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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 지원대원으로 참가한 곽연기 회장이 팡라고개 에서 에베레스트 산군을 배경으로 섰다. |
- 불혹 넘겨 등산학교 다니며
- 백두산산악회 초대 회장 역임
- 10년 걸쳐 4000여 ㎞ 대장정
- 금정산 쓰레기 수거 봉사 등
- 자연보호 공로 금정대상 수상
우리나라 모든 산줄기의 근간인 백두대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누구보다 관심을 둔 사람은 산악인이다. 허구한 날 산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이 산줄기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거져 나온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날벼락 같은 소리에 대간과 정맥 등산은 요원의 불길처럼 산꾼들에게 번져갔다.
당시 고산자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정말 산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백두산까지 이어져 있는지, 풍수지리설에 의한 추상개념은 아닌지, 태백산맥이 한반도의 등뼈가 아닌 백두대간에서 가지 쳐 나온 낙동정맥이 확실한지 자기 발로 걸어서 확인해 보고 싶어하는 이가 꼬리를 물고 종주에 나섰다. 대부분은 백두대간에 도전했고, 정맥 종주는 다른 정맥보다 고도가 현저히 높아 산행하는 맛이 있는 낙동정맥이 주를 이뤘다. 그외 낙남·호남·금남·금북·한남·한북정맥 등은 그 지역 산꾼들이 간혹 찾는 정도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부산지역에서도 많은 이가 도전했는데, 대표적인 산악인이 백두산산악회 곽연기(1941~) 초대 회장이다. 그는 이순을 넘긴 나이에 휴전선 이남에 있는 백두대간과 9정맥 모두를 완주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한 낙동·낙남·호남정맥을 제외한 나머지는 단독 행이었다. 그가 대간과 정맥종주에 나선 것은 여느 사람들처럼 민족혼이 스민 산줄기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등산가이자 지도 연구가인 이우형 선생이 대간과 정맥 복원을 위해 전국을 돌며 홍보하는 데 감동해 우리 국토의 상징인 백두대간 줄기를 내 발로 직접 밟아 보고 싶은 충동에서 종주를 시작했다. 일제에 의해 왜곡됐던 우리 산줄기를 걸으면서 숭고한 애국심 같은 것을 느꼈고,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승화돼 이북의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는 그날을 기원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곽 회장이 처음 도전한 곳은 지리산 웅석봉에서 강원도 진부령으로 이어지는 700여 ㎞에 달하는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 단행본을 처음 펴낸 부산운봉산악회 이동화 회장의 조언을 받아 1996년부터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대간을 찾았다. 혼자 험난한 길을 뚫으며 실낱같은 마루금을 찾느라 길을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릉 앞바다 잠수함 침투사건 때는 무장공비 토벌작전이 끝나기도 전에 종주에 나섰는데, 주민 신고로 공비로 오인 받아 경찰에 연행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백두대간 단독 종주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본격적인 정맥 종주에 나서 낙동정맥을 비롯한 9정맥 완주에 10년이란 세월을 바쳤다. 그러는 동안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두 번이나 더 밟아 국내 산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50대에 시작해 6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한민족의 얼이 담긴 마루금 4000여 ㎞를 걸으며 인생 최고의 추억을 남긴 그는 2005년 10년간의 발자취를 담은 '백두대간, 9정맥 종주기'를 자비로 찍어내 산악단체와 지인에게 나눠줘 산줄기 등산붐을 일으킴으로써 국토 인식의 새 장을 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부산은 물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대간 9정맥 종주보고서'를 펴낸 곽 회장의 고향은 경북 선산군 장천면 금산 턱골마을. 대구사범학교 병설 중·고교를 나와 부산으로 이주한 그는 해군에 복무한 덕택으로 외국선사에 들어가 젊은 시절 전 세계를 누볐다. 1980년에 들어서 15년간의 해상생활을 접고 육지에 정착한 뒤 낚시를 즐기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 시골 출신답게 자연스레 산으로 향했다.
올바른 등산을 배우기 위해 불혹을 넘긴 나이에 젊은이 틈에 끼여 부산등산학교와 부산적십자등산학교를 나왔다. 이후 백두산산악회를 창립, 본격적인 산악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오랜 선상생활로 사회 물정을 잘 몰라 호구지책으로 등산장비점을 차렸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의 왕성한 산악활동을 장삿속으로 깎아내리면서 깊은 상처를 줬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등산에만 몰두했다.
곽 회장은 30여 년의 산악 인생 중 가장 보람된 일로 금정산 일대 쓰레기 수거와 산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무흔적 운동'을 꼽는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시작한 이 운동은 그가 취미 삼아 하는 봉사활동 중의 하나다. 금정산을 자식처럼 여기며 일주일에 두세 차례 능선과 계곡 구석구석을 누비며 담배꽁초 하나까지 주웠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자 점차 소문이 퍼져 산악회 회원은 물론 주위 지인까지 동참하면서 금정산 자연보호에 적잖은 이바지를 했다. 이에 부산 산악계는 2009년 그에게 '금정대상'을 안겨줬다.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독도학교를 나와 부산지역 등산학교 독도 강사로 활동했던 그는 몇 년 전부터 자비로 독도학교를 열고 있다. 또 야생화에 깊이 빠져 금정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를 돌며 촬영한 야생화는 수천 점에 달한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산악활동에 솔선수범해 부산지역 등산동호인의 본보기가 되는 그의 생애 마지막 소망은 북녘의 대간과 정맥 마루금을 밟는 것이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