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상구 학장동 부산광역시노인건강센터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난방시설. 일조량 부족과 잦은 고장으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강덕철 선임기자 kangdc@kookje.co.kr

- MB 정권 실적 쌓기에 급급
- 일조량 따지지도 않고 추진

- 보조금 노린 업체까지 난립
- 설계·시공 수준미달 상당수

- 설치비 비싸고 고장 잦아
- 전문가 "보급 중단된 지 오래"

"무용지물이에요."

부산 사하구 괴정동 인창실버웰 태양열 난방시설 관리자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17일 오후 산으로 둘러싸인 이 시설의 일조량은 한눈에 봐도 부족해 보였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발전시설은 사방이 트인 곳에 설치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곳 위치는 누가 봐도 고개를 젓게 했다. 이 관리자는 "태양열 난방 시설을 가동해도 물이 따뜻해지지 않아 쓸모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건물 옥상 대부분을 차지한 검정 집열판(태양의 복사열을 가두었다가 냉각액에 방출하는 장치)은 거대한 흉물처럼 보였다.

이 시설의 한 어르신은 태양열 난방 시설을 가리키며 "저게 없으면 산책이라도 하겠는데"라며 혀를 찼다. 태양열 난방 시설이 제구실을 전혀 못하면서 가스보일러가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태양열 난방 시설이 잦은 고장과 비효율성으로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사용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결국, 태양열 난방 시설은 정부와 지자체가 기술 검증과 일조량 등 주변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실행한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실패 사례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산시도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시가 올 들어 태양열 난방 시설을 점검한 결과 곳곳에서 문제점이 노출됐다. 기장군의 한 노인시설 집열기는 고장 나 있었고 중구 한 어린이집의 집열기는 아예 훼손됐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는 지난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의 간판으로 꼽고 있는 정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하면서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태양열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국가 기본에너지 계획을 통해 2.43%에 불과하던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11%, 2050년까지 50%까지 확대하겠다며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내놨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기치에 따라 석유 등 화석연료 에너지를 대체할 신재생 에너지로 태양열 난방 시설 설치가 빠르게 이뤄졌다. 지자체 역시 정부 시책에 맞춰 설치를 장려한 결과 주변에 산이 인접해 일조량이 부족한 데도 강행하는 경우가 일어났다. 복지시설과 요양원 등은 이 시설이 정부 보조금을 통해 거의 무상으로 제공되는 까닭에 설비 설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설치 업체들은 보조금을 노리고 우후죽순 난립해 설계·시공능력이 수준 미달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부산지역 신규 태양열 난방 시설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4, 5개 머물렀다가 2008년 12개로 증가한 뒤 2009년에는 24개로 급증했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이 사업은 태생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며 "핵심 부품인 집열판의 수명이 채 5년을 넘지 못하는 데다 겨울철 난방수가 자주 얼어 고장이 잦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많은 부품이 들어가 설치 비용은 상대적으로 높아 고비용·저효율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됐다"며 "이미 몇 년 전부터 관련 기술 개발·보급이 사실상 멈춘 상태"라고 덧붙였다.

◇ 연도별 태양열 시설 설치 사업 2005년  5개소 2010년  6개소 2006년  4개소 2011년  5개소 2007년  5개소 2012년  5개소 2008년  12개소 2013년  1개소 2009년  24개소 2014년  1개소 ※자료 : 부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