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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국회도서관 유치를 둘러싼 지자체 간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부산에서 유치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국회도서관 전경.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 본관, 임시수도 부산서 첫 출발
- 역사적 당위성에 기록물도 많아
- 서울 치중된 정보 접근성 개선
- 국가문헌 분산으로 재난 대처도
- 대학 많아 지식거점 육성 가능
'100만 권 장서 기증운동'과 '100만 명 서명운동'이 점화하면서 제2국회도서관 건립 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국회도서관은 면적이 절대 부족해 자료보존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정보서비스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제2국회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다. 그 입지로 부산이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은 국회도서관의 모태이자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최적지라는 것이다.
■국가도서관 없는 제2도시
서울에 위치한 국회도서관은 1988년 신축 개관한 본관과 2006년 문을 연 의정관 지하에 서고를 두고 있다. 건축 연면적은 총 3만9310㎡ 규모다. 서울에는 국회도서관뿐만 아니라 또 다른 국가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서울 서초동 본관(연면적 9만7724㎡)과 역삼동 분관(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으로 연면적 8050㎡), 세종시 분관(연면적 2만1079㎡) 3개 관으로 나뉜다. 이 중 국립세종도서관은 국내 처음으로 지방에 설립된 국가도서관이다.
서울에는 3개의 국가도서관이 있고 지방 최초로 세종시에도 국가도서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아직도 인구 350만 명의 우리나라 제2 대도시이자 지역균형발전의 거점인 부산에 국가도서관이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국회도서관 확장 요구는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현재 면적이 부족해 확장의 필요성이 꾸준히 나온 것이다. 창조적 지식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식기반사회로 바뀌면서 정보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는데 국회도서관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제2국회도서관 설립은 한계 상황에 직면한 장서 수용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까지 서울에 치우친 정보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개선할 수 있다. 국가문헌을 분산 보존함으로써 재난 때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효과도 크다.
■부산은 국회도서관의 '고향'
서울에는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이 있고, 중부권에는 국립세종도서관이 개관했다. 호남권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아시아문화정보원)이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영남권 주민만 유일하게 국립도서관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총 1293만 명으로 전 국민의 25.7%를 차지하는 영남권 인구가 국립도서관 서비스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우리나라 제2 대도시이자 영남권의 거점도시로서 부산은 제2국회도서관이 들어설 입지로 손색이 없다. 외국도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제2 거점도시에 국가도서관을 개관해 운영 중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제2 대도시인 오사카에 국립국회도서관 분관인 간사이관이 2002년 개관했다.
부산은 또한 지식거점으로 기능할 인프라가 충분하다. 우선 대학과 대학생이 많다. 부산지역 대학은 전문대를 포함해 총 24개나 된다. 대학생 인구도 15만 명에 육박한다. 울산 경남 대구 경북 등 인접지역까지 포함하면 전국 대학의 27%가 영남권에 분포해 있다. 부산에 제2국회도서관이 자리 잡게 되면 인접 지역대학과 학술연구 교류가 활발해진다. 부산은 그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제2국회도서관이 부산에 건립되면 연구자료를 찾기 위해 더는 서울로 갈 필요가 없다. 연구와 교육이 지역에서 더 편리하고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다. 지식과 문화의 수도권 집중 현상 완화와 지역균형발전이 자연히 따라온다.
무엇보다 역사가 왜 부산이어야만 하는가를 설명한다. 국회도서관은 사실 부산에서 먼저 출발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2월 20일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국회도서실이 3600여 권의 장서를 갖추고 개관하면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이는 국회도서관 첫 번째 분관 입지가 부산이 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부산은 특히 구한말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독립과 한국전쟁을 겪고 산업화 시대, 탈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도시로 역할을 다해왔다. 그만큼 역사기록들이 많았지만 사료들이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산은 또한 이승만 독재에 맞선 4·19, 유신독재에 저항한 부마민주항쟁과 1987년 6월 항쟁 등의 중심지로서 '민주 성지'라고 일컬어진다. '민주주의 도시'에 민주주의를 기록하는 의회 도서관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라대 조명제(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제2국회도서관이 들어서면 동남권부터 넓게는 우리나라 근현대기까지 사료와 문화유산을 발굴, 정리해 이를 연구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며 "부산에 있는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의 축적된 비결을 국회도서관과 공유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유발효과 상당
부산에서는 2006년, 2007년 국가도서관 분관 유치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부산발전연구원은 2006년 당시 국가도서관 분관이 부산에 들어설 경우 경제효과를 산정했다. 1500억 원 투입으로 생산유발효과 3500억 원, 부가가치유발 1500억 원, 고용유발 3485명, 취업유발효과 4395명이었다. 물론 경제효과는 재산정해야 하지만 제2국회도서관 건립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제2국회도서관 유치를 계기로 열악한 지역의 도서관 인프라 수준도 개선할 수 있다. 우리나라 도서관 인프라 수준은 낮은 편인데 특히 부산은 다른 대도시보다 사정이 좋지 못하다. 부산은 인구 1인당 장서 수가 1.21권으로 6대 광역시 평균(1.27권)에 미치지 못한다. 대구(1.31권) 인천(1.14권) 광주(1.42권) 대전(1.50권) 울산(1.20권) 등 부산보다 열악한 곳은 인천뿐이다.
# "9년 전 국가도서관 유치 실패 '반면교사', 시민 힘 제대로 모아 건립 이끌어 낼 것"
■ 김대래 범시민위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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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래 운영위원장이 제2국회도서관 부산 유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
"부산은 2006년 국가도서관 분관을 유치하려다 실패한 뼈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전문가 주도로 준비는 잘했으나 시민의 역량을 모으는 데는 부족했다고 봅니다. 부산은 다시 한 번 국가도서관 분관을 유치할 좋은 기회를 맞았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에너지입니다. 시민 의지에서 추진력과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2국회도서관 부산유치 범시민위원회 김대래(신라대 교수·부산경실련 대표) 운영위원장은 국회도서관 부산 분관 건립운동에 시민이 주체로 나서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역사회의 열망과 절실함만이 국가도서관 유치라는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범시민위원회가 탄생했다. 지난달 24일 출범한 범시민위는 학계 상공계 언론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지역의 시민사회를 총괄한 단체다. 부산대 김기섭 총장,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등 6명이 상임고문을, 김무원 부산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박희두 부산시민재단 이사장 등 8명이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운영위원은 현재 30명가량이며 참여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범시민위라는 이름답게 '열린 조직'을 지향하는 것이다.
범시민위는 다음 달부터 100만 권 장서 기증운동, 100만 명 시민 서명운동 등을 벌여 제2국회도서관 개관을 위한 시민 에너지를 모을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장서 기증운동과 서명운동을 통해 시민 스스로 제2국회도서관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라며 "특히 귀중한 사료와 장서를 많이 가지고 있는 대학 교수나 학자의 참여가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캠페인 대상도 부산을 넘어 울산 경남으로 확대한다. 그는 "제2국회도서관은 지역 학술과 연구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에 동남권 지식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제2국회도서관을 어떤 콘텐츠로 채울 것인가는 더 논의해봐야 하지만 동아시아학과 지역학, 한국 근현대사 등의 전문 분야로 차별화한다면 동남권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식정보의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