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덕교회(왼쪽), 남천성당

창조주가 하신 일의 맨 첫 번째는 빛의 창조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 1장 3절) 모든 것을 만든 다음에 짜잔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은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장면이겠지만, 성경은 모든 생명의 창조에 앞서서 빛을 먼저 두었다고 전한다. 무슨 의미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암(黑暗)의 상태였으니, 방에 불을 켜듯 빛을 먼저 만들었다는 단순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세상보다 앞서 존재하는 것이 빛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고래(古來)로 종교공간에서 빛이 유독 강조된 이유도 바로 이런 빛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공간 속으로 스며들어 온 근엄한 빛을 보며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자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역이용하여 인간을 강압하는 장치로 활용한 잘못된 역사도 없진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빛은 종종 신에 대한 상징이었으며 그 심오한 빛 아래에서 인간은 한낱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무소불위(無所不爲) 거들먹대는 우리 인간들에게 가끔은 이런 빛의 공간이 필요하다.

오늘, 성탄 전야에 이 빛이 잘 드러나 있는 공간을 찾아본다.

■ 거친 회벽에 스미는 한 줄기 빛

'구덕교회'

예배당의 묵직한 목문을 열어젖히니, 어둑한 공간에 빛이 스며드는 전면의 밝은 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빨려 들어가듯 빛을 향했다. 송판 무늬결이 있는 회색의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약간의 경사면을 이루며 서 있다. 스미는 빛의 효과를 극명하게 연출하기 위해 벽면에 접한 천정이 더 깊숙이 올라가 있고, 그 최상단부에 채광창을 뚫어놓았다. 그리고 빛의 상이 맺히는 딱 그 지점에 가로 세로로 엮인 가느다란 철물 구조물로 십자가를 걸어 두었다. 더 이상의 성상은 두지 않았다.

차가운 벽면에 내걸린 십자가는 하늘로부터 내린 눈 부신 빛을 받으며 광채를 발하고 있다.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승천의 환희이며 강림의 은혜였다. 그 어떤 미사여구가 없이도 빛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빛이 곧 '말씀'이다. 빛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하염없이 작은 인간임을 자백한다. 한 줄기 빛은 빈 공간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 채 앉았다가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된 측벽면은 폭이 각기 다른 쪽을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매우 모던하면서도 리드미컬한 패턴을 이루고 있다. 마치 오르간의 파이프 같기도 하고, 숱한 성도들의 기도소리 같기도 하다. 디자이너는 그 패턴을 교묘하게도 흡음장치나 좁은 수직 채광창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 패턴은 건물 외벽에도 같은 맥락에서 적용되어 있다. 다양한 크기의 현무암 쪽매는 독특한 색과 질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수직 채광창을 끼워 넣었다. 국내외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는 건축가 승효상의 재료와 디테일을 처리하는 노련미가 보인다.

사실 구덕교회는 승효상의 모교회다. 서울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부모와 본인의 신앙의 뿌리가 묻어 있는 곳이다. 유명한 건축가가 되어 모교회의 설계를 맡은 그는 옛 교회에 대한 추억과 종교공간의 본질이라는 씨실과 날실을 오가며 새로운 형태를 직조해 넣었다. 무엇보다 차별화된 아이디어는 교육동(사무동)과 예배당의 건물을 양쪽으로 나누어 벌림으로써 열린 마당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 여백의 공간에서 성도들은 교제를 나누며, 아이들은 뛰어논다. 교회의 다양한 행사도 벌어지며, 지역 사회를 향해서도 항시 열려 있다. 전통한옥의 마당이 가진 매개 기능 혹은 다기능(multi-function)의 지혜가 그대로 전수되어 있다.

■ 스테인드글라스에 투영된 찬란한 빛

'남천성당'

결혼식으로 찾은 성당의 내부는 빛으로 충만해 있었다. 엄숙하고 경건한 예식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 그림자는 찬란함을 더했다. 바닥과 적벽돌 벽에 투영된 색깔의 신비로운 빛 향연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신랑 신부는 온데간데없고 내 눈에는 온통 빛만이 그 공간의 주인공이었다.

가로로 60m, 세로로 27m의 경사진 유리면 전체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적용된 남천성당.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 과정을 거쳐 설치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고딕시대로부터 종교의 메시지를 공간 전체 분위기에 담아내는 중요한 표현기법이었다. 이곳의 도안은 구상과 비구상이 섞여 있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큰 원 세 개를 중심으로 그 안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천지창조의 과정도 보이고, 인간 구원의 역사도 표현되어 있다.

이 유리면을 지탱하기 위해 경사면에는 거대한 버팀벽(buttress·안정을 높이기 위해 덧대는 지지벽)이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직삼각형 공간의 전면은 원형 돌마감 벽을 배경으로 한 제단이 있고, 후면 2층에는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성가대석과 오르간을 두었다. 고풍스러운 적벽돌로 된 직각의 벽면은 공간 전체를 붙들고 있으며, 45도의 경사면에는 흰색 프레임이 벽감(壁龕·벽면에 움푹하게 후퇴한 부분)과 같이 성스러운 빛창을 하나씩 담아내고 있다.

성당 밖으로 나와서 보면 직삼각형의 건물 형태는 더 확연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배 모양 같기도 한 건물 외형은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디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오른편에 우뚝 선 종탑은 천국의 열쇠와도 같은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존 교회건축의 전통적 형식을 탈피한 대담한 구조를 가졌다.

예수 그리스도 목상(木像) 위에 빛 그림자가 드리우자, 환청이 들린다. "아버지여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늘 향한 예수의 마지막 기도소리다. 공간에 드리운 빛은 강력한 설교요 천상의 찬송이다. 그 자체가 종교적 실체의 현현은 물론 아닐지언정, 보살핌에 의지하고픈 유한자의 유약한 마음에는 분명 메시지(message·지표)이며, 마사지(massage·위로)로 다가온다.

■ 빛을 잃은 거리, 빛을 잃은 교회

성탄을 맞아 거리는 화려한 장식과 흥겨운 캐럴로 들떠 있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허상을 뛰어넘어 건담 장난감 선물을 기대하며, 연인들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멋진 데이트를 희망한다. 화이트데이나 빼빼로데이와 같이 거리에는 온통 상업화된 이벤트의 날로 변질된 크리스마스밖에는 없다.

종탑 꼭대기에 세워 올린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는 세상을 향해 불 밝히고 있는 것일까? 종탑까지 뒤덮은 화려한 반짝이 불빛은 예수 탄생을 맞는 교회 최상의 표현일까? 매주 목청 높여 설파하는 목사님과 신부님의 말씀들은 신자의 삶을 깨우치는가? 자문한다. 반문한다. 빛은 어디에 있는가? 빛을 잃은 거리와 빛을 잃은 교회에 진정한 '빛'을 대면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 그 빛을 만나기를 기원한다.


# 구덕교회

·위치 : 부산 서구 서대신동 · 규모 : 지하3층, 지상7층, 5,411.4㎡

·시설 : 예배당, 사무실, 기도실, 식당, 카페

·건축가 : 승효상(이로재) · 문의 : 051-255-1304, http://guduk.or.kr


# 남천성당

·위치 : 부산 수영구 남천동 ·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4,473.3㎡

·시설 : 대성전, 사무실, 교실, 식당

·건축가 : 강석원(그룹가) · 문의 : 051-623-4528, http://www.ncsd.or.kr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