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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겨울 설악산 설악골 빙폭을 오르고 있는 서성수 대장. |
- 1992년 푸모리서 실종 사고
- 자누 동계 세계 초등 참가 후
- 에베레스트 동계 서릉 초등도
- 부산빌라알파인클럽 창립
- 빅월등산학교 초대교장 활동
초창기 히말라야 등반은 산이나 지역의 접근성에 대한 단순한 지식으로 정상에 오르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 이후 유럽 산악강국들의 국가적 자존심을 앞세운 피크 헌팅시대가 끝나면서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루트로 오를 것인가를 고민하는 등반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초등정, 신루트 개척, 알파인스타일, 횡단과 종주, 단독, 무산소 등 극한 등반을 위해 히말라야 내원 깊숙이 자리한 거봉으로 향했다.
이어 정상에 오른 뒤 스키 스노보드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하는 획기적인 등반을 시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 특히 히말라야에서의 패러글라이딩 비행은 항공 스포츠인들에게는 '꿈의 활강'으로 불린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패러글라이딩 등반은 1987년 일본의 다카하시 미치코가 초오유(8201m) 정상에서 베이스캠프까지의 활강에 성공, 최고도 비행기록을 세우면서 모험을 좇는 등반가들에게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92년 봄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한국은 물론 세계 항공 스포츠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부산빌라알파인클럽의 패러 원정대를 이끈 서성수 대장은 에베레스트 옆에 있는 '세계 10대 미봉' 중의 하나인 푸모리(7138m) 등정 후 페리체 마을까지 약 30㎞를 활강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장도에 앞서 "등정 후 활강 비행하는 모험적인 도전은 한국은 물론 세계 등반사에 새로운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리라 본다. 악천후로 비행이 불가능해도 날씨가 호전될 때까지 기다려 절대 걸어서는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푸모리에서 최초로 시도된 활강 모험에는 서 대장을 비롯해 강종삼 권주현 강석규 서영덕 김백균 대원 등 6명이 함께했다.
등반에 나선 이들은 남서벽 상에 캠프1을 설치한 뒤 한 차례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해 성공했다. 서 대장은 등반 시작 15일 만에 서영덕 김백균 대원, 고소포터 1명과 함께 정상에 섰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악천후로 정상에서의 비행을 포기하고 6900m의 마지막 캠프로 내려와 재도전을 위해 머물다 다음 날 아침 눈사태로 등정자 4명 모두 실종됐다. 1972년 마나슬루에서 김정섭 원정대의 대원과 고소포터 15명이 조난사한 이후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상 20년 만의 최대 참사로 기록됐다. 특히 서 대장은 그의 동생과 함께 불귀의 객이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부산지역 패러글라이딩의 개척자 서성수(1959~1992). 그는 학창시절부터 클라이머로 활동한 부산에서 몇 안 되는 히말라얀니스트였다. 1984년 겨울 '스핑크스' '잠자는 사자'로 불리는 히말라야의 괴봉 자누(7711m) 원정에서 탁월한 등반능력을 발휘, 동계 세계 초등을 일궈내는 데 힘을 보탰다. 이어 이듬해 에베레스트 서릉 동계 초등 등반대에 참가했고, 1988년에는 다울라기리(8167m) 한국 초등에 일조하면서 산악계에 이름을 널리 떨쳤다.
부산 기장군 장안이 고향인 그의 산악 인생은 대학 시절 시작됐다. 1970년대 말부터 솔뫼알파인클럽과 뫼무리산악회에서 활동하다 1987년 전문등반을 추구하던 후배들과 함께 기술등반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자 부산빌라알파인클럽을 창립,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 당시 사회적 인지도가 낮았던 스포츠클라이밍의 활성화를 위해 회원들을 전국 대회에 파견해 견문을 넓히게 하는 한편, 부산·마산·창원지역 클라이밍연합회를 결성하는 등 등반계의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 1989년부터 오늘날까지 부산지역 스포츠클라이밍 인구 저변 확대는 물론 우수 선수 배출에 이바지하는 '전국 우정암벽대회'도 그가 만들었다.
그는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1990년 거벽 등반 교육을 위한 알파인교육센터(빅월등산학교 전신)를 설립, 초대 교장을 맡아 오늘날 부산 등반계를 이끌어가는 많은 클라이머를 배출했다. 이후 패러글라이딩에 심취한 그는 부산 최초로 파일럿 자격을 취득해 부산패러글라이딩 스쿨을 열고, 부산패러글라이딩협회 창설에 앞장서는 등 항공레포츠계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솔뫼알파인클럽에서 같이 활동했던 8000m급 14좌 완등자 김재수 씨는 "그는 비록 늦게 기술등반에 입문했지만, 10여 년간 진취적인 사고로 오직 등반에만 몰두한 정열적인 클라이머였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정말 강렬했다"고 회고했다.
부산의 대표 등반가였던 서성수. 험난한 자연 속에서 자기 극복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심화하려고 정열을 쏟았던 그는 힘들고 어려운 것을 거부하고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와 현대인에게 보람찬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히말라야에서 영원한 산이 됐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