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이름의 '마음의 암세포'가 빠르게 자라나 시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성장 위주의 국가경영이 사회의 안전 울타리를 허물어 각종 재난이 속출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트라우마 사회'의 확대·심화가 우려된다.
이런 실상은 지난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장인 체육관이 무너져 10명이 죽고 270명이 다치는 참사를 겪은 부산외국어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일 대학 측에 따르면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소방방재청 산하 부산시재난심리지원센터(이하 재난센터)와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이하 학생센터)가 투입돼 교내에서 상담과 치료를 했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지 6개월이 넘도록 아직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두 기관이 각자 다른 양식의 검사지로 트라우마 실태조사를 실시해 공유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또 재난센터(2월 27~3월 30일)와 학생센터(3월 17~4월 16일) 인력이 각각 한 달가량씩 한시적으로 활동한 뒤 교체되는 바람에 지속적인 학생 관리가 안 된 데다 상담주체가 바뀌면서 학생들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반복해서 얘기해야 하는 고통을 안겨줬다. 전문가들은 컨트롤타워와 협력 체계의 부재가 이런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박재홍 동아대병원(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각 조직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파행적 대응 속에 시민들의 트라우마는 만성화하고 있다. 본지 취재팀이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사고(1993년)와 부산 모 고교 수학여행 버스 사고(2000년) 피해자, 형제복지원 사건(1975~1987년) 피해자, 소방서·도시철도 종사자 등 30명을 만나 심층 취재한 결과 모두가 '만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부산지역 소방관의 17.2%가 트라우마를 앓고 있으며, 도시철도는 지난 3년여 동안 기관사 35명이 트라우마 때문에 전동차 운전대를 놓고 다른 보직으로 전보되는 등 '직업병'으로 이미 굳어졌다. 이들은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트라우마가 악화됐다"면서 "지역 트라우마 센터 설립 등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트라우마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뒤 나타나는 정신 장애. 과민반응, 충격의 재경험, 감정회피 등 증세를 보이며, 심한 경우 우울증 약물남용 자살 등으로 이어진다.