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열린 도시'다. 그만큼 타지 출신 사람이 많다 보니 '고향 개념'이 희박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역원로'에 대한 대접도 그만큼 인색하다는 진단이 있다. 그러면서도 지역 내에서 불협화음이 터져나오면 "원로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역원로들은 사회 곳곳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국제신문은 창간 67주년을 맞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법조계 등 지역사회의 어른 또는 원로들을 찾아 부산, 나아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발전방향에 대한 고견을 들어보는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 세월호 정국 해법은

- 여당은 책임의식 없고

- 야당은 정책 조정력 없어

- 정치인들이 자각하는 길뿐

- 대통령 개입은 옳지 않아

- 국회서 어떻게든 타협해야

# 부산이 발전하려면

- 지정학적 조건 백분 활용

- 부두기능 확장·교통난 해소

- 교육도시 경쟁력 키우고

- 제조업 부지 문제 해결해야

- 원로들 모여 '구심점' 찾자

6선 관록의 박관용 전 국회의장. 지금은 현실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북한문제, 국제문제 연구 등에 매진하면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는 박 전 의장을 지난 10일 만나 새로 출범한 '서병수 부산호'의 앞날에 대한 조언과 꽉 막힌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근황이 궁금하다.

▶동아대 석좌교수로서 있지만, 동아대뿐만 아니라 각 대학이나 연구모임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21세기 국가발전연구소이사장으로서 통일문제와 국제정세를 중심으로 20년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국제신문이 주최한 중국 불도선생 작품 한국순회전 준비위원회 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국정이 올스톱되다시피 하고 있다.

▶답답해서 오늘(10일) 아침 정의화 국회의장과 통화하면서 직접 좀 나서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가 문제 있다. 여당은 책임의식이 없고, 정책조정 능력도 전혀 없다. 야당은 장외투쟁에 업혀다니다 보니 시민운동을 하는 것인지 정당정치를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이렇게 무기력한 정치권을 나는 여태 본 적이 없다. 특히 야당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잘못 알고 있거나 뭔가 솔직하게 밝힐 수 없는 목적을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이 혹시 야당을 좌우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해법이 없어 더 답답하지않나.

▶해법은 정치인들이 자각하는 길뿐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사와 견해를 수렴하고 정책화하는 것이 정당의 목적이다. 복수정당제는 갈등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가지고 의회에서 토론하고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만장일치의 개념이 아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I may be wrong', 즉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도 문제가 있지 않나.

▶지금 현재 상황은 대통령이 나서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초기 단계에 대통령이 너무 개입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답답하다고 대통령에게 해보라는 것인데, 만약 대통령이 간섭하면 앞으로 나라가 어찌되겠나. 일일이 간섭해야 한다. 여야가 어떻게 하든지 타협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당은 청와대 눈치보지 말고, 야당은 유족이나 시민단체를 보지 말고 소신대로 타협해야 한다.

-신공항문제가 또다시 지역 간 갈등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적 지역이기주의 논쟁은 아무런 쓸모없는 논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논쟁하지 말라는 것은 정말 훌륭한 얘기였다. 정치인이 정치적 이익이나 정당 이익을 앞세우면 역사 앞에 심판받아야 한다. 전문기관이든, 대단히 훌륭한 기관에서 입지를 선정토록 위임하고 정치인은 노코멘트가(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시장이든 지사든 즉각 논쟁을 중단해야 한다.

-막 임기를 시작한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우선 부산을 어떻게 발전시키겠다는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시민들과 시의회에 얘기하고 협조를 받아내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들이 이해하고, 사업자들이 투자를 할 수 있다. 부산의 미래상을 빨리 내놓아야 한다. 또 부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더 진지한 대화를 계속하면서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시장의 역할이 보다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더 많은 사람을 부산시를 위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폭넓은 정치행정이 필요하다.

-부산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지정학적인 조건을 살리는 것밖에 없다. 부두기능을 확장하고, 교통난을 해소해야 한다. 또 교육 경쟁력이 중요하다. 교육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제조업이 없으니까 제조업 부지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땅이 좁아 부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해양레저가 중요하다. 서울은 물론이고 인접국가에서도 방문할 수 있는 해양레저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부산정치권에 구심점이 없다.

▶현 상황에서는 시당위원장이 나서서 정기적인 모임을 하도록 해야 한다. 시당위원장이 문제가 있다면 언론에서 지적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을 차린다. 부산정치인들이 부산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는 질문을 언론에서 던져줘야 한다.

-지역원로들의 모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당시 원로들 모임을 만들려고 했다가 못 했고,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제안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그러나 원로회의를 통한 지역의 구심점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는 많이 듣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원로를 대접하고, 얘기를 듣고 하는 어른의 역할을 마련하는 일이 분명 필요하다. 지금까지 무산됐던 것은 서로를 인정해 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많이 작용했다. 너도나도 원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전직 시장, 전 상공회의소장, 원로정치인, 지역출신 전직 대학총장 등 열댓 명으로 원로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다. 원로모임을 시도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젊은이에게 한 말씀.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에만 매달려서 자기 희망이나 비전을 실천하는 데 너무 등한시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이 희망과 포부와 욕망을 실현하려는 의욕이 부족하다. 용기가 없고 시험에만 매달리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라, 능동적 인간으로 긍정적 삶을 살아야 한다.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이 걱정스럽다. 나도 지방대 출신이지만 6·25전쟁 이후 그 참담한 시절에도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 대학생 때 4·19혁명 주도…'국회의장=불출마' 정착

■ 박 전 의장은

동아대 재학시절 4·19 혁명을 주도한 뒤 이기택 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 동래구에서 11대부터 16대 국회의원까지 내리 당선됐다. 6선으로 국회의장이 된 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후 '국회의장 = 불출마'라는 공식이 사실상 정착됐다.

국회의장 재직 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면서 "자업자득입니다"라고 말해 회자되기도 했다.

1985년 시작된 남북국회회담 대표와 국제의회연맹(IPU) 평양총회 대표, 국회 통일정책위원장을 지내며 수많은 남북회담에 참가한 남북관계의 산증인이자 북한문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은 동아대 정치행정학부 석좌교수이면서 (사)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동북아경제포럼 한국위원장 등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박 전 의장을 만났다. 약 1시간 30여 분 동안 계속된 대담 내내 그는 각종 현안에 대해 막힘없이 견해를 내놓았다.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세월호 정국'에 대해서는 정치권 전체를 향해 따끔하게 충고했고, 후배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아들·손자 얘기가 나왔을 때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고민의 일단도 드러냈고, 과거 지역구였던 부산 동래구와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이야기할 때는 회상에 빠지기도 했다.

박 전 의장은 대담이 시작되자마자 현 정국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오늘 아침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전화해서 '직접 좀 나서라'고 말했다"고 밝히는 등 역시 '뼛속까지'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938년 부산 출생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동아대 정치행정학부 석좌교수 ▷16대 국회의장 ▷신한국당 사무총장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 통일외무위원장 ▷6선 국회의원(11·12·13·14·15·16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