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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광역시정신건강증진센터 직원들이 지난 5월 11일 본사가 주최한 '2014 다이아몬드브리지 걷기대회' 행사 에 앞서 벡스코 광장에서 생명존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부산광역시정신건강증진센터 제공 |
- 재난·사건사고 노출 영향
- 병원 환자만 4년 새 53%↑
- 실제 62명 중 1명꼴 추정
- 정신건강센터 16곳 가운데
- 5곳 임상심리사 한 명 없고
- 7곳은 간호사도 확보 못해
- 지역사회 치유능력 '바닥'
- "인력양성 기반부터 다져야"
A(34·부산 북구 화명동) 씨는 세상과 담을 쌓고 산다. 지난해 12월 중순, 부인과 세 자녀를 화마에 빼앗기고 난 뒤부터다. 검게 그을린 식구들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 외출은 물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동료들이 만류했지만 직장도 그만뒀다. 하루의 대부분을 집 안에 멍하니 앉아서 보낸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그의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휴대폰에 간직해둔 가족의 생전 모습을 보며 많이 울어요. 참변을 당하기 전 휴일이면 가족 나들이를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 낙이 사라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제부의 동정을 들려주던 A 씨의 처형은 말꼬리를 흐렸다.
■부산시민 62명 중 1명이 트라우마?
부산시민들의 상당수가 A 씨처럼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성장사회의 부작용이 각종 재난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면서 나타난 후유증이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능력은 바닥 수준이다. 시민들에 대한 실태조사가 전무한 데다 지역 의료계의 관련 임상연구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자치단체의 정신건강기관 역시 전문인력과 예산 부족 등으로 입원 전력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관리하기에도 버거워 트라우마 치유에는 신경 쓸 엄두를 못내고 있다. '트라우마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을 찾은 부산지역의 트라우마 환자는 531명으로, 2009년(347명)에 비해 53% 늘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먹고 살기 바빠서'거나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힐까봐' 고통스러워도 꾹꾹 참고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정신질환 실태조사에서 도출한 국민의 트라우마 평생유병률(1.6%)을 올해 6월 말 현재 부산지역 인구(355만7496명)에 대입해 계산하면 트라우마를 앓는 부산시민은 5만6920명으로 추산된다. 62명 중 1명 꼴이다.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는 재난에는 얼마나 노출되고 있을까.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2009~2013년 살인 강도 성폭행 절도 폭력 등 강력범죄 발생건수는 연평균 4만8770건(일평균 137건)이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는 연평균 1만4015건(〃38건)에 사상자가 2만415명(〃56명), 화재는 연평균 2493건(〃7건)에 사상자가 145명(〃0.4명)으로 집계됐다. 매일 182건의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강력범죄 외 교통사고와 화재로 56.4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셈이다.
불안장애 우울증 등 트라우마와 관련된 시민들의 상담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지역 광역·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들이 실시한 관련 상담건수는 2만6742건으로, 2012년(1만6042건)에 비해 66.7%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지난해 하반기(1만5145건)보다 17.6% 증가한 1만7805건의 상담실적을 기록했다. 박재홍(동아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부산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부산외대 참사,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재난이 연달아 터지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치단체 정신건강 전문인력 태부족
그러나 부산지역 자치단체들의 정신건강 대응 능력은 시민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현재 16개 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 가운데 5곳이 필수인력인 정신보건 임상심리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신보건 간호사가 없는 센터도 7곳에 이른다. 예산 부족 탓이다. 자살예방사업의 경우, 예산이 3000만 원인데 가장 낮은 급여인 1호봉 연봉이 2900만 원이어서 이를 빼고 남는 연간 사업비가 100만 원에 불과해 일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경험 많은 유능한 상담요원을 채용하려면 이 정도 임금으로는 턱도 없어 갓 사회에 나온 신입 요원을 쓸 수밖에 없다. 류진 금정구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팀장은 "호봉이 높아지면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내보내다 보니 요원들의 근속연수가 평균 2년 밖에 안 된다"면서 "사정이 이러니 업무 연속성과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심리상담 전문가 양성환경이 열악한 것도 문제다. 임상심리사를 배출하는 심리학과가 개설돼 있는 곳은 부산에서 부산대 단 한 곳 뿐이다. 이미경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부센터장은 "부산에서는 임상심리사를 뽑기 어려워 다른 지역 출신자를 채용하는데, 뽑아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고 전했다. 김철권(동아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하드웨어(센터)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 놓아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력)가 갖춰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면서 "유능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예산을 늘리는 한편 지역 대학가의 심리상담 전문가 양성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역 치유센터 세워 각종 재난·사고 피해자에 신속 대처해야"
- 심리 전문가들 한목소리로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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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광역시정신건강증진센터 직원들이 지난해 10월 26일 불꽃축제가 열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하고 있다. 부산광역시정신건강증진센터 제공 |
부산외대 참사, 세월호 참사 등 올해 들어 잇따라 발생한 대형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자치단체의 정신건강 대응 수준이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역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한 입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어 제정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청래(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지난 7월 28일 대표 발의한 '국가재난 등에 의한 피해자의 정신적 외상 치유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지역치유센터를 지정해 트라우마 연구·검진사업, 재가 트라우마 환자 관리사업, 트라우마 통계·정보사업, 트라우마 환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사업을 실시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지역 치유센터는 종합병원 중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곳 가운데 선정하도록 돼 있다.
정 의원실 정진화 비서관은 "중앙 트라우마센터만 만들어선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지역의 환자들이 계속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데다 재난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도 지역센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법안에 이 조항을 담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트라우마 관련 통계가 전무한 데다 관리 시스템도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며 "중앙 및 지역센터가 유기적으로 협력해가며 트라우마 치유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전문가들도 지역 트라우마센터 설립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배정이(인제대병원 간호학과 교수) 부산시재난심리지원센터장은 "트라우마 치유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지역센터를 설립해야 각종 재난 발생 때 혼선을 빚지 않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며 의사와 임상심리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20명가량의 인력으로 구성된 지역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지역 트라우마센터 설립에는 동의하지만 방법에 대해선 이견을 표명했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지역센터의 설립 필요성에 찬성한다"면서도 "그러나 지역 병원을 센터로 지정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를 확대 개편해 트라우마 상담·치료를 맡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지역사업을 해온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가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
◇ 부산지역 사건·사고 현황(단위 : 건) |
구분 |
강력범죄 |
교통사고 |
화재 |
연평균 |
4만8770 |
1만4015 |
2493 |
2009년 |
5만4839 |
1만4278 |
2941 |
2010년 |
4만5116 |
1만4052 |
2403 |
2011년 |
4만7153 |
1만4061 |
2485 |
2012년 |
4만9673 |
1만4909 |
2315 |
2013년 |
4만7068 |
1만2773 |
2323 |
※자료 : 부산경찰청, 부산시소방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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