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이 부산 문화 발전 방안을 찾으려면 부산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 부산 문화융성 전략은
- 시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고
- 市는 관련기업 적극 지원
- 부산을 문화 근거지 만들자
# BIFF에 바란다
- 실험적 영상도 포용하고
- 프로그래머 권한 지켜줘야
- 20년 결산 행사하면 좋을듯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 만 77세인 그는 지금도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부산 문화의 비전을 정체성 확보와 전문가 중심에서 찾았다. 젊은이에겐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성공의 지름길이란 덕담을 잊지 않았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절정에 이르던 지난 9일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김동호 위원장이다.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느라 아주 바쁘다.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그만뒀지만 아직 해외 영화제 초청이 많다. 올해만 해도 베를린·칸·베니스영화제를 다녀왔고, 앞으로도 3, 4개 영화제를 더 갈 예정이다. 재작년부터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문화융성위 위원장을 맡았다. 비상임이지만 거의 매일 출근한다. 예전에는 국내를 돌아다닐 일이 없었는데 지난 2년간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을 만나고, 거의 매일 저녁 전시회 공연 음악회 등을 다니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겠다.
-문화융성위원회는 국민행복, 국가브랜드 육성이라는 대통령의 공약·가치 실현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문화융성 정책에 맞춰 부산이 해야 할 과제나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BIFF를 시작할 1990년대만 해도 부산이 문화의 불모지라는 이야기 많았다. 영화제 성공 이후 부산에서 이뤄지는 많은 문화 이벤트가 비교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부산이 문화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진정한 문화도시가 되려면 시민 모두가 문화활동 주체가 돼야 한다. 시민이 자연스럽게 문화활동을 접하며 메마른 삶을 풍성하고 여유롭게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이 스스로 공연장, 전시장을 찾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게 문화도시라고 생각한다. 세계에 그런 문화도시가 많다. 유럽연합에서는 1985년부터 유럽의 한 도시(지금은 두 개 도시)를 문화수도로 정해 도시 자체가 문화로 풍요롭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한다.
부산도 문화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영화 쪽은 이미 BIFF가 있고 영화정책기구인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등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투자사, 제작사 등이 부산으로 와서 시나리오 작업부터 완성하기까지 부산에서 가능해야 진정한 영화도시라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시가 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다른 문화예술 분야도 그렇다. 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시민의 문화활동 향유 그리고 문화예술활동의 근거지화가 필요하다. 시의 정책이 이 같은 세 가지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반송동의 작은 도서관 운동, 또따또가, 백년어서원 등이 그렇다. 시가 조금만 지원하면 그런 자생적 문화운동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BIFF와 위원장님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BIFF 성공 요인을 부산 문화 발전에 활용하자면 어떤 제안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칙을 두 가지만 들겠다. 먼저 '정체성'(identity)이다. 즉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BIFF는 아시아 신인감독을 발굴해 키우면서 성공했다. 아시아 영화감독들에게 제작비나 후반작업비 등을 지원하고, 영화 지망생을 불러 교육해 해외로 알리고 뒷받침해 주었다. 부산비엔날레, 부산국제연극제, 부산국제합창제 등 행사가 부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부산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색깔 있는 행사로 가야 한다.
나머지는 관이 주도하지 말라는 거다. 전문가 중심으로 나가는 게 좋다. BIFF가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자율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지원만 받고 운영은 독자적으로 해왔다. 다른 영화제들이 기복이 심한 것도 계속 사람을 바꾸면서 일관성이 없고 정체성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도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럽 많은 도시의 형성 과정을 보면 주역은 항상 문화예술인이다. 1990년대 초 세계의 문화도시로 지정된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보자. 2차 세계대전 후 도시 재건을 고민했는데 그 중심에 건축가들이 있었다. 영국의 글래스고도 유럽의 가장 큰 조선공업도시였다가 조선산업 쇠퇴로 유령도시가 됐다. 1970년대 중반 도시개발이 시작됐는데 한 기업인의 예술품 9000점 기증이 문화도시화의 기폭제가 됐다. 지금은 문화도시로 유명하다. 부산시의 행사도 문화예술인이 주축이 되면 좋겠다.
-BIFF를 운영하면서 부산 문화의 한계도 절감했을 듯합니다.
▶부산의 문화 풍토가 굉장히 발전했다고 본다. BIFF를 시작할 때 관객의 80% 이상이 20~30대였는데 그들이 지금도 영화를 보니 결국은 40~50대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 관객을 이끌어갈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면서 관객층을 두텁게 하고, 영화제 질도 높여나가야 한다.
-BIFF가 내년이면 20회를 맞습니다. 성년이 되는 셈이죠. 내걸 만한 화두를 제안하신다면.
▶새롭게 도약하는, 새로운 지향점이 된다고 본다. 지금은 모든 예술 장르가 융·복합으로 나가고 있다. BIFF도 새로운 영상시대를 지향하는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전위적인 작가들의 영상을 실험적으로 이끌어나가면서, 보수적인 전통영화 기법도 발굴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20년을 결산하는 행사도 있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올해 BIFF 때 상영작 취소 압력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앞으로 프로그래머들이 자기검열의 덫에 걸리지 않을지 염려스럽습니다.
▶예민한 문제다. 그렇기에 영화제이기도 하다. 다른 데서 못 보여주는 것도 영화제니까 다 볼 수 있다. 프로그래머의 작품 선정·선택 권한은 살릴 필요가 있다. 모든 영화제가 영화 선정에 있어 자율성, 독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평가는 관객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물론, 프로그래머는 신중하게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착한 영화만 선정하라 할 수 없다. 영화제를 통해 비판·비평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이 바로 영화제의 특성이다.
# "가장 인상깊은 영화인은 안성기·강수연·임권택"
■ 취재후기
- 새벽 조깅으로 건강 다져
- 기회 내 것 되도록 노력을
지난 20여 년 간 영화계를 누빈 김동호 위원장의 뇌리에 가장 깊이 박힌 영화인은 누구일까. 그는 한 치의 막힘도 없이 배우 안성기, 강수연과 임권택 감독을 꼽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은 김기덕, 이창동이었다. 김 감독은 데뷔작('악어')부터 '야생동물보호구역', '해안선' 등을 부산에서 처음 상영했다.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 감독은 공식석상에서 "이 트로피를 가를 수 있다면 51%는 김동호 위원장께 주겠다"고 공언했다. 이 감독도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 등을 개막작으로 틀면서 세계적 감독이 됐다.
한때 세계 최고의 '두주불사 영화인'으로 꼽혔던 김 위원장은 지금도 젊은이 뺨치는 건강을 자랑한다. 새벽 4~ 5시에 일어나 달리기로 하루를 연다. 해마다 BIFF 기간을 부산에서 보내는 김 위원장은 이때마다 해운대 동백섬을 돌아 파라다이스 호텔 인근 온천까지 달려가 목욕을 한 뒤 아침을 먹는 일정을 소화한다. 평소에는 주말 두 시간씩 테니스를 즐긴다.
한창때 일 년의 절반가량을 비행기에서 보냈던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행기만 타면 잠을 청하고, 기내식이 돌 때만 눈을 뜨면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있다.
품이 넓어 한 번 보면 모두 팬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에게 사람 사귀는 비법을 물었다. "진솔하게 성심껏 대하고, 모든 우연한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동호는
1937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김동호는 올해 만 77세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영화진흥공사 사장, 제1대 예술의전당 사장, 제2대 문화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불과 수년 새 BIFF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키운 그는 현재 BIFF 명예집행위원장 및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담=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정리=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