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만5000원이 든 봉투. 부산 구세군 대연교회 제공

지난 22일 오후 9시30분께 부산 남구 구세군 대연교회. 모금된 자선냄비를 계수하던 김태근(54) 사관이 낯익은 봉투를 발견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현금 36만5000원이 들어있었다. 이름 없는 봉투 겉면의 한자 메시지도 여전했다. 다만 1000원짜리 지폐 365장이 올해는 5만 원 지폐 7장, 1만 원 1장, 5000원 한 장으로 바뀌었다. 김 사관은 "올해는 소식이 없어 건강에 이상이 생기신 건 아닌가 걱정했다"며 "존함도 모르지만 정말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15년 가까이 매년 성탄을 앞두고 부산역 구세군 자선냄비에 36만5000원을 기부하는 이름 모를 노인의 따뜻한 사연이 전해져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역 광장에서 구세군 모금 봉사를 20년 넘게 이어온 김성화(45) 씨에 따르면 이 익명의 '산타'는 IMF 구제금융위기 이후부터 매년 같은 액수를 기부해왔다. 남성이며 연령대는 80대 정도로 추정되고 봉투 겉면에는 '1일 1000원씩, 1년 36만5000원'이라는 문구와 함께 한자로 메시지를 남겼다. 올해 메시지는 '고복격양(鼓腹擊壤), 포민만세(飽民萬歲)'였다. '매우 살기 좋은 시절, 백성들이 배불리 먹어야 나라가 잘된다'는 내용이다. 그간의 메시지는 폐기해 안타깝게도 확인이 안된다.

김성화 씨는 "수수한 차림으로 찾아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봉투를 넣으신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지팡이를 짚고 아주 힘겹게 걸어오셨다. 매년 12월 15일 전후로 오시는데 이번엔 조금 늦으셨다"고 전했다. 김태근 사관은 "IMF 사태가 터졌을 때 전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이런 분의 손길이 있어 세상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며 "매년 기다리게 되는데 올해도 뵙게 돼 반갑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의 구세군 자선냄비는 지난 6일부터 부산역 서면 남포동 등 총 14곳에 설치돼 24일 밤 10시까지 모금 활동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