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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7월 10일 파키스탄에 있는 낭가파르바트(8125m) 정상에 선 김창호(왼쪽) 서성호 대원. |
- 다이내믹 부산 원정대 핵심
- 8000m급 14좌 최단기 등정
- 서성호 대원과 성공 일등공신
- 무산소 부분도 13개월 앞당겨
- 해발 0m부터 극한 등반 도전
- 루팔벽 신루트 개척 밑거름도
부산산악연맹은 2006~2011년 8000m급 14개 산을 모두 등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에서 8000m급 고산 등정을 성공리에 끝낸 단일 등반대는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가 유일하다. 그것도 5년 4개월의 최단기간 성공이라는 경이적인 세계 기록을 남기면서. 이같이 세계 등반사에 길이 남을 대업을 이루기까지는 2명의 일등공신이 있었다.
2007년부터 원정에 참여해 13개 봉을 오른 김창호 대원. 아쉽게도 2007년에 참여하지 못해 12좌를 등정한 한국 산악계의 차세대 주자였던 서성호 대원이 그들이다. 하나같이 밝은 인상과 낙천적 성격을 가진 이들은 멸사봉공의 팀워크로 하늘 아래 최고로 위대한 인간승리의 꽃을 피웠다.
'알피니스트'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은 둘은 5년 동안 한 해 두세 차례의 원정에서 무려 800여 일을 한 텐트에서 지내며 12개 봉을 함께 오른 환상의 2인조였다. 등정일에 정상에 서고 모든 짐을 챙겨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한다는 원정대의 원칙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울라기리는 6일 만에, 가셔브룸1·2봉은 9일 만에 올랐다. 로체는 베이스캠프 도착 3일 만에 등정, 최단시간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히말라얀 타이거처럼 거침없이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내렸다. 당시 국내외 히말라얀니스트들은 이들을 두 사람의 이름을 따 '쌍호(雙虎)'라 불렀다.
2011년 단일팀 최초의 8000m급 14좌 완등이란 대서사시를 남긴 둘은 이듬해 'From 0 to 8848'이란 개념을 도입, 해발 0m에서 세계 최고봉까지 무동력 극한 등반에 도전한다. 80여 일간의 대장정에 나선 이들은 인도 벵골만에서 갠지스 강을 따라 카약을 타고 150여 ㎞를 거슬러 올랐다. 이어 인도와 네팔 평원을 가로질러 히말라야 산맥에 이르기까지 900여 ㎞를 자전거로 이동한 다음 160여 ㎞를 걸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입성했다. 곧바로 등정 길에 나선 둘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무산소로 지구의 용마루에 섰다.
이로써 김창호는 통산 31번째 8000m급 14좌 완등의 위업을 이뤘다. 그는 14개 봉 모두를 인공산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올라 한국 최초로, 세계에서 14번째 무산소 등정자로 기록됐다. 7년 10개월 만에 14좌를 완등해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가 세운 최단기간 기록을 1개월 앞당겼고, 무산소 완등 부문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데니스 우룹코가 세운 기록을 1년 1개월이나 경신하면서 세계적인 산악인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서성호는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 운명, 한 줌의 재로 귀국했다.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고산 거벽 등반가 김창호. 1969년생인 그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운명적인 산악인생은 1988년 서울시립대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우연히 산악부에 들어간 그는 여느 산악인과 비슷하게 국내 산에서 등산을 배웠고, 거기서 싹튼 열정을 히말라야 고산으로 이어나갔다.
그는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관한 한 독보적인 탐험가로 통한다. 대학 시절 파키스탄 카라코람을 대표하는 대암벽 그레이트 트랑고 타워와 세계 최난의 거벽으로 꼽히는 가셔브룸Ⅳ(7925m) 동벽 신루트를 등반하면서 히말라야 대자연에 흠뻑 빠졌다. 이후 8차례, 1700여 일간 파키스탄의 빙하와 고봉을 탐사하며 고산 등정의 꿈을 키웠다. 2000년대에 들어서 5000~6000m급 6개 봉에서 단독 세계 초등정과 신루트 등정의 대기록을 세우면서 국내외 산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쌓은 경험은 낭가파르바트(8125m) 최난의 벽인 루팔벽 중앙 직등루트 상의 변형 신루트 개척이란 쾌거의 밑거름이 됐다. 이 산은 1953년 오스트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인 헤르만 불이 초등할 때까지 31명의 목숨을 앗아가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난봉이다. 특히 루팔벽 중앙 직등 루트는 세기의 철인 라인홀트 메스너 형제가 1970년 초등한 이후 아무도 오르지 못한 곳이다. 그는 2005년 루팔벽을 돌파, 정상에 선 뒤 서벽으로의 횡단에 성공했다. 당시 한국 산악계는 '한국 알피니즘의 역사에 새 장을 연 쾌거'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의 바투라Ⅱ(7762m), 네팔 페리히말의 힘중(7140m)을 세계 최초로 오르는 등 그의 등반활동을 다 열거하기엔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한국 산악계에 남긴 업적은 지대하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친동생으로 여기던 등반 파트너 서성호의 죽음 이후 그는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 올해 '수평의 세계'에 도전장을 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자전거로 달리며 이 지역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의 대장을 맡아 100여 일간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장장 1만5000㎞의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산에 입문한 이래 '신들의 영역'이라는 히말라야에 깊이 빠져 25년간 치열한 등반활동을 펴왔던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결혼과 대학 졸업의 소망을 이뤘다. 이제 40대 중반 나이에 걸맞게 '수평의 세계'로 전환할 것인지, 욕망을 따라 젊은 날의 꿈을 좇아 '수직의 세계'를 계속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 중인 그의 결단이 기대된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