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회원들이 지난 6월 2일 부산시청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 얼굴 사진은 형제복지원 입소 당시 한종선 씨 모습. 국제신문DB |
- 구타·노역·기합·성폭행…끔찍한 '생지옥' 피해자들
- 30여 년간 정신병원 신세
- 폭행당한 몸도 만신창이
- 억울함에 폐인 같은 생활
- 가족들 화병에 숨지기도
- 진상규명·명예회복 절실
A(63·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씨는 매일 신경안정제 등 정신치료약을 먹는다. 벌써 29년째다. 정신병원에도 6차례 입원했다. 다리를 절고 이빨이 다 빠져 틀니를 하는 등 몸도 쇠약하다. 1983년부터 2년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을 때 입은 육체적 정신적 상처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서 퇴근한 뒤 술을 마시고 부산진역 대합실 안 벤치에 앉아 잠시 졸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그의 부모는 전국을 돌아다니다 형제복지원에서 겨우 아들을 찾아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왔을 때 오빠는 피골이 상접해 얼마 못 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복지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말도 잘 하고 똑똑했었는데 나와서는 바보가 돼버렸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이 왜 끌려가서 온갖 곤욕을 치러야 했는지 한탄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 정신병원에 들락거리게 됐죠." A 씨의 여동생(54)은 오빠 얘기를 들려주다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훔쳤다.
■국가폭력이 남긴 마음의 상처
형제복지원 생활이 어떠했기에 A 씨가 심신 불구자가 됐을까. 1984년 10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 누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풀려나 A 씨처럼 만성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한종선(39) 씨가 쓴 책 '살아남은 아이'를 보면 한마디로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하루 일과가 구타, 기합, 노역으로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한 사람을 다수가 집단 난타하는 인간 샌드백, 담요에 말아 마구 때리는 이불말이, 침대에 배를 붙이고 물구나무를 서는 히로시마, 코로 원산폭격을 하는 고춧가루…. '구타·기합 백화점'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다.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한 씨의 아버지와 누나는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려 지금까지 정신병원에서 지낸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모임명에서도 수용 당시의 극심한 고통이 묻어난다.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오죽하면 '생존자'라는 말을 붙였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71년 친구들과 집 근처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한 극장에 갔다가 남구 용당동 형제육아원(형제복지원의 전신)에 끌려가 1978년까지 수인 아닌 수인생활을 한 B(55) 씨의 증언에서도 치유하기 힘든 트라우마가 배어 있다. "강제노역, 구타, 기합,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한 번 탈출을 시도했어요. 이내 붙잡혀 가슴을 100대 넘게 맞고 죽을 뻔 한 뒤로는 다시는 탈출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송기윤이라는 또래 친구는 탈출하다 붙잡혀 집단 구타를 당한 뒤 이튿날 아침 점호 때 쓰러져 죽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끌려온 경우도 있었는데, 맞아 죽은 아들 시신을 끌어안고 우는 아버지를 목격하기도 했어요." 형제복지원 시절 당한 구타로 골병이 든 그는 현재 막노동도 하기 어려워 기초생활지원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C(72) 씨는 한 달간 형제복지원 생활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에 평생을 망쳤다. 그는 서른여섯 살 때인 1979년 4월, 동구 초량동 후배 집에서 자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나가는 사람 편에 가족과 연락이 닿아 겨우 풀려났다. "구타 당해 코뼈가 부러지고 머리에 커다란 흉터가 생겼어요. 맞았다고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복지원을 나온 후 너무 억울하고 세상이 무서워 술만 마시며 지내다 폐인이 됐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지켜보다 화병으로 사망했고 부인과도 이혼했다.
■진상규명이 최선책
"군대와 똑같아요. 취침점호 후 밖에서 문을 잠그면 새벽 기상 때까지 소대 내무실 안은 100여 명 단위의 소왕국으로 변했습니다. 소대장-서무-조장-원생으로 나뉘어진 계급관계 속에 기합과 구타, 성폭행 등 만행이 난무했어요. 입소 당시 열 살이던 저도 소대장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D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출해 부산에 왔다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1987년 부산 소년의 집으로 전원돼 고교를 마치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그는 결혼해 딸 둘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일궈가고 있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갇혀 산다. 취직 후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어렵게 가족을 찾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확인한 뒤 트라우마는 더 심해졌다.
"복지원 기억에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까지 겹쳐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어 수면제를 장복하다 건강을 해쳤어요. 요즘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잡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하다. 끔찍한 복지원 생활 기억에다 '그런 곳에 끌려가다니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냐'는 사회의 그릇된 시선이 더해져 트라우마가 증폭된 것이다. 한 씨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거대한 국가폭력 시스템의 희생자들인데, 복지원 얘기를 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며 외면한다. 이런 상태에선 우리의 트라우마가 절대 치유될 수 없다"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최선의 트라우마 치유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해놓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저항하면 굶기고 때리거나 죽인 뒤 암매장까지 했다. 1975년부터 사건이 불거진 1987년 3월까지 531명이 숨졌고,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 원에 의대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조치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를 근거로 자행된 국가폭력 사건으로, 1975년에서 1986년 11월까지 강제 수용된 사람이 3만7940명에 이른다.
# 국가폭력 심리치료 기관
- 광주 '5·18' 치유센터 첫 개관…제주 '4·3'도 추진
- 형제복지원 사건 역시 정부가 피해 회복 나서야
| |  |
| 2012년 11월 30일,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종선 씨. 국제신문DB |
국내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최초로 설립된 기관은 광주트라우마센터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5000여 명이 피해자가 발생해 '5·18 트라우마'가 지역 최대 사회문제로 부상했지만 치유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자살자가 속출하는 등 후유증이 커지자 2012년 10월 문을 열었다. 개소 후 5·18 피해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심리치유상담센터, 치유의 인문학 강좌 등 9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1400여 명을 치료했다. 지난해 5월에는 6개국 150여 명이 참가한 '아시아포럼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등 인권옹호활동도 하고 있다.
광주에 이어 제주도에도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기관이 연내에 들어설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설치하는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 4·3 트라우마 치유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4·3사건은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4·3사건중앙위원회가 신고를 받은 결과 현재까지 희생자가 1만4000여 명, 유족이 3만1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치료에 관한 법규는 지난 7월 진선미(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등이 국회에 수정 발의한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담겨있다. 이 법안에 상이를 입어 계속 치료를 요하는 사람에게 의료지원금을 일시에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트라우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도 포함된다고 명시하지 않아 법이 통과되더라도 지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이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법안이 비슷한 시기에 정청래(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등에 의해 발의됐다. '국가재난 등에 의한 피해자의 정신적 외상 치유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에는 치유 대상에 '국가 공권력 및 권력 남용에 의한 피해, 국가 및 정부 책임으로 귀속되는 피해를 당한 사람'을 포함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 의원은 법안 제안사유에서 "권력 오·남용 등 국가폭력이 발생한 경우 피해가 더욱 심각해 평생 영구적인 트라우마를 앓게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