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23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77 에베레스트 원정대' 부산 대원 환영식에 참석한 전명찬 대원.

- 고교시절부터 활발한 등산
- 부산 첫 히말리야 원정 참여
- 막내 대원으로 찬사 한몸에
- 국내 유명 암벽·빙벽 섭렵
- 장비·사진전시회로 관심받아

한국은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여덟 번째 등정국이 됐다. 1953년 영국대가 초등한지 24년이나 지났지만, 일개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던 산악후진국 한국이 세계 등반사에 이름을 올려 국민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줬다. 한국인 최초로 지구의 용마루에 선 고상돈 대원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 최고봉 등정이라는 위업을 그 혼자 해낸 것은 아니다. 대원 18명 모두의 땀과 노력, 희생이라는 계단을 밟고 올라간 정상이었다. 그래서 대원 모두가 영웅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대한민국의 국위를 세계에 널리 떨친 쾌거의 현장에는 자랑스러운 부산 산악인 곽수웅(당시 33세·대륙산악회) 전명찬(당시 25세·청봉산악회) 두 대원이 있었다. 특히 원정대원 중 막내였던 전명찬 대원은 원정대의 격려와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그는 이듬해 한국 탐험사에 새로운 장을 연 '한국극지탐험대'의 북극 탐험에 참가, 국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국가적 거사의 현장에서 부산 산악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등반가이자 탐험가였던 전명찬(1952~1994). 부산 중구 동광동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동성고에 입학, 등산부에 들어가면서 산악 인생이 시작됐다. 그 당시 동성고 설립자 최두고 이사장은 대한산악연맹 2대 회장을 맡아 등산의 스포츠화와 학생산악운동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체계적으로 등산지식을 쌓고 등반기술을 익힌 그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동기 민성기 강은석 등과 함께 후배들을 이끌고 부산학생등산대회, 대통령기등산대회, 팔공산 60㎞극복등행대회, 계룡기등산대회 등 전국 등산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동성고를 등산 명문으로 올려놓았다.

고교 졸업 후 10여 년이 그가 산악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한 시기였다. 동성고를 졸업하자마자 기술등반의 기치를 내걸고 1968년 창립한 청봉산악회에 들어갔다. 학창시절 갈고닦은 기량을 발휘하면서 금정산의 무명암과 준행암, 원동 천태산 등의 암장 개척에 앞장섰다. 선진 등반기술을 배우기 위해 '지도자 세미나' 등에 참가하는 한편, 한국등산학교 전신인 겨울등산학교를 수료한 뒤 국내 유명 암벽·빙벽을 두루 섭렵하며 해외 고산을 향한 꿈을 키워나갔다.

이처럼 10여 년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맹활약을 펼친 그는 부산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에 참가했다가 1972년 마나슬루에서 눈사태로 실종된 산악회 선배 송준행의 한을 풀고자 히말라야로 눈을 돌렸다. 1974년부터 '77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지옥훈련에 4년간 빠짐없이 참가하는 열성을 보여 부산 대표로 발탁됐다. 산에서 만드는 음식의 달인이었던 그는 100여 일간의 대장정에서 식량 담당을 맡아 등정 성공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김영도 대장의 신임을 받은 그는 이듬해 대한산악연맹이 파견한 북극탐험대의 대원으로 선발됐다. 탐험대원 5명 가운데 4명이 '77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이었는데, 그중에 포함될 정도로 그의 체력과 등반 능력은 탁월했다. 그린란드 북부의 북극권 탐험에 나선 이들은 왕복 800여 ㎞의 빙상 대장정에 올랐다. 영하 40도를 밑도는 혹한과 초속 20m를 웃도는 폭풍설을 뚫고 9월 8일 오후 8시11분께 최종 목표 지점인 북위 80도 선에 도달, 태극기를 꽂았다. 이로써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세계 8번째 북극권 탐험 국가로 기록되면서 남극 탐험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듬해 부산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북극 탐험 사진·장비 전시회'에서 시민의 관심은 그에게로 쏠렸고, 특히 청소년의 우상이 됐다. 에베레스트와 북극을 다녀오면서 20대 젊은 나이에 국내 대표 산악인 반열에 오른 그는 아주관광에 스카우트되면서 관광업계를 주름잡았다. 곱상한 외모와 활달한 성격으로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던 그는 노래와 춤, 만담 등에 능한 팔방미인이었다. 여행사를 그만둔 뒤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산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타계하기 한 달 전 밀양 백운대 암장에서 산악회 선후배들과 암벽등반을 할 정도로 등반활동에 정열을 쏟았다.

동성고 등산부 동기로 아주관광에서 같이 근무했던 민성기 민캠프 대표는 "다재다능한 산악인으로 암벽등반은 물론 지구력이 뛰어났던 그는 다른 지방 산악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온 힘을 쏟았다. 특히 요들송은 김홍철 다음으로 잘 불렀는데, 아마 연예계에 몸담았으면 동성고 후배인 코미디언 이경규가 한 수 배워야 할 정도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단체에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산이 그였고, 그가 산이었을 정도로 산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산사나이 전명찬. 불굴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민족 염원을 이룬 역사의 현장에서 젊음을 불태운 그도 지병인 간경화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94년 42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