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능력 향상을 위해 2010년 도입한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가 시행 5년째를 맞았지만 교사 인권과 학생 인권이 충돌하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교사들은 교원평가 항목 중 정성평가(자유서술식)에서 학생의 언어폭력으로 교권이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며 기명 평가 등 제도적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기명으로 바꿀 경우 학생 권리를 침해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부산 A고 김모 교사는 지난 9~11월 실시한 교원평가 결과서를 최근 받은 뒤 충격에 빠졌다. 자유서술식 평가 결과서에 '븅×××, 지×하지마. ㅅㅂ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치든?'이라는 등 욕설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동료인 박모 교사는 한술 더 떠 성희롱적 언어폭력을 당했다. 이들은 지난 19일 부산시교육청에 '이 같은 평가를 한 학생의 신상정보를 알려달라'는 내용의 민원서를 제출했다. 시교육청은 "학생 정보는 저장되지 않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17년 교사 생활 중 이런 인신공격은 처음이라는 김 교사는 "학생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2차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쉬쉬할 수 없다"며 "학생을 올바르게 계도해야 하는 것 또한 교사의 책임이므로 교육청이 적절히 대처하지 않는다면 민형사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평가는 ▷학생의 교원평가 ▷학부모의 교원평가 ▷동료교사끼리의 교원평가로 나뉘며, 항목별로는 정량평가(객관식)와 정성평가로 구분된다. 문제는 학생의 교원평가 중 자유서술식 평가이다. 익명이라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난무하는 까닭에 교사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교사들은 "최소한 자유서술식 평가만이라도 기명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부산교원단체총연합회 정윤홍 사무총장은 "교권침해 요소가 다분한 현행 교원평가의 폐지 또는 과감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명으로 바꿀 경우 학생 권리와 충돌할 우려가 있다. 부산의 모 고교 3학년생은 "익명으로 해도 교사가 누구의 글인지 알아낼 수 있어 솔직한 평가가 어려운데, 기명으로 하면 학생이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욕설 필터링 강화 등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교육청 최숙현 장학사는 "필터링을 하고 있지만 교묘히 빠져나가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이번 평가 결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개선점을 찾겠다"고 설명했다. 교사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학부모들의 평가 참여율이 저조한 점도 문제다. 지난해 부산지역 학부모의 교원평가 참여율은 54%로 절반을 간신히 넘겼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정한철 정책실장은 "근본적으로 학교가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적인 공간으로 바뀌지 않으면 제도를 아무리 개선한다 해도 이러한 문제는 매년 반복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