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을 필요 없는 과목 인식
- 황당한 구조조정" 대학들 격앙
- 정부, 반발 일자 속보이는 꼼수
- "명칭서 '정원조정' 용어는 빼라"
"인문학도 아니고 인문교양이라뇨? 인문학을 학문이 아닌 소양, 교양 정도로 보는 교육 수장의 시각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단순히 계산법을 잘 가르친다고 창의적 인재가 될까요? 인문학을 바탕으로 과학이나 예술과 연계돼야 제2, 제3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어요. 대학을 단순히 기능으로만 분류하고 취업률 잣대 하나로 평가해 구조조정을 하자는 발상 자체가 우려스럽습니다."
6일 부산의 한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이공계 중심 대학 구조개혁 방침에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정부는 최근 산업수요가 적은 인문대나 사범대의 정원은 축소하고, 수요가 많은 이공계 정원은 늘리는 등 구조조정을 한 대학을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으로 지정해 150억~2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결국 취업률이 낮은 인문대 예술대 사범대 등 정원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말이다.
황 부총리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산업수요에 맞게 대학 인력공급을 조정, 양적 미스매치를 해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학생들이 일자리를 얻는 데 관심이 있고 지금처럼 모든 대학에 인문대학이 있으면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그것을 존치하기 위해서라도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 부총리는 지난 4일 서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열린 학생대표 10여 명과의 간담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그는 "취업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취업에 필요한 소양으로서의 인문학, 취업하고 난 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선 취업, 후 인문학' 설명에 대학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대에 맞지 않은 기존 학과들을 손질할 필요는 있으나 인문학을 당장 필요 없는 과목으로 취급하는 그의 시각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해양대 김태만 국제대학장은 "우리 대학이 개설한 인문학 아카데미에 공대를 나와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많이 수강한다. 인문학은 기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대돼야 하는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공계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 방침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자 교육부는 슬그머니 신규 사업의 명칭을 바꾸는 '꼼수'를 부렸다. 교육부는 '산업수요 중심의 정원조정 선도대학'이라는 표현을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으로 바꾸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총리가 업무보고 이후 현장 친화적인 용어로 바꾸라고 했다"며 "정원조정이 빠진 것은 이 표현이 지나치게 산업계 관점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부총리는 지난 4일 대학생과 간담회에서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에 대해 "특정 학문을 대상으로 당장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 수요에 맞게 유연성과 탄력성 있게 변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간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교육에 대한 근본 철학도 없이 대학을 취업공장으로 만들려 한다"는 대학의 반발을 의식한 '한발 물러서기'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