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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참사를 겪었던 부산외국어대학 학생들이 사고 다음 날인 지난 2월 18일 남산동 캠퍼스에 도착해 울며 걸어가고 있다. 작은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국제신문DB |
- 문항·표본·시점 각기 달리
- 부산외대생 심리상태 설문
- 응답 적고 결과 차이 뚜렷
- 자료 활용 가치 없어 '헛일'
- 컨트롤타워 부재 '네 탓'만
- 피해 학생 고통·불안 가중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전화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세요." 최근 부산외국어대학교의 한 학생회 간부가 부산시장에게 띄운 인터넷 서신 내용의 일부다. 교내에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담센터가 설치돼 있지만 학생들이 방문을 기피한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또 다른 간부는 "끔찍한 참사 기억을 상기시켜 고통만 더해줄 뿐 치유에 별 도움이 안 돼 교내 상담센터를 찾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학생들의 이런 반응은 트라우마 상담·치료에 나선 소방방재청 산하 부산시재난심리지원센터(이하 재난센터)와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이하 학생센터) 등 두 정부기관의 불협화음에서 비롯됐다. 가장 큰 문제는 기관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 구축과 적절한 역할 분담을 이끌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파행상은 트라우마 실태조사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먼저 이 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정확한 실태가 파악돼야만 상담·치료대상 선별과 업무 배분 등 계획을 수립해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기관은 이 단계에서부터 엇박자를 냈다. 재난센터는 22문항짜리 트라우마 검사지로 조사를 한 반면, 학생센터는 외국에서 들여온 9문항짜리 검사지와 19문항짜리 검사지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공통의 실태조사 기초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각자 따로 활동해야 했다. 학생센터는 학생 1200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설문조사를 별도로 실시했지만 응답자가 300명에 그치는 바람에 표본이 너무 적어 상담·치료에 이 결과를 활용하지 못했다. 재난센터도 지난달 4일 학생 944명을 상대로 독립적인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해 25점(최고점 88점) 이상의 트라우마 고위험군이 198명(21%)이라는 결과를 얻었으나, "각 문항마다 제시된 5개의 선택지 중 특정번호만 찍어 응답한 사람이 87명에 달해 객관성이 없다"는 문제제기가 나와 이를 기초자료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는 재난센터가 앞서 참사 10일 후 학생 12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조사에서 도출된 고위험군(83명)보다 115명이 많은 결과다. 하지만 2차 자료의 활용이 무산되면서 1, 2차 결과를 비교해 학생들의 상태 변화를 확인할 수 없게 됐다. 결국 협력체계의 부재가 두 기관은 물론 학생과 학교 등 모두에게 손해를 입힌 셈이다.
배정이(인제대 간호학과 교수) 재난센터장은 이에 대해 "교육부에서 (우리가 사용한 트라우마 검사지가) 필요하다고 했으면 제공했을텐데 필요없다고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차명진 학생센터 부센터장은 "재난센터가 우리에 앞서 진행했던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였다"며 재난센터의 상담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협력은 고사하고 기관 간에 불신만 팽배해진 형국이다.
재난센터의 인력풀은 정신보건 간호사와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등 상담 위주로 구성돼 있고 의사는 없다. 반면 경북대병원에 위탁 운영되는 학생센터는 의사들로 짜여져 있다. 이런 실정을 고려하면, 두 기관이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해 기초자료를 확보한 뒤 상담(재난센터)-치료(학생센터)로 각자 역할을 나눠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먼저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
정용각 부산외대 부총장은 "이번에 정부의 재난정신건강지원을 받으면서 의사와 상담사가 한 지휘계통 아래서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재난 현장에 공공·민간 자원이 원활하게 연계·투입되기 위해선 일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상층부에 구성될 수 있도록 현행 법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의 재난정신건강 대응체계에 대한 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 입원 중 병원 무너질까 안절부절…매일 밤 악몽에 "살아도 산 게 아냐"
■ 부산외대 피해 학생들 고통
- 유족들도 신경안정제 달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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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외대 학생 A 양의 어머니가 1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딸을 간호하고 있다. A 양은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 때 중상을 입고 투병 중이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부산외국어대학 신입생 A(18·미얀마어학과) 양에게 지난 반년의 세월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지옥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매일 악몽을 꿉니다. 꿈에 귀신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잠을 자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기를 되풀이하는데, 늘 불안에 떨고 있어요." A 양의 어머니는 딸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A 양은 지난 2월 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열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해 행사장인 체육관 안에 있다 무너지는 천장 구조물에 깔려 골반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 사고 직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끝에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지금도 투병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구조될 때까지 건물 잔해 속에 8시간가량 갇혀 있으면서 많은 피를 흘린 데다 동상을 입어 피부가 괴사하는 바람에 병세가 위중하다. 피부이식수술만 28차례 받았지만 앞으로 수술과 입원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른다.
A 양은 통증이 너무 심해 진통제가 없으면 한시도 못 견딘다. 입원 중인 병원이 안전한지 걱정할 정도로 A 양의 트라우마가 극심하지만 우선 외상 치료가 급해 아직 정신 치료는 시작도 못 했다. "완치는 나중의 문젭니다. 우선 아이에게 바깥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어요. 앉을 수만 있어도 좋겠는데…." 24시간 딸의 병상에 붙어 사는 A 양 어머니에게서도 가볍지 않은 트라우마가 느껴졌다.
부상 정도는 A 양보다 덜하지만 B(18·중국어과) 양도 트라우마에 휩싸여 지내긴 마찬가지다. 천장이 무너지거나 지나가는 다리가 아래로 푹 꺼지는 악몽을 반복해서 꾸는가 하면, 좁고 밀폐된 공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숨을 못 쉴 지경이다. 그래서 5개월간의 병원 생활 동안 입원 초 한 차례 외에는 퇴원할 때까지 CT 및 MRI 촬영을 전혀 못 했다.
B 양은 사고 당시 무릎으로 기어서 체육관을 빠져나오다 건물 잔해에 짓눌려 골반을 다쳤다.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고 많이 회복됐지만 아직 보조기가 없으면 걷지 못한다. B 양의 트라우마 증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더 심해졌다. "성격이 차분한 편이었는데, 세월호 참사 후 감정이 차오르면 울거나 말을 더듬는 등 주체를 못해요. 왜 자신이 이렇게 돼야 했는지, 단원고 학생들은 또 왜 죽어야 했는지 의문과 원망을 쏟아놓곤 합니다." B 양의 어머니는 딸의 트라우마 악화가 우리 사회의 부실한 재난 안전망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고로 숨진 학생 9명의 유족들도 '트라우마 감옥'에 갇혀 있다. 딸을 잃은 김모(53) 씨 부부는 신경안정제를 입에 달고 산 지 6개월이 넘었다. "꿈에서는 물론 평소 멍하게 있을 때도 딸 아이의 얼굴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정신과 의사가 약을 장복하면 우울증이 온다고 경고하지만 안 먹으면 잠도 안 오고 미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복용합니다." 김 씨의 부인은 사고 이후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딸 또래 여학생들을 보면 딸 생각이 나서다. 트라우마는 부부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