는 조업에서 돌아오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서울에 사는 사촌형 고장운(62) 씨를 찾아 술잔을 기울였다. 오룡호 가족대책위원장이기도 한 고 씨는 "시신을 찾은 가족들이 설을 앞두고 고인에게 떡국이라도 먹일 수 있게 돼 다행이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한 동생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저리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고 이후 현지에서의 선원 구조에 대한 실낱같던 희망이 점차 절망으로 바뀌어 가던 때가 가장 마음 아픈 시기였다고 말했다. 선사나 정부로부터 '제2의 오룡호' 사고를 방지할 해법도, 서베링해가 잠잠해지는 5월께부터의 수색 방침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한 이들은 합동 장례식 이후에도 서울에서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들 외에 아직 사랑하는 피붙이를 차디찬 서베링해에 두고 온 가족들은 제2의 오룡호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빌며 조용히 설을 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