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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마을기업-지역에서 싹트는 희망 <29>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

섬 할매들이 뽑아낸 에스프레소, 관광객들 꼭 맛보는 명물이라예

  • 국제신문
  •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
  •  |  입력 : 2014-10-01 19:25:27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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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욕지도의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에서 할머니들이 커피를 뽑아내고 있다. 박현철 기자
- 과거 수산업 중심지 자부마을
- 할머니들 뭉쳐 커피 전문점 열어
- 12명 대학 정규 바리스타반 수료
- 배우기 어렵고 용어 생소하지만
- 제2의 인생 향한 열정 꺾지 못해

- 기생집 이름서 간판 바꿔달고
- 건물 내·외부 산뜻하게 수리
- 고구마 라떼 등 이색 메뉴 개발

경남 통영 삼덕항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인 욕지도(慾知島)는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섬이다. 섬 앞쪽으로는 두미도, 노대도, 연화도 등 올망졸망한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섬 뒤쪽으로는 망망대해가 끝없는 변화무쌍한 섬이다.

이 섬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해안 어업전진기지로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돈과 사람이 들끓었던 곳이었다. 특히 섬의 자부마을(일명 자부랑깨)은 고등어 파시가 형성돼 수백 척의 어선이 몰려들어 식당과 술집이 넘쳐났다. 하지만 수산업의 몰락과 함께 자부마을은 옛 화려한 영광을 뒤로한 채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섬과 커피숍의 이채로운 조화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는 지난 4월 마을기업으로 지정되면서 내외부를 말끔히 단장했다(사진 오른쪽). 왼쪽 사진은 개·보수 전 모습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 최근 다시 생기가 도는 일이 생겼다. 마을 할머니들이 섬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커피 전문점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방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커피 전문점은 전무했다.

커피 전문점 명칭도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다. 욕지도 선착장에서 해안 일주도로를 따라 오른편으로 10여 분 거리인 자부마을에 위치한 이 커피 전문점은 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한번씩 거쳐가는 새로운 명물로 떠 올랐다. 입구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나무 의자와 파라솔이 설치돼 외관부터 커피 전문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내부는 아기자가한 소품과 욕지도의 역사를 다룬 각종 사진 등으로 채워져 있다. 말끔하게 정돈된 분위기까지 육지의 여느 커피 전문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이 손님을 정겹게 반겨준다. 할머니 바리스타 12명이 3명씩 4교대로 돌아가며 근무한다. 최고령은 79세며, 평균 연령은 65세다. 이 할머니들은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경상대 평생교육원에서 '커피 바리스타'반을 정규 수료했다.

할머니들을 이름도 생소한 바리스타의 길로 이끈 것은 지역 대학교에서 시행한 창업프로그램이었다. 이들은 욕지면사무소로부터 평생교육원 과정에 참여해 볼 것을 권유받은 뒤 고민 끝에 승락했다. 처음에는 소일거리 삼아 관광객들에게 간단한 마실 거리를 팔아보자는 의지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나이가 있다 보니 손도 떨리는 데다 커피도 평생 처음 볶아 보는 일이라 젊은이들에 비해 습득 과정이 두 배, 세 배나 힘들었다.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카페라떼 등 용어를 외우는 것은 더 어려웠다. 수차례 중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쇠퇴해가던 마을을 위해 수익도 창출하고 제대로 된 바리스타가 돼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는 할머니들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대학 측에서도 뭍 나들이가 힘든 할머니들을 위해 전문 강사를 섬으로 파견보내주는 배려까지 아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조금 익숙해지자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겨났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며 '자부마을 섬마을쉼터 생활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 가진 할매들

할머니들은 지난 2월 '명월관'이란 이름으로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민박집 1층을 임대해 조촐한 간판과 테이블, 의자 등으로 겨우 커피 전문점 분위기만 냈다. 명월관이란 이름은 1960, 1970년대 번성기 당시 욕지도 내에서 가장 값비싼 기생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할머니들은 지난 4월 생활협동조합이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후 대대적인 개·보수에 들어갔다. 건물 외부를 산뜻한 색상으로 칠하고 내부 또한 커피 전문점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최신 커피 기구도 새로 들여놨다. 간판 역시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로 과감히 교체했다.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주말이면 200~300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주문한 것과 다른 제품을 내놓는 등 지금도 실수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미소에 오히려 손님들이 미안해할 정도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하루 60만 원가량의 수익이 들어온다. 할머니들 입장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일하는 것이 신명날 정도다. 박순임(79) 할머니는 "오래 서 있는 것이 힘들지만, 돈도 벌고 무엇보다 일할 수 있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웃음을 지었다. 커피 전문점 운영으로 생긴 수익금은 할머니들의 인건비와 마을기금으로 적립한다.

경험이 쌓이면서 판매 품목도 한층 다양해졌다. 커피나 과일, 음료 외에 욕지도 특산물인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 라떼와 고구마 마들렌 등도 만들어 판매한다. 정성도 각별하다. "내 손자, 내 손녀에게도 먹일 수 있는 신선하고 정성을 담은 좋은 제품을 내놓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요즘 더욱 신이 났다. 욕지중 학생들을 상대로 바리스타 강의도 나가는 등 재능 기부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들 할머니는 육지에 체인점을 내는 것이 또 다른 꿈이라고 입을 모았다.


# 4년 전 서울서 귀향해 창업 주도 "맛으로 승부, 체인점 개설 바람"

■ 고복재 자부마을 생협 이사장

'자부마을 섬마을쉼터 생활협동조합'의 고복재(67·사진) 이사장은 커피 전문점 운영 이후 인생 최대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커피 전문점으로 만들기 위해 뭍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섬만의 특화된 메뉴 개발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섬 학생들을 상대로 한 바리스타 강의 등 재능기부에도 앞장서면서 하루 해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다. 무엇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살맛나는 인생을 즐기는 중이다. 이 조합에는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한 12명의 할머니를 중심으로 총무 등 14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할머니들이 평생을 섬마을에서 어부의 아내와 주부로 살아온 반면 그는 4년 전 고향 욕지도로 되돌아왔다. 욕지도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부터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다. 자식들도 출가하고 남편도 퇴직한 후 덧없는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중 고향으로 되돌아 오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반대가 심했지만 수차례 설득 끝에 결국 고향의 품에 안겼다.

도시 생활에 찌든 삶을 털어내기 위해 찾은 고향 섬마을은 그에게 또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했다. 바리스타 과정에 참여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재미나게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열정이 꿈틀거렸다. 바리스타 과정 수료를 위해 힘겨워 하는 다른 할머니들을 다독거리는 한편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복돋웠다. 커피 전문점 개장도 그가 주도했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조합은 지난 4월 마을기업으로 최종 지정됐고, 정부 지원을 통해 제대로 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고 이사장은 "아직 초보인 데다 고령의 나이 때문에 더러 실수도 있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정정당당히 맛으로 승부해 2호점, 3호점 등 체인점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남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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