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서원 내 서재

# 남천동 '인디고서원'

- 중정 만들고, 사방 창 뚫어
- 에어컨 대신 자연풍 끌어와

# 중앙동 '이노북카페'

- 도서관→디자인사무실→정원
- 위층 오를수록 파격의 공간

우리는 매일 마음의 결을 만들어 가며 살고 있다. 보는 것, 만지는 것, 만나는 것 하나하나가 차곡차곡 쌓여 습성이 되고 인격이 된다. 더 나은 마음의 결을 가지려고 어떤 이는 여행을 가고, 어떤 이는 봉사활동을 한다. 최근 인문학 열풍과 함께 독서모임이나 강연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을 대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마음의 결을 만드는 행위다. 부산에 책을 매개로 건강한 문화를 일구어 가는 매력 공간이 있다. 단순히 장사를 위한 책방이나 북카페가 아니라, 책을 통해 사람 마음의 결을 곱게 하고 건강한 문화를 다독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집주인의 마음이 착해서 그런지 공간도 너무너무 멋지다.


■푸른 인문정신으로 청년문화가 영그는 '인디고서원'

	인디고서원

부산 남천동 입시학원이 즐비한 주택가에 겉모양부터 조금 다르게 생긴 서점이 한 동 우뚝 서 있다. 요즘 동네서점이 경영의 어려움으로 하나둘 문을 닫고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는 실정인데, 인문정신으로 무장한 이 건물은 독야청청 활발한 운영을 하고 있다. 학원가이기에 당연히 있을법한 참고서나 문제집 같은 책은 단 한 권도 취급하지 않고, 청소년이 읽어야 할 인문학 책만 가득 진열된 반전의 책 공간이다.

처음 방문했던 어느 해 더운 여름날, 에어컨 냉기조차 느낄 수 없는 공간에 창문을 죄다 열어놓고 있었다. 열외기에 의해 외부 환경을 데우는 잘못된 에너지 사용 방식에 반대하여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뚫어 놓은 창과 함께, 직사각형의 건물 가운데를 비워낸 작은 중정까지 두어 바람이 사통팔달 통하도록 하였다. 그 중정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제집인 양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서, 사시사철 푸른 생명의 기운을 실내로 드리운다.

	인디고서원 중정서 자라는 은행나무

1, 2층은 선별된 인문학 도서가 주로 평판 위에 보기 좋게 진열돼 있고, 곳곳에 책 읽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3층은 책 토론이 가능한 넓은 테이블을 중앙자리에 내어 주었다. 실내는 전돌로 된 회색빛 벽면을 바탕으로 하여 초록의 푸름이 곳곳에 덧칠되어 있다. 초록의 창틀과 다양한 수종의 화분들, 창 너머 보이는 후정의 잔디와 나무들, 거기에 박공지붕까지 온통 초록이다. 빛 좋은 날에는 그야말로 인디고 컬러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방문객은 건강한 에너지를 선물로 받는다. 직원과 청소년 간의 허물없는 대화나 표정으로도 공간이 얼마나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안내받아 방문한 4층의 대표실은 박공지붕 아래 편안한 가구들이 자리 잡은 다락방이었다. 아! 이곳이 푸름의 근원이구나 싶었다. 뿌리가 꼭대기에 있다니…. 대표실의 발코니로 나가니 중정을 뚫고 나온 은행나무의 정수리가 보인다. 나무가 자라나듯 이 공간은 청소년의 인문학적 정서가 무럭무럭 자라는 곳이다.


◇인디고서원

·위치 : 부산 수영구 남천동 ·규모 : 지하 1층, 지상 4층

·시설 : 책방, 회의실, 사무실, 지하소극장 ·설계 : 함성호

·문의 : 051-628-2897 ·길찾기 : 도시철도 2호선 남천역 1번 출구

www.indigoground.net 사진=이인미 사진작가 제공

	이노 4층에 꾸민 옥상정원

■커피 향과 디자인 책과 옥상 정원이 잘 어울리는 '이노북카페'

부산 중앙동 대로변, 연좌한 빌딩들 사이에 보석이 하나 박혀 있다. 겉으로는 회색빛을 띠고 있기에 정제 전의 원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지나는 사람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원석을 발견한 그 쾌감이 이런 것일까. 오래된 원도심의 평범한 거리에 디자인 내공이 옹골차게 묻어난다. 무념무색의 주변 빌딩들에 비했을 때 분명 격이 다르다.

파사드(건물의 전면부 벽면)부터 간결하다. 색을 입히지 않은 콘크리트 노출 마감은 순수하고 담백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래로부터 훑어보니 계단, 난간, 철재 걸쇠, 큰 목제문, 그리고 철골을 이용한 간판과 메탈패브릭의 더블스킨까지 정갈하다. 거기에 2개 층에 걸친 수직창은 회사 로고인 'INNO' 글자를 형상화해 흥밋거리를 더했다.

	이노북카페

1층은 큐그레이더(커피 감별사)가 직접 로스팅 하는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이다. 카운터 테이블에 진열한 나라별 원두 유리병만 봐도 전문성이 느껴지는데, 실제 그 맛은 커피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목 넘김의 부드러움과 혀에 남는 짙은 향으로 고품질 원두임을 직감할 수 있다. 매끈한 바닥의 에폭시 마감과 독특한 천장 조명, 각양각색 나무 질감을 살린 테이블의 조합이 잘 어우러진 환경에서 커피의 향은 더욱 짙게 번진다. 사실은 2층이 더 매력적이다. 디자인과 건축, 인테리어 관련 서적이 도합 5000권 이상 비치된 사설 도서관이다.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는 온종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긴 테이블이 있어 간단한 소모임도 가능하다. 천장에 매달린 철제 책장하며, 창가의 바 테이블과 수제 의자들, 그리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유리 조명등마저도 눈길을 뺏는다. 최고 모델의 간지 코디를 보고 있는 듯하다.

공간의 밀도는 위층으로 갈수록 더했다. 모든 가구와 조명을 정제된 라인으로만 구성한 3층 인테리어 사무실은 전문 집단으로서의 이미지를 풍긴다. 4층 라운지는 충격이었다. 기승전결의 마지막 순간, 긴장감을 한순간 터뜨려 버리는 카타르시스의 공간이었다. 미팅, 휴식, 회의, 운동, 끽연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이 공간에는 예상치 못한 푸른 옥상 정원이 있다. 새들도 잠시 쉬었다 가는 도심 허파를 하나 보유하고 있었다.


◇이노북카페

·위치 : 부산 중구 중앙동 ·규모 : 지상 4층

·시설 : 북카페, 도서관, 사무실, 라운지 ·설계 : 이양걸

·문의 : 051-248-1400 ·길찾기 : 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 11번 출구

http://blog.naver.com/innobookcafe 사진=이노북카페 제공


■씨앗 되고, 만석꾼 되는 공간

문화는 급조할 수 없다. 씨가 땅에 묻히고 많은 날 동안 비와 빛을 맞아 싹이 나고 줄기에 힘이 붙은 다음에야 푸른 잎이 맺히는 것과 같이 생장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문화가 형성된다. 영어의 culture(문화)가 cultivation(경작)과 동일 어원임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디고서원은 책방의 기능을 넘어 독서 스터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잡지(인디고잉)를 발간하고, 국제적인 인문학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청년문화의 거대한 밭을 일구고 있는 만석꾼이다. 이노북카페는 몇 곱절의 상업적 활용이 가능한 땅을 책과 옥상 정원에 내어줌으로써, 복잡하고 이기적인 우리 사회에 건강한 문화를 퍼뜨리는 민들레 홀씨가 되고 있다.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