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제구 방문간호사 김묘연(여·57) 씨는 보건소 방문간호사실에서 10명의 동료(운동관리사 1명 포함)와 함께 생활한다. 그는 매일 오전 8시30분께 사무실에 도착한다. 방문 가정과 전화로 약속을 잡는 데서 그의 업무는 시작된다. 하루에 많으면 10가구 정도를 방문한다.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노인용 기저귀, 파스, 운동용 고무밴드, 혈압 측정기 등 필요한 물건도 꼼꼼히 챙긴다. 

8일은 그가 6년 6개월 동안 담당했던 '연산8동'을 떠나는 날이었다. 이제 담당 지역은 '연산4동'으로 바뀐다. 첫 방문지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들이 함께 사는 집이다. 조그마한 냉방에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혈압 검사도 잊지 않았다. 파스를 건네며 담당자가 바뀐다는 말을 꺼내자 할머니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나 너무 외로워. 내가 이야기할 사람이 어딨어. 그동안 잘해줘서 너무 고마워." 할머니의 말에 김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다음으로 오는 쌤(선생님)도 잘 하실낍니더. 저 보고 싶으면 보건소로 놀러 오이소." 이별의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쌤 덕분에 우리 아들도 많이 좋아졌잖아. 정말 고마워. 숭늉이라도 마시고 가." 할머니는 미지근한 숭늉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방문간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일반 시민은 잘 알지 못한다. 일반적인 의료 업무는 곁가지일 뿐이다. 그들의 진짜 업무는 사람의 '마음'을 듣는 일이다.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6개월가량 지나야 속내를 드러낸다. 필요할 때는 보건소의 물리치료실, 구강보건실과 수혜자를 연결하는 일도 담당한다. 김 씨는 "우리는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쓸쓸한 마음을 보듬는 것이 우선이죠"라고 말했다.

힘든 때도 잦다. 위험할 수 있는 집은 두 명씩 짝지어 방문한다. 최근에는 한 수혜자에게 이유 없이 걷어차인 적도 있었다. 사나운 개에게 물린 동료도 있단다. 돌아가신 분이 살던 집을 지나갈 때면 마음이 무겁다. 가장 힘들 때는 병원에 가보라는 조언을 무시하는 사람을 만날 때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불평불만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누군가는 그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날 방문 두 번째 집은 암으로 꼬리뼈를 들어낸 할아버지가 사는 곳이다. 성인용 기저귀를 챙겨온 것도 그 때문이다. 자존심 센 할아버지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기저귀를 드릴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수혜자의 환한 웃음은 방문간호사가 사는 원동력이자 '인생의 재산'이다. 그 웃음을 보기 위해 시린 손을 비벼가며 그는 또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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