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9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아시아산악연맹 총회에 '다이내믹 부산 희망 원정대' 대원들과 함께 참석한 이병완(맨 오른쪽) 선생.

- 대산련 이사·부회장 역임
- 북한 국제연맹 가입에 일조
- 해외 원정에도 적극적 활동
- 부산 산악 위해 30년간 봉사

한국 산악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대한산악연맹(대산련)은 201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대산련을 빛낸 50인'을 선정했다. 이들은 해외 고산등반, 산악문화, 스포츠클라이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활동으로 산악계의 발전을 이끈 산악인이다. 50인 중 18명은 체육훈장을 수상한 바 있고, 산에서 생을 마감한 고상돈 지현옥 고미영 박영석도 포함됐다. 나머지 대부분은 한국 산악계의 초창기를 풍미했던 원로들이다.

이들 가운데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비교적 산악 경력이 짧은 대산련 부산연맹 고문 이병완(1939~) 선생이 포함됐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산에 다닌 학교산악부 출신도, 왕성한 등반활동을 한 클라이머도, 해외 고산을 오른 등반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국내 웬만한 산악인은 선생을 다 안다. 비록 늦게 산악활동을 시작했지만 20여 년 넘게 대산련 이사·부회장을 역임했고, 대산련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산악 발전에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선생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국제 산악무대에서의 활동이다. 대산련 국제교류이사를 맡아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산악연맹 총회 참석 이후 40여 회나 국제행사에 참가했다. 무엇보다 보람을 느낀 일은 대산련 부회장 때 북한등산협회와 밀접한 교류를 하며 북한이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1997년 아시아산악연맹 이사회와 국제산악연맹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가, 회원국으로부터 만장일치의 가입 승인을 이끌어냈다. 또 중앙대 총장을 지낸 임철순 대산련 회장이 아시아산악연맹 회장과 국제산악연맹 명예부회장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은 해외 원정에도 정열을 쏟았다. 대산련이 2000년 파견한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대'인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원정에 참가, 등정 성공에 힘을 보탰다. 특히 8000m급 14좌 완등자인 엄홍길 대장이 이끈 원정대의 단장을 두 번이나 맡았다. 1999년 칸첸중가(8586m) 원정 때 격려단을 이끌고 베이스캠프를 방문했는데, 눈사태로 2명의 대원이 사망해 시신과 함께 돌아오는 아픔도 있었다. 2003년 로체샤르(8382m) 원정 때도 등정을 시도하다 눈사태로 대원 2명이 사망하자 사고수습에 온 힘을 다했다. 그래서 엄 대장은 선생을 친부모처럼 여기고 따른다.

청소년 산악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선생은 대산련이 2001년부터 파견한 '한국 청소년 오지 탐사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유럽 캅카스를 비롯해 티베트 구계, 에콰도르 안데스 산맥, 뉴질랜드 남알프스, 알래스카 등의 탐사대 단장을 맡아 탐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비록 뉴질랜드 탐사 때 일행에 뒤처져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바위틈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낭패를 당한 뒤 탐사활동을 접었지만, 청소년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은 대학 시절 산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졸업 후 사회생활에 쫓겨 등산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1970년대 말 건강이 악화해 한국등산클럽에 들어가 다시 산을 찾았다. 등산을 올바르게 배우려고 불혹을 넘긴 나이에 부산연맹 부설 부산등산학교 하계반과 동계반을 1기로 수료했다. 본격적인 산악활동을 시작한 선생은 부산연맹 상임이사·부회장·회장을 역임하며 연맹 활성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때 혹자들로부터 중앙연맹 활동에 너무 치우쳐 부산연맹을 등한시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처럼 부산 산악 발전을 위해 30여 년간 꾸준하게 봉사한 이는 몇 되지 않는다. 부산연맹이 배출한 산악인 가운데 가장 활발한 산악운동을 폈다 해도 과찬은 아닐 것이다. 특히 부산연맹이 2008년부터 추진한 '희망 8000' 프로젝트의 추진위원장을 맡아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가 8000m급 14좌 완등을 이루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중국 사천 출생, 광복 후 함흥으로 이주, 한국전쟁 때 거제도로 피난. 이같이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며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선생은 거제중을 나와 서울로 유학, 고학으로 용산고와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동양잉크에 입사, 20여 년간 인쇄잉크 연구개발에 젊음을 바쳤다. 1970년대 말 부산에 내려와 동양잉크 대리점을 차려 독립했고, 지금까지 50년간 인쇄잉크 분야에 종사한 우리나라 인쇄업계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부산에 정착한 뒤 부인이 지병으로 1987년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산악운동과 봉사활동에만 전념했다. 지금까지 80여 개국에 140여 회나 다녀왔다. 봉사단체의 업무나 회의 참가가 대부분이다. 국제 산악행사뿐만 아니라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에서 30여 년간 활동하며 수많은 국제행사에 참가,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중용을 생활실천 철학으로 삼고 있는 선생은 대인관계에서 어느 한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어른으로 유명하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 비로소 세월이 지나가는 소리가 조금씩 들린다는 선생. 지금도 왕성한 활동으로 부산산악 르네상스 시대 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