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경남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여·65·오른쪽) 씨가 마을 뒷산 중턱에 건설된 송전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웃주민 고준길(70)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노수윤 기자

- 송전선 가설끝나 내년 전력 송전
- 고소·고발 주민 70여명 사법처리
- 투쟁대책위 조합 결성 서로 의지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8일 찾은 경남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사랑방' 앞에 이 같은 글이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사랑방은 지난 6월 용회마을, 상동면 고답마을, 부북면 평밭마을 등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7개 마을 주민들이 각자 마련한 모임장소의 이름이다.

용회마을 사랑방으로부터 직선거리로 100m가량 떨어진 산 중턱에 송전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송전탑 건설지에 천막을 치고 점거농성을 하는 등 주민들은 극렬히 저항했지만 경찰 병력을 동원한 한전의 공사 강행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부북·상동·단장·산외면에 765㎸ 송전탑 52기가 세워졌고, 최근 송전선 가설까지 끝나 내년 초부터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이 송전된다. 10년간 이어진 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주민들의 상처는 컸다.

"지난해 10월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뒤 농사일을 놓고 탑이 건설되는 산에 오르내리며 싸웠어요. 하지만 끝내 탑은 세워졌고 농사는 망쳤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작물 가격이 하락하고 소값도 떨어져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용회마을 주민 김옥희(여·60) 씨의 얼굴에는 그간의 고초를 증거하듯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송전탑 건설로 재산가치도 급락했다. 송전탑 공사 재개 후 용회마을에서 가장 잘 지어진 현대식 주택의 집주인은 3억5000만 원에 집을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값을 2억 원 낮춘 1억5000만 원에 겨우 팔고 떠났다고 고준길(70) 씨는 전했다. "이것만 봐도 재산 피해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겁니다. 그런데도 배당된 보상금은 200여만 원뿐입니다. 그것도 향후 어떤 피해가 발생해도 더는 보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서 말이죠." 고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송전탑 건설지역 주민 260여 가구가 아직 한전과 피해보상 합의를 하지 않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송전탑 건설 반대 과정에서 주민 수백 명이 고소·고발됐고, 현재 70여 명이 사법처리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펼침막의 글귀처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있다. 요즘 매일 밤 사랑방에 모여 수예품을 만들고 있다. 고소·고발된 이웃을 돕기 위해서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는 그런 주민들의 버팀목이다. 대책위는 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을 운영하면서 주민들이 생산한 농작물 거래를 주선하고 있다.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은 "주민들은 보상이 아니라 송전선 피해를 줄일 수 있게 우회송전, 지중화, 마을과의 이격 등을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와 한전은 주민들의 이 같은 요구를 외면한다"며 "이런 실태를 국민들에게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