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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월 (사)부산산악포럼 통상총회에서 축사하는 김정실 대표. |
- 1967년 부산대 산악부 인연
- 산은 인생 최고의 선택 자부
- 강연회·연감 발간 문화 선도
- 2009년 포럼 비영리 법인화
- 2011년 '금정대상' 수상 영예
- 부산산악문화회관 건립 추진
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대 들어 부산을 대표하는 산악단체마다 각각 뜻깊은 전환점을 넘어섰다. 한국산악회 부산지부는 2005년 회갑을 자축했고, 부산학생산악연맹과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은 30년의 한 세대를 지나 장년에 접어들면서 50년, 100년으로 이어갈 미래를 준비했다.
당시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등산인구가 날로 증가, 산악활동 영역의 양적 질적 팽창과 더불어 다양화돼 새로운 산악운동이 요구됐다. 이에 한국산악회 부산지부는 청소년 등산아카데미에 주력했고, 부산학생산악연맹은 날로 줄어드는 후배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순수 알피니즘 추구를 위한 구성원의 질적 향상에 힘썼다. 한편, 생활체육 위주의 활동을 펴온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은 부산시체육회 경기단체로 정식 가맹해 등산을 엘리트 스포츠의 한 경기종목으로 정착시켜 연맹 위상은 한층 높아졌으나 짐은 더 무거워졌다.
이같이 부산 대표 산악단체들이 산악운동 추진 방향을 시대적 사회적 요구에 걸맞게 새로이 설정함에 따라 전통의 산악문화를 선도할 제3의 단체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이에 부산 산악 3단체의 뜻있는 원로와 학창시절부터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활동을 펴온 중견 산악인을 중심으로 2003년 '부산산악포럼'이 탄생했다. 초대 대표에는 부산대OB산악회와 부산학생산악연맹을 이끌었던 김정실 회장이 추대됐다.
김 대표는 포럼 창립 목적에 맞춰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매년 산악강연회와 등산의학세미나를 열고, 산악에 관한 연구·조사 활동 등으로 새로운 산악문화를 선도해 나갔다. 또 '포럼 산악상'을 제정, 원로 산악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본보기 삼을 만한 선배들의 행적을 후진에게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산악인이 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부산 산악사를 비롯해 부산·경남 명산 소개, 국내외 산악계 소식 등을 총망라한 '부산산악연감(마운틴포럼)'을 매년 펴내 부산은 물론 국내 산악문화 활성화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그러나 초대 대표를 맡아 7년간 포럼을 이끌면서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산악활동을 추구하던 구성원 간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갈등도 있었다. 또 산악계 일각에서는 다른 단체보다 다소 많은 회원 분담금에 귀족 단체라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기존 산악단체가 있는데도 새 단체를 만들어 차별화한다는 비난도 뒤따랐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유의 카리스마로 산악문화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부산 산악계 초창기를 이끌었음에도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져가는 선배 산악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를 넓히고자 원로·중견 산악인을 꾸준히 영입했다. 또한, 한국 산악계의 양대 산맥인 한국산악회와 대한산악연맹 다음으로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2009년 부산산악포럼을 체육 관련 비영리 법인화하면서 재창립, 오늘날 전국에서 알아주는 산악단체로 성장하는 토대를 세웠다. 이러한 공로로 2011년 산악인의 영예인 '금정대상'을 받았다.
부산은 물론 국내 산악문화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김 대표는 1948년 부산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상고를 나와 1967년 부산대에 입학, 넓은 가슴으로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는 등산에 마음이 쏠려 동아리 활동으로 산악부를 택했다. 그런데 선배들이 군에 갔거나 입대를 앞두고 있었기에 1학년 때 졸지에 산악부장을 맡았다. 이어 부산학생산악연맹 제2대 대표상임위원(재학생 회장)에 선임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년 365일 중 거의 반 이상을 산으로 등교하는 바람에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해 5년 만에 졸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하는 그는 한때 등산에 깊이 빠진 것처럼 뒤늦게 자신의 전공인 지리학에 심취, 군 복무(ROTC 10기) 후 언양에 있는 상북중·고에서 몇 년간 교편을 잡다 경남정보대 토목과 교수로 반평생 후학 양성에 힘썼다. 특히 만담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그는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평소 부산산악문화회관 건립 추진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우리나라 국민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등산하는데 등산 교육장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등산을 개인이 즐기는 단순한 놀이 정도로 단정하는 행정당국의 인식이 문제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은 등산을 학문이라 생각하지 않는 우리 산악인에게 있다. 등산교육은 강사와 교육생만 있다고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강의실은 물론이고 각종 자료를 갖춘 도서관, 장비를 전시할 전시실, 누구나 와서 쉬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쉼터 등 산악문화를 한눈에 접할 수 있는 종합 공간을 갖춰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나 자신부터 부산에 산악문화 공간을 마련하는 데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김 대표는 35년간 몸담았던 경남정보대를 2012년 퇴임한 후 젊은 시절 못다 이룬 산악인생의 꿈을 실현하고자 주로 혼자 국내외 명산을 비롯해 요즘 유행하는 둘레길 탐방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